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아버지의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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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아버지의 깃발
  • 윤종원
  • 승인 2007.01.22 0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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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가 만들어낸 전쟁영웅의 쓸쓸한 초상화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하고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을 맡았다면 왠지 신뢰가 가지 않는가.

할리우드가 만든 또 하나의 전쟁영화 "아버지의 깃발"은 스필버그와 이스트우드라는 중량급 "투톱"을 내세워 관객들을 혹하게 한다. 이 영화를 홍보하는 메인 카피도 "두 거장이 전하는 감동의 울림"이다.

하지만 국내 관객들이 두 사람의 이름에 너무 현혹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두 사람이 감독으로, 또는 배우로 많은 흥행작을 만들어낸 것은 사실이지만 과거의 명성이 현재의 작품성까지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깃발"은 무엇보다도 개봉 시기가 좋지 않다. 세계적으로 무수한 비난을 받고 있는 미국의 이라크전(戰)이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개봉된 할리우드식 전쟁영화는 미국 내에서의 반응과 미국 외에서의 반응이 크게 엇갈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게다가 스필버그와 이스트우드는 할리우드 영화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아니던가.

"아버지의 깃발"은 미국인이, 미국인의 시각에서 그린 또 하나의 미국식 전쟁영화다. 2차대전 말기 이오지마 섬에서 벌어진 미군과 일본군과의 처절했던 전투를 소재로 만든 "아버지의 깃발"에 일본인의 삶과 고뇌는 묘사되지 않는다.

일본은 다만 미국의 시선에 의해서만 존재할 뿐이다. 영화는 전쟁에 참가한 미군 병사들의 고통과 고뇌, 우정에 초점을 맞춘다.

스필버그와 이스트우드는 그러나 "아버지의 깃발"에 이어 같은 이오지마 전투를 일본군 병사의 시각으로 그린 작품인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를 제작해 나름대로 균형을 맞췄다.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아카데미상의 전초전격인 2007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받았으며 국내에서는 3월 개봉 예정이다.

"아버지의 깃발"이 기존의 흔해빠진 할리우드식 전쟁영화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일방적인 선악구도가 아닌, 미디어에 의해 만들어진 미국 전쟁영웅들의 복잡한 심리상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이오지마 상륙작전에 참전한 평범한 미군 위생병 존 닥 브래들리(라이언 필립)와 통신병 레니 개그논(제시 브래포드), 인디언 출신인 아이라 헤이즈(애덤 비치)는 전투 중 다른 동료들과 함께 수라바치 산 정상에 성조기를 꽂는다.

이 장면을 찍은 AP통신 종군기자 조 로젠탈의 사진은 곧 미국에서 발행되는 주요 신문의 1면을 장식하면서 종전을 갈망하던 미국 사회에 일대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퓰리처상을 받은 로젠탈의 사진은 수많은 잡지와 신문, 우표, 포스터를 장식했으며 버지니아주 알링턴 국립묘지에 위치한 해병대 전쟁기념관 추모비로도 제작되는 등 미국의 긍지와 자부심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됐다.

또 이 사진은 오랜 전쟁에 지쳐있던 미국민들을 사로잡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전쟁의 종식을 알리는 의미가 됐고 자신의 아들이 전쟁터에서 살아돌아오리란 희망을 품게 했으며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는 위안과 자부심이 됐다.

이 같은 국민감정을 이용하려는 미국 정부는 사진 속 군인들 중 살아있는 세 명을 본국으로 불러 전쟁기금 모금에 나서게 한다.

정부와 미디어에 의해 졸지에 전쟁영웅 대접을 받게 된 이들은 전국을 돌며 열렬한 환호와 갈채 속에 기금 마련 행사에 참석해 얼굴마담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전사한 동료에 대한 부채의식을 갖고 있는 아이라는 정부와 미디어의 지나친 "영웅만들기" 행태에 염증을 느껴 행사 참석을 거부하고 전장 복귀를 요청하는 등 정신적 혼란을 겪는다.

영화는 치열한 전투가 진행중인 이오지마와 요란뻑적지근한 전쟁기금 모금 행사가 열리는 미국 본토를 왔다갔다 하며 주인공들의 정신적 고뇌를 부각시키지만 관객들에게 감동을 줘야겠다는 의욕이 지나친 나머지 종종 감상주의나 설교조의 대사로 빠지는 우를 범한다.

이미 미국인 외에는 다 알고 있는 미국식 영웅주의의 허상을 이제서야 마치 대단한 문제나 깨달은 듯이 정색을 하고 고발하는 것도 좀 낯 간지럽다.

또 자매작인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로 균형을 맞췄다고는 하지만 "아버지의 깃발" 하나만 놓고 보면 너무나 많은 미국적 애국주의와 군국주의의 이미지들이 많이 등장해 더 이상 미국을 "자유의 수호자"로 인식하지 않는 많은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이미 할리우드가 주입하고자 하는 가치관에 많이 식상해있는 국내 관객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2월15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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