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파송송 계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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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영화> 파송송 계란탁
  • 윤종원
  • 승인 2005.02.14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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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의 하나가 라면이다. 또 그 라면을 맛있게 끓이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파를 송송 썰어넣고 계란을 하나 탁 깨서 넣는 것이다. 이렇게 라면을 먹는 이미지는 구수하고 정답다.

영화 "파송송 계란탁" 역시 마찬가지다. 일련의 영화를 통해 흥행성을 보장받은 배우 임창정 특유의 "구렁이 담 넘 듯 하는" 캐릭터를 십분 살리며 코믹한 요소를 송송 썰어넣었다. 또 막판에는 신파를 탁 하고 깨트려넣음으로써 휴먼 코미디로서의 구색을 갖췄다.

그러나 라면의 맛을 누구나 알고 있듯, 이 영화 역시 그 전개나 결말을 어렵지않게 예상할 수 있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 또 제아무리 기교를 부려도 라면은 라면이듯, 이 영화 역시 임창정에 기댄 코믹영화라는 출신성분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불법음반제작업에 종사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총각 대규(임창정 분)에게 난데없이 아홉살짜리 꼬마가 나타나 "당신이 내 아버지요"라고 주장한다. 흥미로운 것은 아이의 태도. 태어나서 처음 보는 아버지임에도 전혀 애틋한 감흥이 없는데다 어려워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자신을 "전인권"이라 소개하며 천연덕스럽게 "돌고 돌고 돌고"를 불러댄다.

마른 하늘 날벼락을 맞은 대규의 황당함이야 예정된 수순. 그러나 아이는 그런 아버지에 아랑곳없이 소원을 들어달라며 엉겨붙는다.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커다란 목청으로 뻔뻔하게 소리지르면서. 소원은 다름아닌 국토종단. 결국 아이를 떼어놓는데 실패한 대규는 계란도 익힐 듯한 삼복더위에 아이와 함께 길을 나선다.

자연스럽게 영화는 양은냄비에 머물지 않고 우리 국토의 산야를 담게된다. 벼익어가는 여름 들녘에서부터 푸른 바다, 코스모스 핀 가을 도로변까지 영화는 짐짓 무심한 척하며 화면에 담아냈다.

이 어색한 부자의 모습은 기타노 다케시 주연의 "기쿠지로의 여름"과 상당히 닮았다. 물론 기쿠지로는 아들이 아닌 이웃집 꼬마와 길을 나서지만 이들이 험한 여정끝에 인간의 정을 나누듯, 대규와 인권 역시 같은 수순을 거친다. 두 영화 모두 처음에는 아이를 귀찮은 짐짝 취급하던 어른이 점차 변화하는 모습과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대규의 변화는 인권과의 보조 맞추기로 표현된다. 자기 몸뚱어리만한 가방을 짊어지고 힘겹게 걸어가는 아이를 뒤에 두고 대규는 처음에는 멀찌감치 앞서간다. 그러다 여행이 중반으로 접어들 때쯤 그는 아이의 가방을 빼앗아 들어주고 마지막에는 아이를 업고 걷는다. 주변에 자신을 아이의 삼촌이라고 소개하던 대규가 어느새 아이의 "아빠"가 되는 것.

영화는 이 모든 과정을 절대 서두르지 않고 그렸다. "위대한 유산"으로 200만흥행을 한 오상훈 감독의 자신감이 배어나는 대목. 옆길로 새지 않고 일정한 호흡을 유지하며 차분히 변화를 쫓았다. 그것이 때로는 상투적이고 때로는 낯간지러울지라도 부담스럽지는 않다.

임창정은 이번에도 역시 살가운 연기를 통해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다. 대규의 심리적 변화가 전혀 거슬리지 않게 다가오는 것은 임창정의 힘이다. 오죽하면 소설 "허삼관 매혈기"가 떠오를 정도. 자신의 친아들이 아니라고 수없이 되뇌면서도 양자를 위해 자신의 피를 파는 허삼관의 모습이 임창정에게 살짝 오버랩된다.

그러나 사람마다 라면발의 익은 정도에 대한 취향이 제각각인만큼, 이 영화의 삶아진 정도에 대한 만족도는 분분하다. 결정적으로 반전의 효과가 미약한 것이 아쉽다. 너무 여유를 부린 탓에 마무리할 시간이 없었던 것일까. 아이의 대사와 회상신을 통해 처리된 반전이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면서 한층 진할 수 있었던 여운이 싱거워졌다.

18일 개봉,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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