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이장과 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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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이장과 군수
  • 윤종원
  • 승인 2007.03.22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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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웃음에 대한 기대를 높이지 않을 수 있겠나. 차승원과 유해진이 등장한다는데. 그것도 말끔한 군수 차승원, 추레한 이장 유해진이 아니라 그 반대라는데.

모델 출신다운 세련미를 자랑하는 차승원이 트레이닝 바지를 아무렇게나 걷어입고 남방이라고는 오직 하나인 듯한 전형적인 농부 이장이며, (본인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외모부터 "촌스러워" 보이는 유해진이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군수라니 그 용모를 상상하는 데서부터 웃음이 터져나오고 센 코미디를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이장과 군수"(감독 장규성, 제작 싸이더스FNH)에서 코미디는 관객을 극장으로 끌기 위한 장르적 미끼다. 연기에 관한 한 누구보다도 진지한 이 30대 후반의 두 배우는 억지 웃음 대신 나이만큼 진정성을 갖고 "싸나이들의 우정"을 그리고 싶어했다.

"선생 김봉두" "여선생vs여제자" 등 휴먼 코미디를 만들어냈던 장규성 감독이 차승원과 다시 한번 손잡고 비슷한 장르를 내놓았다. 예전보다 웃음의 요소는 더 가벼워진 한편 메시지는 더 묵직하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문제였던 듯.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이 경박하다. 이장과 군수의 절박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황당한 ×사건과 멋있는 몸매라는 여자의 말에 허겁지겁 셔츠를 젖히는 모습. 더욱이 유행에 가장 민감한, 그래서 아주 짧은 기간 인상적인 CF를 패러디해 극장에서, TV에서 오래도록 볼 수 있는 영화에서 웃음을 유발하는 건 관객을 너무 쉽게 본 것이 아닐까. "공동경비구역JSA"가 진지하게 사용한 초코파이를 이 영화에서 또 봐야 하는 것도 불편하다.

사람을 웃기는 게 더 어렵다는 걸 감독이나 배우가 모를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웃어야 하는 장면에서의 불편함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다시 만나도 끈끈한 우정을 보는 감동을 깎아내린다.

"선생 김봉두"에서 시골 마을의 정겨움을 내세워 도시민들의 그릇된 삶의 방식을 꼬집고 향수를 불러일으켰던 장 감독은 이번에도 시골을 배경으로 했다. 사회에서 늘 맞부딪히는 계급의 문제를 이장과 군수라는 의외의 권력으로 접근했다.

영화에는 어린 시절 위치와는 달리 커버린 어른이 된 현실과 거기에서 발생하는 정체성의 문제, 순수한 열정을 대하는 사람을 괴롭히는 지극히 현실적인 세력들과의 충돌, 현실이 아무리 괴롭고 힘들어도 기댈 수 있는 건 사람 사이의 믿음이라는 걸 말하려고 한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노총각 춘삼(차승원 분)은 "이번에는 젊은 사람을 이장으로 뽑자"는 마을 어른의 한 마디에 난데없이 동네 이장이 된다. 이장직에 별 뜻이 없었던 춘삼 앞에 초등학교 시절 반장을 도맡아했던 춘삼의 "꼬붕"이었던 대규(유해진)가 군수가 돼 등장한다. 기분이 상한 춘삼은 대규에게 마을 길을 포장해달라는 등 친분을 이용해 민원을 넣는다.

대규 못지않은 이장이 되고 싶은 춘삼이 마을을 잘살게 하기 위해 고심 끝에 아이디어를 내 군수의 재가를 기다리는데 ,방사성폐기물처리장을 유치해 군 경제를 활성화시키려고 여념이 없는 대규에게 문전박대를 당하자 괘씸해 한다.

이런 춘삼을 이용하는 세력이 있다. 군수 선거에서 대규에게 패한 예전 군수와 그를 후원해 이득을 챙겨왔던 부동산개발업자 백 사장(변희봉)이 방폐장 유치반대위원회 위원장으로 춘삼을 끌어들인다. 춘삼은 열정적으로 반대 운동을 펼친다.

백 사장은 춘삼을 이용해 대규에게 큰 타격을 미치는 사건을 조작하고, 이로 인해 대규 어머니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다. 퍼뜩 정신을 차린 춘삼이 대규의 편에 서면서 두 사람의 해묵은 오해와 질시가 사그러든다.

결론을 도식적으로 내지 않았다는 점은 뜻밖이다. 이 때문에 최소한 감독과 두 배우가 의도했던 메시지는 훼손되지 않은 게 위로가 된다.

29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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