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말라노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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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말라노체
  • 윤종원
  • 승인 2007.03.22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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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 반 산트 감독의 장편 데뷔작

흐릿한 흑백필름과 격정과 환희를 오가는 음악, 그리고 동성애.

영화 "말라노체(Mala Noche)"는 청춘의 사랑과 고통, 순수 등 청춘의 빛깔을 담뿍 담아낸 거장 구스 반 산트의 장편 데뷔작이다.

1985년 제작된 이후 21년간 묻혀 있던 이 보석 같은 영화는 복원작업을 거쳐 지난해 칸 영화제 감독주간 특별상영작으로 다시 관객과 만났다.

"말라노체"는 "아이다호"와 옴니버스 영화 "사랑해, 파리" 마레지구 편의 원조 격이다. 감독은 "말라노체"의 내용을 두 작품에 다시 녹여 변주했다. 그만큼 감독에게는 뿌리와도 같은 영화인 듯.

영화는 시인 월트 커티스의 동명의 자전소설을 원작으로 삼았지만 감독에게도 자전적 의미가 크다.

미국 오리건 주 포틀랜드의 변두리. 편의점 직원 월트(팀 스트리터)는 손님으로 가게에 들른 "꽃미남" 조니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알고 보니 조니는 영어 한마디 할 줄 모르는 멕시코인 불법체류자. 10대가 분명한 그는 월트에게는 관심조차 없고 항상 친구 로베르토와 함께 다닌다.

어떻게든 가까워지려고 안간힘을 쓰는 월트에게 조니는 짓궂은 장난이나 일삼고 술과 밥을 얻어먹으며 골탕먹인다. 조니에게 푹 빠져 있는 월트는 15달러로 조니에게 하룻밤을 제안하지만 거절당한다.
영화는 동성애라는 소재만 빼면 전형적인 청춘영화다. 격정적인 사랑과 이를 얻으려는 무모한 노력들, 그리고 그 속에서 피고지는 좌절과 희망은 청춘의 단면 그대로다.

"황소를 잘못 건드리면 뿔에 받히기 마련"이라는 월트의 독백은 쓰린 사랑의 상처의 단면을 비추고, "내가 지나온 곳들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높은 산들을 거쳐 왔거든"이라는 조니의 대사는 성공을 향한 욕망의 냄새를 풀풀 풍긴다.

영화 속 서로 다른 욕망이 충돌하는 공간인 청춘은 설익은 말과 무모한 행동으로 표현되지만 그래서 더 풋풋하고 향기롭다.

감독은 욕망과 좌절, 불안, 희망 등이 뒤엉켜 있는 청춘의 이미지를 때론 인물이나 장소 등을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흐릿한 흑백필름으로 그려냈다.

영화 "라스트 데이즈"에서도 그랬듯이 감독은 대사보다는 음악과 분위기 등을 통해 더 많은 이야기를 관객에게 건넨다.

껄렁껄렁한 행동 속에 진심을 담아낸 팀 스트리터의 연기가 눈길을 잡는다. 아련함과 담백함으로 기억되는 영화다.

서울 종로 스폰지하우스(시네코아)에서 29일 단관 개봉된다. 15세 이상 관람가
sunglok@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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