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항생제 처방률 공개에 따른 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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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항생제 처방률 공개에 따른 여파
  • 정은주
  • 승인 2006.02.14 12: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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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생제 처방지침과 의사의 처방행태 개선 등이 과제
최근 감기환자에 대한 전국 의료기관의 항생제 처방률이 공개되면서 그 여파가 커지고 있다.

병원계는 항생제 처방률 공개에 따른 부작용을 지적하면서 성명을 내는가 하면 일부 의료계 인사와 시민단체 등에선 항생제 처방률을 줄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찬성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항생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의료기관에 대한 인터뷰가 속속 나오고, 항생제를 많이 처방한 의료기관의 해명보도도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항생제 내성률이 높고, 항생제 사용이 지나치게 많아 남용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선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문제는 항생제의 적정사용을 위한 노력이 수반되지 않고 항생제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 의료기관의 명단을 공개해 남용을 줄이겠다는 정부의 접근방식이다.

현재 질환별 항생제 사용지침도 없으며, 의사들은 오로지 자신의 판단에 근거해 항생제를 사용해야 한다. 항생제 처방률이 99%를 넘는 의료기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원인은 파악되지 않고 있으며, 의사들의 처방행태를 개선하기 위한 조치나 노력도 없다.
전국적으로 어느 정도의 항생제가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대한 통계나 자료도 전무하다.

기관별 특성이나 환자상태 등 고려없이 사용량만 따져
이번에 공개된 의료기관별 항생제 처방률도 함정이 있다. 의료기관별 특성이나 환자별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기관별 처방비율만 따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급성 인두염에서 가장 흔하고 문제가 되는 세균인 GABHS(Groroup A beta hemolytic streptococcus)가 강력히 의심될 경우에는 항생제를 사용해야 하며, 이차세균 감염이 있는 경우에는 항생제 처방이 필요하다.

그러나 복지부는 항생제 사용이 꼭 필요했는지, 환자 개개인별로 감기외의 다른 질환은 없었는지, 지역에 대형병원이 없어 중증도 높은 환자들이 비교적 많이 몰린 것은 아닌지 등에 대한 평가를 사전에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울러 항생제 사용의 경우 의료기관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건별로 이미 심사를 거쳤고, 이 과정에서 문제가 있을 경우 삭감 등 사전에 조치를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심사에선 문제가 없는데, 차후 의료기관 전체에서 사용한 항생제가 많다는 이유로 의료공급자는 여론의 지탄을 받게 됐다.

결과 공개과정에 있어서도 행정부서의 독단에 대한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감기환자의 95%가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며, 단 5%만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을 찾고 있기 때문에 발표에 앞서 전문가 집단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중앙평가위원회도 복합질병이나 환자의 중증도 등을 고려해 병원급 의료기관까지 발표하는 것은 문제가 있으니 의원급 의료기관만 발표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평위가 의결기구가 아니라 심의기구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행정부서에서 일방적으로 전체 발표를 강행, 의료공급자로부터 공감대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항생제 처방률 공개는 "적정처방 유도"가 목적이 돼야
앞으로도 분기마다 항생제 처방률이 공개될 예정이다.
의료소비자에 대해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정확한 정보가 전달되어 소비자들의 판단에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언론에서는 자료에 대한 신중한 해석이 필요하다.
정부는 항생제 처방지침 등을 통해 적정 항생제 처방을 유도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공개과정에 있어서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합의과정이 전제돼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왜 항생제 처방률을 공개하는지, 항생제 적정처방을 유도하기 위한 적극적인 정책대안이 따라야 한다.
감기환자 100명 중 99명에게 항생제를 처방하는 의료인의 변화도 요구된다. 이같이 높은 항생제 처방률이 결국 의료인에 대한 불신을 가져오고, 이유있는 항변마저 변명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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