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부산백병원을 만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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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부산백병원을 만든 사람들
  • 병원신문
  • 승인 2012.05.07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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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의식 가진 인재들이 뿌리 내리다

1979년 6월 1일 부산백병원이 문을 열자 서울에서 유명한 백병원의 부산시대가 열렸다고 지방신문에 대서특필됐다.

종합병원이라고 할 만한 것은 부산의대부속병원 밖에 없던 부산에 신기원이 열린 것이다. 부산의 중환자가 경부고속도로를 달려 서울까지 가지 않아도 되는 계기를 우리 백병원이 마련한 것이다. 환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부산백병원을 찾았다. 개원을 하면서도 예상하지 못했던 폭발적인 반응이었다. 서울백병원의 명성을 익히 아는 부산시민과 인근 양산, 김해 등지의 환자들 덕분이었다. 덕분에 부산백병원은 개원 첫해부터 흑자를 내면서 부산 최고의 병원으로 빠르게 자리매김했다.

부산백병원의 입지는 결코 좋은 편이 아니었다. 부산역을 중심으로 광복동이나 서면이 유동인구도 가장 많고 발달된 곳이었으며, 부산백병원의 자리는 후미진 곳이었다. 사람들은 저소득층 밀집지역이라 경영상의 적자를 감수해야 한다고 입을 모아 걱정했다. 그러나 나는 결코 그들의 말에 현혹되지 않았다.

나는 백병원이 부산에서 빨리 자리를 잡으려면 다른 병원과의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환자중심의 병원, 젊은 스태프들이 열성적으로 진료하는 것을 특징으로 내세웠다. 전 직원에게 친절교육을 시켰고, 진료비나 입원비에 연연하지 말고 '무조건 진료'의 원칙을 내세웠으며, 개업의 등과 연계도 잘 갖추어 놓았다. 그래서 개인병원이나 다른 종합병원에서 다루기 힘든 환자가 옮겨오는 경우 최선을 다했다. 또한 서울백병원 때부터의 원칙대로 응급환자는 절대 돌려보내지 않았다.

부산백병원은 명성대로 신경외과와 흉부외과 수술환자가 당시 서울을 제외하고 전국 최다를 기록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의 염려를 뛰어넘는 성공이었다. 그러나 우리와 같은 시기 정부지원 프로젝트에 의해 세워진 다른 민간병원들의 사정은 상당히 달랐다. 조사 결과 55%의 병원이 적자운영을 했고, 평균 부채의존도가 99.3%에 달했으며 차관원리금 상환도 전반적으로 저조해 67%의 병원이 50%의 상환율을 보였다. 이런 점에서 의료계는 부산백병원의 성공이 이례적인 경우라고 평가했다.

부산백병원의 성공은 훌륭한 인적자원 덕분이다. 우수한 의료진의 포진은 다른 병원과의 경쟁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된다. 그런 면에서 나는 운이 좋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부산백병원 성공의 배후에는 장기려 박사와 최하진 박사의 도움이 컸다. 당시 부산시민들에게 존경을 받았던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가 우리를 전폭적으로 도와주었다. 장기려 박사는 백인제 박사의 수제자로 젊었을 때 은사인 백인제 박사의 말씀을 따르지 못해 항상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는데, 그를 보상하려는 듯이 백인제 박사의 뜻을 기려 만든 백병원과 인제의과대학에 특별한 애정을 가졌다. 4~5년 동안 수술을 함께하고 건강이 허락하는 최후의 순간까지 일주일에 한번 직접 진료를 해주시어 많은 후배 의사들의 귀감이 되셨다. 나는 1977년부터 부산에 오갈 때마다 장기려 박사를 찾아뵈었다. 고려신학대학교 맨 꼭대기 층에 숙소가 있었는데 바다가 보이는 작은 공간에는 최소한의 생필품만 있었다. 그는 누구나 저절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정결함과 청빈함 그리고 자애심을 지닌 신앙인이자 의사로서의 덕목을 고루 갖춘 어른이었다.

최하진 박사는 나와는 서울의대 입학동기로 이미 부산의대의 창립과 한양의대의 창립에 공헌한 바 있었다. 부산백병원을 담당할 의료진 구성은 서울백병원의 지원만으로는 일정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고, 의료진은 기본적으로 부산에서 활동해야 하기 때문에 교수진 선발에 어려움이 있었다. 현실적으로 당시 부산지역의 유일한 의과대학인 부산의대에서 주니어 스텝으로 활약 중인 의료진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그 과정에서 최하진 박사가 많은 역할을 했다. 그 외에도 전종휘 초대학장, 성호석, 심재홍, 이순용, 이송희, 김종성, 강창일, 김상효, 정정명, 이영구, 김현찬, 이희철, 홍관희, 주종수 교수 등으로 이들은 백병원 일을 자신의 일처럼 알고 헌신했다. 이런 훌륭한 인재들의 주인의식이 백병원을 순풍에 돛을 단 배처럼 순항하게 했다.

우리 학교나 병원을 방문하는 외부인사들은 학교와 병원을 둘러본 후 이런 찬사로 나를 기쁘게 한다.

"백병원은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군요."

이런 주인의식이 다섯개의 백병원과 인제대학교가 단단히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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