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계 사안마다 "사사건건" 대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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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계 사안마다 "사사건건" 대립
  • 최관식
  • 승인 2004.10.13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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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종합 청사진 제시할 강력한 기구 필요
의약분업과 건강보험 통합 등을 거치면서 보건의료계가 매 사안마다 각자의 주장만 내세우면서 극한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보건의료정책의 종합적인 청사진을 제시할 강력한 기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돼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심지어 의약분업 시행과정만 보더라도 건강보험 통합을 주장했던 지지자는 의약분업을 지지하고 건강보험 통합을 반대했던 측은 의약분업까지 반대하는 등 지난 몇 년간 보건의료계 분열 양상의 심각성은 도를 넘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는 회의론이 급증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최병호 연구위원은 "지금 보건의료계는 하나하나의 사안을 두고 "사사건건" 단편적으로만 대립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하나의 정책은 그 자체로만 접근해서 시행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모든 정책이 서로 얽혀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고 충고했다.
더구나 정부조차 각각의 이해관계와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고 거의 방임에 가까울 정도로 뒷짐만 지고 있다는 뜻있는 보건의료계 인사들의 충고도 새겨들어야 할 것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그는 △선택진료제 △요양기관계약제 △의약분업 평가 △공공의료 인프라 △민간보험 △DRG △상대가치수가체계 △비급여 △의료시장 개방 △장기요양병상 문제 등등 최근 제기되고 있는 보건의료 관련 사안들은 단편적으로 접근해서는 절대 풀 수 없으며 기존의 보건의료체계와 정책들을 큰 틀에 놓고 그 속에서 함께 다루는 복합적인 "처방"이 필요한 문제들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정책적으로 근거를 마련하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종합적인 청사진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운영됐던 "의료개혁위원회"와 같은 강력한 의사결정 기구가 필요하다고 그는 제안했다.
현재 보건의료발전위원회와 건강보험발전위원회 등이 운영되고 있으나 총리실 산하 보발위는 공급자 중심으로, 건발위는 가입자 중심으로 운영되는 등 인적 구성에 있어서도 합의에 이르기엔 역부족이라는 것.
따라서 새 기구는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해 공급자는 물론 가입자와 보험자 등 이해관계를 빠짐없이 대변할 수 있도록 대표성을 부여해야 할 것이며 정부는 중립적 위치에서 갈등을 조정하는 한편 기존의 보건의료체계를 원점에서 다시 논할 수 있도록 새 판을 짜야 할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그렇게 할 때 보다 넓은 차원에서 이해 당사자는 물론 국민 모두가 이익을 누릴 수 있는 윈-윈이 가능할 것이란 게 최병호 연구위원의 생각이다.
현재 상대가치점수 산정 문제만 하더라도 의료계는 의료계 내부에서조차 이해관계의 폭을 좁히지 못하고 있으며, 시민·사회단체들의 경우도 한발짝도 비켜서지 않고 팽팽하게 대립, 완강히 자기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어 이런 형태로는 원만한 합의를 통한 결정은 애초에 물 건너간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밖에 DRG, 행위목록조차 나와 있지 않은 비급여 의료행위 인정 등등도 현재까지 수면 아래 잠복하고 있을 뿐 이 사안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 그 자체로 민감한 사회문제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지적이다.
의료계의 경우만 보더라도 환자 감소로 어려움에 봉착한 가운데 탈출구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이해관계로 인해 충돌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기존에 학회나 의대에서 주관해 시행하던 연수강좌를 개원가 단체가 자체적으로 시행하면서 연수평점 인정여부 등을 놓고 갈등을 겪고 있으며 개원의단체 이름을 바꾸고 독자적인 길을 모색함으로써 기존 단체의 위상에 도전하는 듯한 인상마저 주고 있다.
더구나 수입감소를 보전하기 위한 수단으로 진료영역을 타 진료과로 확대해 치열한 경쟁구도를 형성해 나가는 것도 우려할 대목이다. 현행 의료법상 의사면허 소지자는 모든 진료행위를 할 수 있으나 과연 이같은 현상이 환자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고 있는지 자성할 필요가 있다는 게 한 의대 교수의 지적이다.
그러나 문제의 심각성은 의료계 내부의 과잉경쟁 자체가 아니라 갈등을 조정하고 완화시킬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할 단체 내지는 기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즉, 의료계가 상생을 이루기 위해서는 의료계 내부의 갈등을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조종자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된다는 게 의료계의 일반적인 정서다.
보건의료계 관계자들도 현 보건의료계는 각 이해 당사자들이 각자의 힘겨루기에만 골몰할 뿐 보다 폭넓은 시각에서 이를 조정하고 양보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는 자조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설사 자리를 만든다 하더라도 서로 허심탄회하게 논의를 진행하기보다 서로 자기 고집만 내세우고 있어 의견차를 좁힐 가능성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
이같은 상태를 더 이상 방치할 경우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는 "식물인간"이 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보건의료계 관계자들 사이에 팽배한 만큼 지금이라도 서둘러 강력한 정책조정기구의 설치를 서둘러야 한다는 충고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종합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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