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해바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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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해바라기
  • 윤종원
  • 승인 2006.11.1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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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서로를 탓할까.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 개봉하게 된 두 편의 영화가 비슷한 주제를 갖고 있다. 이미 개봉한 설경구 주연의 "열혈남아"와 23일 개봉할 김래원 주연의 "해바라기"(감독 강석범, 제작 아이비젼엔터테인먼트)가 그렇다.

큰 얼개는 주먹과 가족애의 만남. 사람까지 죽일 정도인 깡패가 어머니라는 존재를 깨달으며 변해가는 과정을 그렸다. "열혈남아"에서는 죽여야 하는 자의 어머니 나문희가, "해바라기"는 죽인 자의 어머니 김해숙이 등장한다. 아무리 "풀어가는 방식은 다르다"고 항변하겠지만 김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두 영화 모두 바라지 않았을 일이 벌어졌다.

"열혈남아"가 배우들의 징글맞을 정도의 연기력으로 충만하긴 했으나 뻔한 결말을 향해가는 것에 대한 부담을 끝내 지우지 못했듯 "해바라기"도 여백의 미와 고른 숨을 쉬는 호흡 조절이 보이긴 했으나 이야기 구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진정성이 느껴지는 김래원와 김해숙의 연기 호흡은 신인 배우 허이재의 오버 액션으로 방해받기 일쑤다. 허이재는 발랄했지만 아직 강약 조절이 미흡하다. 김래원과 김해숙이 더 많은 추억을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잠깐 해본다.

또한 해바라기 식당의 존재 가치가 너무 뒤늦게 드러나 관객이 "왜"라는 의문에서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하게 한 것 역시 대중 접근방식에선 약점이 될 듯.

그러나 성긴 듯 뚜렷하게 한 지점을 향해가는 일관성과 함께 김래원이 한꺼번에 모든 것을 분출하는 듯한 마지막 장면의 인상은 깊게 각인된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자의 단 하나의 희망이 꺾였을 때 느낄 분노가 그 희망만큼 크다는 것을 전한다.

살인을 저질렀던 오태식(김래원 분)은 10년 만에 출소한다. 기차 안에서 오래된 수첩을 꺼내든 태식은 교도소 안에서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해가며 지워나간다. 그가 인생의 목표로 삼은 것은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다시는 싸우지 않는다" "다시는 울지 않는다", 이 세 가지.

그가 도착한 곳은 덕자(김해숙)가 운영하는 해바라기 식당이다. 덕자는 그를 아들로 삼아 반갑게 받아들이고, 딸 희주(허이재)는 그런 어머니가 못마땅하지만 단 하나의 소원이란 말에 허락한다.

10년 전 태식은 주먹 하나로 그 지역을 평정해버렸을 정도였다. 그러나 시의원 조판수(김병옥)의 계략으로 덕자의 아들을 죽이게 됐던 것. 태식의 출소로 그 지역 조직폭력배들이 경계하는 데다 조판수는 거대한 쇼핑몰을 세우기 위해 해바라기 식당을 없애려 한다.

태식은 덕자, 희주의 정겨운 생활에 생전 처음 지키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덕자는 늘 넉넉한 웃음으로, 희주는 매몰찬 듯 하지만 누구보다도 살가운 웃음으로 태식을 감싼다. 태식의 "희망 수첩"에 적힌 항목들은 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뿌듯하게도 차근차근 지워져간다.

위태로운 행복은 금세 끝난다. 해바라기 식당과 태식을 지키기 위해 덕자는 죽은 아들의 일기장을 조판수에게 내밀지만 이게 오히려 화근이 된다. 조판수는 일기장을 없애기 위해 태식을 두려워하는 조직폭력배를 동원한다.

이루마가 연주한 애잔한 피아노곡은 영화를 감상적으로 이끌지만, 마지막 부분에선 너무 오래 끌었다. 클라이맥스가 시작되기 전부터 가라앉은 음악은 정작 정점에서 타오르지 못한다.

"미스터 소크라테스"에 이어 남성적인 매력을 드러내고자 하는 김래원의 의지가 충만한 작품이다.

23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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