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실기시험 CCTV 영상 폐기 ‘독소조항’ 논란 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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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실기시험 CCTV 영상 폐기 ‘독소조항’ 논란 점화
  • 정윤식 기자
  • 승인 2024.02.15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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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시원, 2022년도 의사국시 실기시험부터 ‘시험종료 20일 후 폐기’ 공고 삽입
의대생들, “2018년 행정소송 패소 이후 국시원이 응시생 기만하고 있어” 주장
국시원, “재채점 또는 이의제기 용도 촬영 아냐…안전사고·화재예방 목적” 반박

의사 국가시험 실기시험에 대한 응시생들의 불신이 폭증하고 있다.

과거에는 없던 ‘실기시험 CCTV 녹화 영상 폐기’라는 문구가 최근 시험부터 삽입됐기 때문인데, 응시생들은 해당 문구가 ‘독소조항’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반면 의사 국시 실기시험을 관장하는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국시원)은 CCTV 영상 녹화는 응시생들의 이의제기나 재채점 용도가 아니라며 문제될 것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2022년도 제86회 의사 국시 실기시험부터 ‘영상 폐기’ 문구 등장

의사 국시 실기시험장 모습(출처: 국시원 30년사)
의사 국시 실기시험장 모습(출처: 국시원 30년사)

국시원은 지난 2018년 의사 국시 실기시험 CCTV 영상 녹화물을 사상 최초로 한 차례 공개한 바 있는데, 개인 응시생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다.

당시 국시원은 일부 응시생들이 제기한 실기시험 항목별 통과 여부 공개 요청을 거부했는데, 결국 이 응시생들은 ‘정보공개청구 거부 행정소송(정보공개거부 처분 취소)’을 서울행정법원에 제출하기에 이른다.

이때 국시원은 소송 과정에서 법원에 CCTV 녹화 영상을 공개했고, 해당 영상 자료는 응시생들의 일부 승소에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진다.

이처럼 행정소송과 같은 특별한 상황이 아닌 이상 국시원은 CCTV 녹화 영상을 응시생들에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

시험 공고문에도 ‘시험문항, 채점표, 채점기준표 및 실기시험의 안정적 시행 목적의 촬영 영상은 시험정보를 포함하고 있어 비공개 대상이므로 공개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명확히 기재돼 있다.

단지, 국시원은 공교롭게도 2018년 패소 이후 해당 문구를 조금씩 변화시켰다.

실제로 2018년도(2018년 시행) 제83회 의사 국시 실기시험부터 가장 최근에 진행된 2024년도(2023년 시행) 제88회 의사 국시 실기시험까지 공고문을 모두 살펴본 결과, 특이점이 확인됐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CCTV 영상 비공개 이유가 2019년도 실기시험의 경우 ‘안정적 시행 목적’, 2020년도는 ‘사고 및 화재예방 목적’, 2021년도는 ‘안전사고 및 화재예방 목적’으로 조금씩 변화됐다.

이어 2022년도 제86회 실기시험부터 ‘응시동영상은 실기시험의 안전사고 및 화재예방을 목적으로 촬영한 영상물로서 시험종료 20일 후 폐기한다’라는 기존에 없던 ‘폐기’라는 문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2019년도, 2020년도, 2021년도, 2022년도, 2023년도, 2024년도 의사 국시 실기시험 시행 계획 공고 안내문에 표현된 CCTV 영상 촬영 관련 문구.

이와 관련 의사 국시 실기시험 응시생들은 해당 문구가 ‘독소소항’이라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수도권의 의대생 A씨는 “국시원은 2018년 패소 및 정보공개 이후 이전에 없던 ‘CCTV 영상 폐기 기간’이라는 독소조항을 신설해 응시생들이 정신없을 사이에 영상을 삭제하고 있다”며 “실기시험장은 화재가 발생할 구석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화재예방이라는 문구를 만는 것으로도 모자라 통상적인 CCTV 영상 보관 기간보다 훨씬 짧은 20일을 공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게다가 CCTV 영상 폐기 공지가 2018년 국시원의 행정소송 패소 이후 갑작스럽게 생겼다는 점, 응시생들이 이의제기를 하고 싶어도 20일 후 폐기이기 때문에 공식적인 이의제기 기간에는 이미 CCTV 영상은 삭제돼 있다는 점 등도 의혹에 기름을 붓고 있다.

A씨는 “2018년 소송 이전에는 증거보전신청이 접수되기 전까지 1년가량 CCTV 영상을 보관했는데, 갑자기 20일 후 폐기하겠다는 공지는 왜 하기 시작했는지 의문”이라며 “의사 국시 실기시험은 보통 11월 초에 끝나는데 합격자 발표예정일 및 이의제기 기간은 12월 초에 이뤄지고 있어 이때는 이미 20일이 지난 시점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상황을 미루어 짐작할 때 국시원은 애당초 이의제기를 진지하게 받을 생각이 전혀 없음을 방증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게 응시생들의 일관된 주장.

또 다른 의대생 B씨는 “존재하지도 않던 ‘폐기’ 독소조항을 넣은 시기, CCTV의 성능과 저장장치의 용량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20일 후’라는 이해할 수 없는 기간을 설정한 것 등 그 의도가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다”고 언급했다.
 

국시원의 반박…“CCTV 영상은 이의제기 및 재채점 용도 아니다”

의사 국시 실기시험 중앙센터(출처: 국시원 30년사)
의사 국시 실기시험 중앙센터(출처: 국시원 30년사)

이를 두고 국시원은 응시생들의 이의제기 및 재채점 용도로 CCTV 영상을 녹화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20일 후 폐기’ 문구의 경우에도 국시원장 자문기구인 ‘의사 국시 실기시험 전문위원회’에서 논의한 결과이기 때문에 특별히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국시원 관계자는 “CCTV 영상은 안전사고와 화재예방 목적으로 촬영되는 것이지 재채점이나 이의제기를 위한 것이 아니다”며 “2021년에 ‘실기시험 자문위원회’를 통해 여러 의과대학 교수들이 논의를 했고 최종적으로 20일 후 폐기로 변경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즉,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결정된 사항인 데다가 시험 계획 공고에 이에 대한 문구를 삽입, 응시생들에게 해당 사실을 충분히 공지하고 일일이 동의를 다 받고 있다는 것.

아울러 개인정보보호 관련 규정 안에 일정기간 보관 이후 폐기를 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고, 공식적인 이의신청 기간은 전산상의 점수 산출 오류 유무를 확인하기 위한 용도이지 CCTV 영상을 응시생들에게 일일이 공개하기 위함은 아니라며 일각의 의혹에 선을 그은 국시원이다.

이 관계자는 “대부분의 외국에서도 의사 국시 실기시험 영상을 촬영하고 있지만, 재채점을 위해서 영상을 다시 보여주거나 공개하진 않는다”며 “일부러 CCTV 영상을 삭제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응시생들이 있는데, 규정대로 정해진 사항들을 절차에 맞게 진행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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