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인제의대 설립과 부산백병원 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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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인제의대 설립과 부산백병원 개원
  • 병원신문
  • 승인 2012.04.30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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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원의 밤낮없는 열정으로 맺은 '결실'

천신만고 끝에 1975년 서울백병원이 현재의 모습으로 완공하고 현대화되자 수익도 증가했다. 우리는 올바르고 성실하고 근면하게 운영함으로써 최고 수준의 병원으로 인정받았다. 서울백병원이 점차 자리를 잡아감에 따라, 나는 이를 바탕으로 제2의 도약을 계획하였다. 창립자 백인제 박사가 꿈꾸었던 교육 분야로의 진출이었다. 대학을 세워 의료와 교육을 병행해야 진실로 보람되고 인술제세(仁術濟世), 인덕제세(仁德濟世)의 백병원의 창립정신을 발전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침 1977년 정부에서 민간병원의 건립을 지원하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정부는 지방의 의료취약지구와 공단지역의 의료시설에 대한 지원을 하면서 의료기관에 행정ㆍ재정지원의 기회를 제공했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당시의 다섯개 대형병원이 나누어 지방의료시설 확충에 참여하기로 하여 백병원은 부산 사상지구를 맡게 되었다. 그동안 의과대학 설립과 제2, 제3백병원 건설의 기회를 기다리던 우리에게 정부의 이런 제안은 희소식이었다.

내가 특별히 부산을 택한 이유는 크게 두가지였다. 군대생활과 피난시절을 보낼 때 부산사람들이 보여준 친절함이 인상깊었기 때문이며, 의과대학 설립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서울에는 의과대학이 7개나 있어 의대 신설허가가 나오지 않았고, 전남지역만 해도 2개의 의과대학이 있었지만 부산 경남지역에는 부산의대 한곳 뿐이었다. 부산의 지역 정서도 고려하였다. 오랫동안 서울에서 병원을 경영하던 입장에서는 외지인에 대한 지역주민과 의료관계자들의 포용력도 고려의 대상이 되었다. 백병원이 부산에 둥지를 튼다고 하자 부산 시민들은 열렬히 환영해 주었다.

여러 곳을 답사한 끝에 현재의 개금동에 의과대학과 부속 부산백병원 부지를 장만하였는데 겨우 3천766평이었다. 지금은 지하철이 들어오는 등 번화가가 되었지만 당시의 개금동은 저소득층이 몰려 사는 곳이었다. 산비탈에 다닥다닥 지어진 서민주택과 좁은 골목길에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다. 이런 곳은인구밀도가 높고 질병환자가 많아 의료수요가 많을 수밖에 없고, 또한 사상공단과의 거리도 2~3킬로미터 밖에 되지 않아 정부가 요구하는 조건에도 부합되는 부지였다. 의대를 시발로 후에는 종합대학으로 발전하는 것을 생각하였기 때문에 의과대학 이외의 제2 캠퍼스는 부산시에 인접한 김해나 양산에 구하기로 하고, 우선 이곳 개금동에 병원과 의대 건설을 계획하였다.

1978년 3월 보건사회부는 부산백병원 설치를 확정하고, 시설비 75억원 및 장비 150만 달러(150병상) 자금지원을 결정하였다. 이에 맞춰 백병원에서도 지하1층 지하9층 6천225평(500병상)의 설계를 완성하였다.

의과대학의 설립과 부산백병원 건설공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978년 10월 문교부로부터 인제의과대학 설립계획이 승인되고, 1979년 1월 학교법인 인제학원 설립허가 및 신입생 80명 정원의 인제의과대학 설립인가를 취득하여 1979년 2월에는 80명 정원의 의예과 신입생을 후기로 선발할 수 있었다. 1946년 12월 17일 설립한 재단법인 백병원은 서울백병원과 부산백병원을 모체로 하는 학교법인 인제학원으로 새롭게 태어났으며, 아울러 백중앙의료원이 탄생하였다. 초대 학교법인 인제학원 이사장에 백낙조 이사장, 백중앙의료원 원장에 내가 선임되었으며, 초대 학장에는 창립자 백인제 박사의 수제자 중 한분인 전종휘 박사가 취임하였다.

학교명칭은 인술로써 세상을 구제한다는 백병원의 창립이념인 인술제세(仁術濟世)의 仁字와 濟字를 따서 '仁濟醫科大學'으로 결정하였으며 이는 창립자의 함자인 인제(麟濟)와도 음(音)이 같다.

한편, 부산백병원은 1978년 2월에 착공하여 대학병원 건축사상 최단 기간인 1년 4개월 만에 부분 준공하여 1979년 6월 1월 300병상으로 개원하였고 최하진 박사가 초대 원장의 어려운 직책을 맡아주었다. 많은 교직원이 밤낮없이 열정적으로 매달린 값진 결실이었다. 서울백병원의 완공에 7년이 걸렸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백병원 교직원들의 잠재 역량이 얼마나 성장해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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