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기 기능 신설·진료수가 개정으로 의료기관 역할 분화 나서
김도훈 연구원, 통합수가·의원 협력망·병원계 전문 거버넌스 제언
[병원신문=정윤식 기자] 초고령사회에 대응하는 일본의 보건의료정책이 병원 입원과 치료 중심에서 지역사회 기반의 재택의료 및 장기요양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다.
급성기 치료부터 회복·재활, 재택의료, 장기요양까지 지역 내에서 연속적으로 제공하는 '지역 완결형 의료·돌봄 체계' 구축이 핵심이다.
일본 정부는 85세 이상 초고령 인구가 급증하고 생산연령인구는 감소하는 소위 '2040년 문제'에 대비해 의료기관의 기능 분화와 진료수가 개정, 재택의료 지원체계 강화, 의료 디지털 전환(DX) 등을 추진하고 있다.
김도훈 한국병원정책연구원 연구원은 최근 대한재택의료학회지에 게재한 '변화하는 인구구조에 대응하는 일본의 보건의료정책 동향과 시사점'을 통해 이 같은 일본의 보건의료 및 장기요양 정책 개혁을 분석하고 한국형 통합돌봄 체계의 정착을 위한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특히 해당 논문에서 김도훈 연구원은 우리나라의 '의료·요양·돌봄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이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의료·돌봄 통합 수가체계 구축, 24시간 대응이 가능한 재택의료 네트워크 확대, 지역의사회와 병원계가 참여하는 전문 의료 거버넌스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40년 문제' 대응…병상 관리에서 의료기관 기능 분화로
일본은 2005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이후 고령화 심화와 총인구 감소에 따른 의료·장기요양 수요 변화에 대응해 왔다.
특히, 1947~1949년 출생한 제1차 베이비붐 세대 약 800만 명이 모두 75세 이상 후기고령자로 진입한 '2025년 문제'에 이어 85세 이상 인구가 급증하고 생산연령인구는 감소하는 '2040년 문제'를 앞두고 있다.
연간 사망자 수가 160만 명을 넘어선 '초고령 다사망 사회'에 진입한 것도 의료정책 전환의 배경이다.
일본 정부가 주목하는 과제 중 하나는 의학적 치료 필요성이 낮음에도 돌봄 공백이나 지역사회 시설 부족으로 장기간 병원에 머무르는 '사회적 입원'의 억제다.
이를 위해 급성기 치료 이후 회복·재활과 재택 복귀를 지원하는 지역포괄케어 병동의 역할을 강화하고 의료기관의 기능을 재편하고 있다.
2025년 12월 공포된 개정 의료법에 기반해 2027년도부터 순차적으로 시행되는 '새로운 지역의료구상'도 같은 맥락이다.
기존 지역의료구상이 고도급성기·일반급성기·회복기·만성기 등 병상 기능 조정에 집중했다면 새로운 지역의료구상은 외래, 재택의료, 장기요양 연계, 의료인력 확보까지 포괄한다.
주목할 점은 대학병원 등이 담당하는 '급성기 거점 기능'과 별개로 고령층 구급 환자의 초동 대응과 조기 재활·퇴원 촉진을 담당하는 '포괄기 기능'을 제도화한 부분이다.
이는 2026년도 진료수가 개정에서 신설된 '급성기 일반입원기본료(A/B)' 역시 이러한 의료기관 기능 분화를 뒷받침하기 위한 장치다.
진료수가 개정에서는 2년 평균 3.09%의 수가 인상을 결정하고 보건의료 종사자의 임금 인상을 지원하는 평가료 개편과 간호·다직종 협동 가산 등도 추진했다.
병원 퇴원 시 지역 방문진료 의사와 방문간호사, 케어매니저 등이 치료계획을 공동으로 수립하는 '퇴원 시 공동지도 가산'을 세분화하는 등 의료와 장기요양 간 연계 보상도 강화한 일본이다.
김도훈 연구원은 “일본의 이러한 개혁은 단순한 병상 수 조정을 넘어 의료기관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급성기 치료 이후 환자가 지역사회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공급체계의 전환”이라고 분석했다.
24시간 재택의료 대응…의원 간 공동 당직과 차등 보상
김도훈 연구원의 논문 내용에 따르면 일본의 재택의료 공급체계를 뒷받침하는 주요 제도는 '기능강화형 재택요양지원진료소'다.
일본 정부는 2006년 재택요양지원진료소 및 재택요양지원병원 제도를 신설한 이후 재택의료 제공 역량에 따라 기능강화형과 일반형을 구분해 육성해 왔다.
여기서 기능강화형은 다시 단독형과 연계형으로 나뉜다.
단독형은 상근의사 3인 이상을 확보하고 24시간 연락체계와 방문진료·방문간호 대응체계를 운영하는 형태이고, 연계형은 지역 내 최대 10개 의원이 공동으로 참여해 당직과 응급 연락을 분담하는 형태로, 의원마다 상근의사 1인 이상을 갖춰야 한다.
진료 실적에 대한 요건도 마련된 게 특징이다.
단독형은 전년도 긴급 왕진 10건 이상과 재택 임종 4건 이상의 실적이 요구된다.
연계형 역시 참여 의원 전체를 기준으로 긴급 왕진 10건 이상과 재택 임종 4건 이상을 충족해야 하며, 개별 의원의 재택 임종 실적도 최소 1건 이상 필요하다.
이들 기관은 재택 환자의 상태가 악화됐을 때 즉시 입원할 수 있는 병상을 자체 확보하거나 지역 종합병원과의 계약을 통해 마련해야 한다.
일본 정부는 이러한 기능과 실적에 따라 재택요양지도관리료와 방문진료 관련 가산을 차등 지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단독 개원의가 24시간 365일 재택 환자의 응급 상황에 대응하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해 의원 간 협력체계를 제도화하고 그에 따른 보상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또한 재택의료와 장기요양의 연계를 위해 방문진료 의사, 방문간호사, 약사, 케어매니저 등의 정보 공유와 다학제 협력에도 수가를 적용하고 있으며 의료 DX와 돌봄로봇 도입의 경우 인력 부족에 대응하는 주요 수단 가운데 하나다.
김도훈 연구원은 “일본은 전자처방전과 마이넘버카드 기반 통합 건강보험증 등을 활용해 의료·장기요양 데이터 연계를 추진하고 있으며, 재택 환자의 상태를 원격으로 관리하는 온라인 진료 관련 수가도 운영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김 연구원은 이어 “일정 수준 이상의 AI 모니터링 센서와 돌봄로봇을 도입하고 안전성이 입증된 장기요양시설에는 기존 환자 3인당 직원 1인이라는 인력 배치 기준을 환자 3.4인당 직원 1인 또는 4인당 직원 1인까지 완화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라고 부언했다.
한국형 통합돌봄 정착 위해 수가 현실화·재택의료망·거버넌스 제언
김도훈 연구원은 일본의 보건의료 개혁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통합돌봄 체계의 정착을 위한 세 가지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첫 번째는 '의료·요양·돌봄 통합 수가' 도입과 기존 재택의료센터 다직종 팀 수가의 현실화다.
현재 국내에서는 일차의료 왕진 수가 시범사업과 장기요양 재택의료센터 시범사업 등이 추진되고 있지만 낮은 수가 수준, 외래진료 공백에 따른 기회비용, 방문 대상 환자 발굴의 어려움, 행정절차 및 지원 인력 부족 등이 참여를 제한하는 요인이다.
김도훈 연구원은 “완전히 새로운 수가를 무조건 신설하기보다는 현행 재택의료센터 모델 내 다직종 팀 활동에 대한 수가를 실질적인 기회비용과 인건비를 반영해 현실화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일본의 간호·다직종 협동 가산과 정보 공유 보상체계를 참고해 국내 재택의료 팀 수가를 개선하고 퇴원 시 복합 연계 가산과 의료·장기요양 실시간 데이터 연계 수가 등을 결합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두 번째는 '한국형 기능강화형 재택의료 네트워크' 구축과 24시간 대응 주치의제의 법제화다.
이는 개별 의원과 의사의 자발적인 참여에 의존하는 현행 재택의료센터 사업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지역의사회를 중심으로 3~10개 동네의원이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방안을 뜻한다.
참여 의원이 주말과 야간 당직을 공동으로 분담하고 환자 정보를 공유하도록 하면서 24시간 대응 가산과 연간 임종 실적에 따른 성과 연동형 인센티브를 지급하자는 것.
김 연구원은 “지역의사회를 중심으로 다수의 동네의원(3~10개)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주말 및 야간 당직을 공동으로 분담하고, 상호 간에 환자 임상 정보를 공유하는 '한국형 연계형 재택의료원'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세 번째는 지역의사회와 병원계가 참여하는 전문 의료 거버넌스 구축이다.
현행 통합돌봄법은 시·군·구 등 지방자치단체에 서비스 제공의 주체 역할을 부여하고 있지만 투약 관리, 방문간호 지시, 말기암 환자 호스피스 등 전문적인 의료 판단까지 지자체의 행정적 거버넌스만으로 담당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존재한다.
실제로 일본에서도 지자체가 행정적 조정을 맡는 한편 실제 의료 및 돌봄 서비스는 지역의사회와 의료·장기요양기관이 협력해 제공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에 김도훈 연구원은 국민건강보험공단 각 지사와 지역의사회, 병원계 및 방문간호협회 등이 공동 참여하는 '지역통합돌봄 의료지원센터(가칭)' 설치를 제안했다.
특히, 고령자의 케어플랜 수립과 거동불편 환자 스크리닝 등 전문적인 의료 판단이 요구되는 기능을 지역 일차의료기관과 거점 병원이 협력하는 의료 거버넌스 체계로 이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김도훈 연구원이다.
김 연구원은 “일본의 보건의료 개혁이 한국에 던지는 시사점은 단순한 병상 조정이나 개별 수가 개편을 넘어 의료기관의 기능 분화와 재택의료 공급체계 확충, 의료·돌봄 연계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는 데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한국형 통합돌봄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기존 재택의료센터의 다직종 팀 보상을 현실화하고 의원 간 24시간 대응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한편, 지역의사회와 병원계가 전문적인 의료서비스 연계에 참여하는 구조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거듭 역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