영화 - 내일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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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내일의 기억
  • 윤종원
  • 승인 2007.04.25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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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한창 승승장구하던 당신이 어느 날 갑자기 불치병에 걸려 회사를 그만둬야 된다면?
그리고 50살밖에 안된 나이에 매일매일 집에서 뒹굴거리며 겨우 먹고 살아가는 정도의 활동밖에는 할 수 없게 된다면?
"라스트 사무라이" "게이샤의 추억"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등의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해 국내에도 많은 팬을 갖고 있는 와타나베 겐 주연의 일본 영화 "내일의 기억"은 이 같은 가정이 현실이 됐을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실감나면서도 담담한 터치로 그린 영화다.

"내일의 기억"은 일본에서 가장 뛰어난 대중소설에 수여되는 "아마모토 슈고로상"을 수상한 오가와라 히로시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한 것. 오늘날 생계를 위해, 그리고 처자식을 위해 바쁘게 살아가는 대부분의 중년 직장인들이 공감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어 시선을 잡아끈다.

광고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며 열심히 살아가는 중년의 직장남성 사에키(와타나베 겐)는 일에 있어서만큼은 엄격할 정도로 완벽함을 추구하지만 부하 직원들과 거래처 고객을 대할 때는 인간적이면서도 자상한 면모도 갖춰 회사 안팎에서 인기가 높다.

결혼을 앞둔 외동딸과 사려 깊은 부인을 둔 그는 집에서는 좋은 남편이자 아버지이다.

그러던 어느 날, 사에키가 이끄는 부서는 심혈을 기울이던 거래처로부터 큰 광고를 따내 축제 분위기에 휩싸이지만 기쁨도 잠시, 사에키는 전에 없는 잦은 건망증 증세로 곤란을 겪게 된다.

점점 심해지는 건망증 증세로 거래처와의 중요한 회의도 잊어버리는 등 치명적인 실수를 거듭하던 사에키는 아내 에미코(히구치 가나코)와 함께 마지못해 찾아간 병원 의사로부터 알츠하이머 병(퇴행성 뇌질환)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현대 의학 수준으로는 증세의 악화를 다소 늦추는 정도의 치료법밖에 없다는 의사의 말에 절망한 사에키는 병에 걸린 사실을 숨겨가며 겨우겨우 회사생활을 꾸려가지만 부하직원이 병명을 발설하는 바람에 평생을 바친 회사로부터 희망퇴직 권고를 받게 된다.

결국 회사를 그만둔 사에키는 집에서 아내와 단둘이 지내며 매일매일 무기력한 생활을 영위해간다.

생계를 위해 남편 대신 일자리를 구한 에미코는 사에키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의 끈은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갈수록 기억을 잃어가는 남편을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하지만 증세가 심해진 사에키는 직장에서 밤늦게 귀가한 에미코의 남자 관계를 의심하는 등 에미코를 점점 힘들게 한다.
영화는 필요 이상의 희망적 메시지도 절망적 메시지도 던지지 않은 채 끝까지 세심한 리얼리티의 끈을 놓지 않는다.

기억을 잃어가는 사에키가 에미코를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지고 청혼을 하게 됐던 장소인 산골 도자기 공방을 찾아 과거의 아름다웠던 추억을 되살리는 모습은 눈물이 날 만큼 감동적이다.

특히 어떤 절망적인 상황이 닥치더라도 끝까지 남편을 포기하지 않는 헌신적인 에미코의 모습은 전세계 남성들이 배우자감 1순위로 손꼽곤 했던 전통적인 일본 여성상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아 인상적이다.

황혼 이혼이 유행처럼 돼버린 요즘, 직장에서 치이고 가정에서도 외면받는 한국의 중년남성 관객은 단아하고 기품 있는 일본 중년 여배우가 연기한 에미코의 모습에서 이제는 사라져버린 남성들의 아득한 로망을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내일의 기억"은 와타나베 겐이 직접 언급했던 것처럼 보고 나서 "정말로 재미있는 영화다"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바쁜 일상에 파묻혀 자신을 잊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인생의 의미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5월10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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