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 치료제 부작용 사고, 의사가 배상?…‘황당+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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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 치료제 부작용 사고, 의사가 배상?…‘황당+분노’
  • 정윤식 기자
  • 승인 2023.11.0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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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타미플루 제제 투여 환자 추락 사고에 병원 측 5억7,000만 원 배상 판결
의협, “의료행위 본질과 특수성 고려하지 않은 판결…필수의료 기피 현상 가속화”
내과의사회, “과도한 법적 책임 떠넘긴 법원에 분노…‘의료분쟁특례법’ 제정 시급”

최근 법원이 인플루엔자 치료를 위해 타미플루 계열 제제를 투여받은 환자가 환각 증세 추락 사고로 하반신을 쓸수 없게 되자 병원 측에 5억7,000만 원의 배상을 판결, 이를 두고 의료계가 '황당'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

우선 대한의사협회(회장 이필수)는 의료인 설명 의무에 관한 인과관계가 불명확한 독감 치료제 부작용 사고와 관련해 설명 의무의 확대해석을 통한 고액배상 판결을 내린 법원의 판결에 대해 심각한 우려와 유감을 11월 1일 표명했다.

2018년 12월 독감으로 응급실을 방문한 당시 17세 환자는 타미플루 계열 독감 치료 주사제인 페라미플루 접종 후 같은 날 밤 7층 창문 아래로 뛰어내렸고, 해당 환자는 척추 손상 등으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환자 가족들은 의료진으로부터 부작용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는데, 결국 법원이 환자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러나 학계 보고 등에 따르면 해당 환자의 신경이상증세가 독감의 증상인지 독감 치료 주사제의 부작용인지 불명확하고, 기존 법리에 비춰 볼 때도 설명 의무의 범위에 해당하지 않거나 해당 여부가 불분명하다.

또한 이번 판결이 투여 약제의 설명서에 기재된 주요 부작용을 모두 설명하라는 취지라면, 이는 실무상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라는 게 의협의 지적이다.

의사가 최선을 다해 진료한다 하더라도 사망과 같은 치명적인 결과를 피하지 못할 수 있는 것이 의료행위의 본질적인 한계이며 모든 의료행위를 함에 있어서 예상되는 결과를 완벽하게 예측하고 그 이면에 존재하는 가능성을 하나도 빠짐없이 파악해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료 과정에서 고의가 아닌 오진이나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등에 엄격한 형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의료행위의 본질과 특수성을 무시한 것이며 이는 불안정한 진료환경을 조성하게 돼 위험성이 있는 수술 등을 기피하는 방어 진료를 부추겨 결국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 자명하다고 경고한 의협이다.

의협은 “현재도 소아청소년과뿐만 아니라 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의 전공의 지원자가 정원에 미달하고 있어 필수의료 분야 수술이나 진료 자체의 붕괴가 우려되고 있는 상황에서 의료현실을 무시한 채 법의 잣대만을 들이대는 이러한 판결이 반복된다면 의료진의 소신 진료 위축과 필수의료 기피 현상이 가속화돼 결국 그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의협은 이어 “이번 법원의 판결에 대해 재차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법원은 의료법에 근거해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을 해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며 “의사와 국민 모두가 안전한 진료환경 속에서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약물 부작용에 의한 환자의 피해구제를 위해 국회와 정부가 의료분쟁특례법 제정에 즉각 나서야 한다”고 부언했다.
 

내과의사회, "악법 남발 STOP! 소신 진료 위한 법적 장치부터 제정해야"

대한내과의사회(회장 박근태)도 이번 판결이 현 정부의 핵심국정과제이면서 국민의 건강권 수호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필수의료 기반 강화를 뒤흔드는 큰 논란이 될 것이라는 경고를 담은 성명서를 11월 2일 발표했다.

내과의사회는 “환자의 자기 결정권 행사를 보장해주려 주치의가 의료행위의 내용과 방법에 대한 설명 의무가 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긴 하나 설명 의무의 범위가 명확히 규정된 바 없고 이전 대법원 판례에 비춰보면 의료행위의 모든 과정을 대상으로 하진 않는다”며 “같은 진단명에 같은 치료를 하는데도 치료 경과가 다르듯 투약을 포함한 모든 의료행위의 결과는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내과의사회는 이어 “최근 의료사고와 관련한 일련의 판결이 의료인에게 모든 법적 책임을 전가하는 경향이 있고 이번 판결도 의료의 전문성, 특수성, 불확실성을 전면부인하는 처사”라며 “이와는 다르게 지난해 말 위법적 의료행위를 하면서 환자의 암 진단을 놓친 한의사에게는 면죄부를 씌워주고 초음파 사용을 합법화한 법원의 판단 기준은 도대체 무엇인지 묻고 싶다”고 덧붙였다.

즉, 최근 법원 판결의 추세가 유독 한의과에 관대하고 의과에 엄격한데 이 같은 분위기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 내과의사회인 것이다.

이에 내과의사회는 보여주기식 정책과 면허박탈법과 같은 악법을 남발할 때가 아니라 일선 의사들이 필수의료에 뛰어들고 소신 진료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보호장치의 시급한 제정을 촉구했다.

내과의사회는 “코로나19 예방접종으로 인한 부작용이 있을 때 국가배상제도를 도입했던 것처럼 필수의료 분야의 의료배상보험 가입을 지원하고 의료분쟁조정 및 중재에 있어서 전문가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된 결정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며 “의료계를 옥죄는 입법부, 의료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고 판결을 일삼는 사법부의 파상공세로 필수의료는 고사하고 있는데, 의료인의 의사 결정 과정의 전문성을 존중하려면 조속히 의료분쟁특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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