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향수
상태바
영화 - 향수
  • 윤종원
  • 승인 2007.03.16 08: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설을 깊은 충격으로 대하면, 그게 어떤 작품이든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것에 대한 반가움보다는 막연한 불안함, 심하면 거부감까지 갖게 된다.

읽는 이의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있을 법한 세계"가 영상을 통해 눈앞의 현실로 그려지는 게 그리 기분 좋은 일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물며 결코 실체는 없으나 상상을 통해 각자의 마음 속에 그려낸 냄새까지 영화로 담을 수 있을까.

1985년 출간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베스트셀러 "향수"가 영화로 만들어졌다. "콘트라베이스" "좀머씨 이야기" 등 인간의 고독과 존재감을 독특한 접근으로 풀어내는 쥐스킨트의 대표작 중 하나다.

영화는 소설보다 훨씬 더 음산한 분위기다. 향기 자체의 묘사에 공을 들였던 원작과 달리 영화는 미스터리한 사건의 과정에 집중했다. 또 파리 어시장부터 훑는 배경은 향기로운 향취보다는 역겨운 냄새를 먼저 떠올리게 한다.

그럼에도 한번쯤 보고 느낄 만하다. 한 천재적인 인간(천재성은 참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두드러진다)의 집착이 가져온 크나큰 불행을 일반인은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세상이 결코 평범한 이들로만 이뤄지지 않았으니. 소설에 대한 빚을 갚기에 충분한 영상이 담겨 있으며 소설만큼이나 간결한 문체가 영화에도 통용됐다.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벤 위쇼 분)는 파리 어시장의 버려진 내장의 쓰레기 더미 위에서 태어난다. 그의 첫 울음은 영아를 유기한 어머니의 죽음으로 이어졌고, 참담한 생활을 해야 하는 고아원에서도 그의 목숨은 질기게 버텨나간다.

그가 삶을 지탱할 수 있는 건 냄새. 세상의 모든 냄새를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냄새를 맡는 데는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다.

5년 이상 버틸 수 없다는 가죽공장에서도 삐쩍 마른 몸으로 버티는 그르누이는 어느 날 배달을 나갔다 그를 온통 사로잡는 미묘한 향기를 맡게 된다. 그 향기를 따라가 보니 싱그러운 여인에게서 나는 냄새였다. 그는 뜻하지 않게 그 여자를 죽이고 난 후 그 여자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는다.

그르누이는 퇴락한 향수 제조자 발디니(더스틴 호프만)를 찾아가 당시 유행하던 "사랑과 영혼"이라는 향수보다 더 뛰어난 향의 조합을 이룬 향수를 만들어주는 대신 향수 제조법을 전수받는다.

발디니에게서 천상의 향수에 대해 듣는다. 파라오의 무덤 속 항아리를 여는 순간, 그 미묘하고도 강력한 향기가 퍼져나와 잠시라도 그 향기를 맡는 모든 사람들을 파라다이스로 데려다주는 향수다.

그 향수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은 그르누이는 향수 제조의 원산지인 그라스 지역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희한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아름다운 여인들이 모두 머리카락이 잘린 채 나체의 시신으로 발견되는 것.

그라스의 거상 안토인 리치스(앨런 릭맨)는 이 해괴한 살인마가 마지막에 자신의 아름다운 딸 로라(레이첼 허드 우드)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다.

대사가 거의 없는 그르누이 역의 벤 위쇼는 영화의 분위기에 더할 나위 없이 딱 맞아떨어진다. 걸음걸이, 눈으로 표현하는 표정과 대사 등이 완숙하면서도 풋풋함을 잃지 않았다.

마지막 반전에서 등장하는 군중신은 그 자체로 숨을 죽이게 한다. 그 장면은 되레 그르누이가 추구해 결국 구현한 향기가 결코 파라다이스를 경험하게 하는 건 아니지 않았을까, 라는 의심을 하게 만든다.

22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