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아주 특별한 손님
상태바
영화 - 아주 특별한 손님
  • 윤종원
  • 승인 2006.11.20 13: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말 오후 도심의 한 편의점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던 보경(한효주 분)에게 낯선 청년 둘이 다가간다. 그들은 다짜고짜 "명은이가 아니냐"라며 접근한다.

보경이 부인을 해도 의혹의 눈초리를 쉽게 거두지 않던 둘은 급기야 자신들의 고향 마을로 가 명은 행세를 해달라는 어이없는 부탁을 한다. 명은의 아버지가 임종을 앞두고 있는데 보경이 몇 해 전 소식이 끊긴 명은과 많이 닮았다는 이유. 망설이던 보경은 "좋은 일 하는 셈 치라"는 설득에 이들과 동행한다.

일본 소설가 다이라 아즈코의 "애드리브 나이트"(국내에서는 "멋진 하루"라는 단편 소설집으로 발간)를 원작으로 한 "아주 특별한 손님"은 예기치 못한 하룻밤 여행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생면부지 남자의 임종을 지키러 길을 떠나는 보경의 심리와 사연에 대한 궁금증이 영화의 한 축을 차지한다면 다른 한 축에는 장례를 준비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의 다양한 캐릭터와 그들 사이의 관계가 놓여있다.

"여자, 정혜" "러브토크"의 이윤기 감독은 이번에도 참을성 있게 보경을 지켜본다. 꽁꽁 닫혀 있는 보경의 마음을 알기 위해 감독이 하는 일은 그저 카메라를 조용히 가동하는 것뿐. 그 과정에서 보경은 말을 하는 대신 새 양말을 신어보고 다시 개놓는 동작을 통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하려 한다. 그만큼 영화는 여백이 많고 호흡이 길며, 손끝 하나의 떨림까지 주시한다. 그래서 열린 해석을 가능하게 하지만 반면 지나친 섬세함에 집중력이 떨어지기도 한다.

임권택 감독의 "축제"나 박철수 감독의 "학생부군신위"의 단면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에는 죽음 앞에서 까발려지는 인간의 속내와 관계, 욕심들이 펼쳐진다. 과장된 반응과 거짓된 말들, 놀랍도록 무감한 대처와 은근히 축제를 즐기려는 자들의 면면이 부조화 속의 조화를 이루며 공존한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 마을 청년들은 보경에게 가짜 명은 행세를 하라고 주문하지만 그들과 마을 사람들이 보경을 대하는 태도에는 무례와 뻔뻔함이 녹아 있다. 이 역시 아이러니의 공존. 영화는 그것이 사람 사는 모습 아니냐고 묻는다.

누군가를 기다리다 졸지에 약속 장소를 이탈해버린 보경에게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으로부터의 휴대전화 문자가 잇따라 들어온다. "네가 안 나타난다고 내가 널 못 찾을 줄 알아"라는 협박성 내용과 함께. 그러한 상황은 보경의 침묵과 함께 관객의 호기심을 자아낸다.

영화는 보경의 사연이 만들 파장을 극대화하지 않고 마지막에 짧고 간결하게 들려주며 마무리한다. 그럼으로써 그때껏 숨죽이며 보경을 관찰하던 관객에게 긴 여운을 안기려 한다. 그러나 여백이 많다고 꼭 여운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입맛만 다시게 하다 아무 맛도 못 느끼게 할 위험이 있다.

KBS 계열의 케이블TVㆍ위성방송 MPP(복수채널사용사업자) KBS N이 제작한 HD영화로 제11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됐다.

30일 개봉, 전체관람가.


<연합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