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호로비츠를 위하여
상태바
영화 - 호로비츠를 위하여
  • 윤종원
  • 승인 2006.05.11 14: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뭉클한 감동, 호로비츠를 위하여

"시네마 천국" "빌리 엘리어트" "투게더". 천재 소년의 성장기와 그들의 멘토(정신적 스승)를 다룬 영화는 감동적인 이야기로 관객의 가슴을 적셔왔다.

"호로비츠를 위하여"(감독 권형진, 제작 싸이더스FNH)는 이처럼 스승과 제자의 가슴 뭉클한 정을 담고 있다. 강원도 산골 아이들과 선생님의 관계를 그린 "선생 김봉두"가 코미디 장르로 외피를 입힌 반면 이 영화는 따뜻한 드라마로 이끌어간다.

마치 모차르트와 살리에르처럼 천재와 그저 천재를 알아볼 수 있는 눈과 귀를 가진 범인의 대비를,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를 꿈꿔왔지만 변두리 피아노학원 선생에 머물고 있는 스승과 자폐라는 외피 속에 절대 음감을 가진 천재 제자의 갈등과 애정으로 풀어나갔다.

"호로비츠"는 영화 속 박용우의 대사에 등장하는 "해변의 공포(호러 비치ㆍhorro beach)"가 아닌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구 소련의 천재 피아니스트(1904-1989).김지수(엄정화)가 닮고 싶어하는 음악가다.

그다지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임에도 딸의 꿈을 도와주고 싶었던 아버지 덕택에 피아노를 전공한 김지수는 유학을 가지 못하고, 교수에게 아부할 줄도 모르는 성격 탓에 성공과 멀어진 채 변두리 음악학원을 차리게 된다.

이사 온 첫날 메트로놈을 훔쳐 달아간 경민(신의재)을 만나게 된다. 할머니와 단 둘이 살면서 할머니에게 온갖 구박을 받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 채 말썽만 부리는 천덕꾸러기인 경민을 우연한 기회에 지수가 낮에만 보살핀다.

지수는 경민의 절대 음감을 발견한다. 지수는 경민을 통해 뛰어난 지도자로 탈바꿈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려고 한다. 그들 곁에는 피자가게에서 일하는 심광호(박용우)가 맴돈다. 지수의 피아노치는 모습에 반해버린 광호는 지수와 경민의 든든한 우군이 된다. 물론 지수는 광호를 쳐다보지도 않으려 하지만.

지수와 경민은 피아노를 매개로 자신들도 모르는 새 스승과 제자가 아닌 엄마와 아들 같은 존재가 돼간다. 그러나 콩쿠르에서 경민이 피아노 앞에서 주저앉아 버린 후 갈등이 생긴다.

경민을 내쳤지만 가슴 속에 박혀 있는 어린 제자를 잊지 못하는 지수는 광호의 도움으로 다시 만나고, 피아니스트로 성공한 지수의 친구를 만나 하우스 콘서트에 초대된 날 경민은 스승이자 엄마 같은 지수를 위한 독주회를 펼친다. 경민의 재능은 유명한 독일 교수의 눈에 띄고, 할머니마저 돌아가시게 된 경민의 앞날을 위해 지수의 깊은 고민이 시작된다.

영화 초반에는 다소 상투적인 스토리 전개로 그저 그런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중반부를 넘어서며 드라마 구조에 빠져들게 만든다. 극장을 나설 때 관객 대부분의 눈시울은 뜨겁게 젖어들 정도.

단순한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넘어서 인간애를 놓지 않았기에 휴먼 드라마로서 손색없는 영화가 됐다.

엄정화의 피아노 연주와 더불어 진짜 천재 피아니스트 신의재 군의 실력을 감상하는 것은 클래식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기쁨을 준다. 신의재는 7살에 피아노를 시작해 9개월 만에 전국 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한 신동. 제작진은 아역배우 중 피아노를 잘 치는 아이가 아닌, 피아노를 정말 잘 치는 아이를 배우로 발탁했다.

피아노 연주는 덤이지만 갈수록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내는 배우로 인정받고 있는 엄정화와 어머니를 교통사고로 잃은 뒤 자기 세계에 갇혀 있는 경민을 표현해 낸 "신인 배우" 신의재의 연기 앙상블은 더욱 볼 만하다.

이제 물이 올랐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박용우는 단순한 조연에 그칠 수 있었던 심광호에게 생명을 불어넣으며 영화의 호흡을 조절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무리한 기대, 자유로운 표현보다는 획일적인 연습을 강요하는 우리네 교육 현실이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왕의 남자"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등 숱한 영화음악을 작곡한 이병우 씨가 정성껏 풀어놓은 클래식 선율과, 지수와 경민이 사랑을 확인하는 주요한 장면에서 등장하는 슈만의 "트로이 메라이"를 비롯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2번 등 명곡을 감상하며 마음을 적실 수 있다.

25일 개봉. 전체 관람가.

<연합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