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밀리언달러 베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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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영화-밀리언달러 베이비
  • 윤종원
  • 승인 2005.03.02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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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언달러 베이비(Million Dollar Baby)는 "허름한 가게에서 예상치 않게 얻은 보석 같은 물건"의 의미다. 살면서 이런 순간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러기에 "밀리언달러 베이비"의 의미는 백만불을 넘어설 것이다. 그 짜릿한 환희의 순간이 어찌 돈으로 표현될 것인가.

프랭키(클린트 이스트우드 분)는 한때 잘 나가던 권투 트레이너였지만 지금은 체육관의 세제 가격까지 따지며 살아가는 냉소적인 늙은 관장일 뿐이다. 그의 유일한 친구는 은퇴한 복서이자 현재는 체육관 청소를 맡고 있는 스크랩(모건 프리먼).이 두 늙은이는 오늘도 시덥지 않은 말싸움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희망도 없고 낙도 없다. 그런 그들 앞에 어느날 31살의 웨이트리스 매기(힐러리 스웽크)가 복싱을 하겠다고 나타난다.

이 영화는 출연진만으로 이미 백만달러의 가치를 발휘한다. 이제는 도의 경지에 이른 듯한 모건 프리먼의 나지막한 내레이션과 "거장" 반열에 오른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삶의 회한을 끌어안은 눈빛, 그리고 "무소의 뿔처럼 가는" 힐러리 스웽크의 저돌적인 모습 사이에 빈틈은 없다.

사실 이 영화는 "띄엄띄엄" 보다가는 "별 것 없네" 하기 십상이다. 따지고 들면 새로울 것이 없는 이야기이고, 자극적인 구석은 찾아볼 수 없다. 감각적인 맛을 원하는 성질 급한 관객에게는 대단히 심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의 맛은 깊이에 있다. 특별한 재료 하나 없어보이는 국물에서 진한 맛이 우러나올 때와 같은 따뜻함과 진심이 느껴진다. 인공 조미료 하나 없이 늙은 주방장이 세월을 솜씨 하나로 정직하게 끓여낸 국물. 그 맛을 단순히 세치 혀 끝으로만 느끼려든다면 번지수를 단단히 잘못 찾은 것이다.

이제는 자글자글한 주름 사이로 정상적인 살이 안 보일 정도가 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일흔넷의 나이에 걸맞는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제작 감독에 주연까지 겸한 이 작품에서 그는 어두운 체육관을 부유하는 먼지마저 잡아내려는 듯 섬세한 터치로 한 폭의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그 시선이 마치 동양화 같다.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가 안겨줬던 여백과 생략의 미가 솟아난다. 복싱 영화에서 동양화를 느끼다니.

프랭키는 바싹 마른 장작 같은 목소리로 복서를 꿈꾸는 매기를 한심하다는 듯 몰아붙인다. "서른한살이 된 여자가 발레리나를 꿈꾸지 않듯 복싱선수를 꿈꿔도 안된다."

그러나 매기는 프랭키의 괄시에도 불구하고 지난한 인생의 돌파구는 오직 복싱 뿐이라는 일념으로 밤낮을 연습한다. 둘은 스크랩의 교묘한 다리놓기로 마침내 무모할 것 같은 도전에 뛰어든다. 그런데 이게 웬일. 매기는 승승장구한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외로움이다. 피 한방울 안 섞인 프랭키와 매기가 서로에게 딸과 아빠가 되어 줄 수 있는 것은 외로움 때문이다. 허공을 가르는 매기의 펀치는 외로움을 부수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준다.

이 영화가 멋진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그 복싱의 치명성을 놓치고 가지 않은점. 그러나 그 어떤 상황에서도 호들갑을 떨지는 않는다.

이 영화는 지난해 연말 미국에서 단 9개관에서 출발했지만 온갖 상을 휩쓸며 장기 상영에 돌입했다. 이미 상복이 터지긴 했지만 힐러리 스웽크의 연기는 참으로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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