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남극일기
상태바
영화 - 남극일기
  • 윤종원
  • 승인 2005.05.12 08: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게 남극이다.

6개월은 밤, 6개월은 낮이 이어지는 곳. 눈 앞에는 온통 하얀색 뿐, 하얀 산과 하얀 바람, 하얀 눈과 눈부신 햇빛 만이 대륙을 덮고 있다. 아마 땅 속을 파 보면 수십년 혹은 수백년 이상 묵은 눈을 볼 수도 있을 듯, 무슨 일이 일어나도 혹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아도 그저 그대로 거대한 모습을 유지한 채 거기 있는 그런 곳이다.

남극에 여섯 명의 남자들이 줄을 지어 걷고 있다. 이들의 목표는 무보급으로 도달불능점을 정복하는 것. 남위 82도8분 동경 54도58분에 위치한 이 지점은 남극 대륙 해안에서 가장 먼 곳으로, 지금까지 1950년대 옛 소련 탐험대만이 단 한차례 가본 적이 있다.

기대작 "남극일기"가 19일 드디어 영화팬들을 만난다. 뉴질랜드 로케이션이나 송강호ㆍ유지태 등의 화려한 캐스팅, "반지의 제왕"의 스태프와 "공각기동대"의 거장 가와이 겐지 음악감독의 참여, 그리고 제작비 90억 원의 초대형 예산 등 화려한 외형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영화가 상반기 기대작으로 주목받았던 것은 남극이라는 장소와 스릴러라는 장르의 조합이라는 새로움에 있다.

일부의 우려와 달리 남극과 미스터리를 함께 빚어놓은 언발란스는 감독의 손을 거치며 매력적인 결과물로 탄생했다. 감독은 단 여섯 명의 등장인물들과 남극이라는 땅덩어리 하나로 힘있고 밀도 높은 미스터리 영화를 만들어 놓고 있다. 풍경이 주는 광활함의 공포는 그 어떤 스릴러의 눈에 보이는 악몽 못지 않게 지독하며 그 와중에 드러나는 인간들은 쉽게 부서질 듯 위태로워 슬프다.

이들이 수십일 동안 걷고 먹고 자는 이곳은 언뜻 봤을 때의 마냥 경치 좋은 곳만은 아니다. 고요함은 써늘함의 다른 표현이며 광활함은 막막함의 유사어다. 말이 좋아 인간의 한계에 대한 도전이지 일행들과 비슷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어느 곳에선가 숨진 채 묻혀 있다.

탐험대를 이끄는 대장은 노련하면서도 냉철한 카리스마가 있는 도형(송강호)이다. 최대장의 오랜 파트너이자 지적인 부대장 영민(박희순)과 식사 담당인 근찬(김경익), 통신 담당 성훈(윤제문), 전자장비 담당 재경(최덕문)은 부대원이며 이들의 뒤를 막내 민재(유지태)가 따르고 있다.

순조로웠던 탐험대에 묘한 기운이 돌기 시작한 것은 영국 탐험대의 남극일기가 발견되고부터다. 얼마 뒤 재경이 바이러스가 없는 남극에서는 도저히 발병할 수 없는 감기 증세를 보이다가 낙오하고 대원들은 빨리 그를 구해야 한다는 쪽과 탐험을 계속하자는 쪽으로 나뉘어 갈등한다. 피해는 불가피하다고 대원들을 다그치는 대장과 논리적 분석으로 그를 따르는 부대장, 여기에 근찬과 성훈은 재경을 버렸다는 죄책감에 철수하자고 주장한다.

여기에 상황은 예기치 않은 사고까지 일어나며 점점 극으로 치닫고 대원들은 원인모를 광기의 분위기에 휩싸인다. 어느새 논리적인 사람은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되고, 순했던 막내의 눈은 발갛게 충열되며, 대장은 목표 달성을 위해 앞뒤 안가리는 사이코가 되어 간다. 남극의 묘한 기운은 얼음 사이의 갈라진 틈에서, 텐트 밖에서, 그리고 언덕 너머 어디에서 이들을 지켜본다.

초반에 인물들을 설명하며 워밍업을 하던 영화는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속도를 올리다가 결국 광기로 치달으며 폭발을 한다. 스릴러의 스토리는 감독에 의해 완전히 장악된 듯, 여기에 송강호, 유지태를 비롯해 연기 잘하는 배우들의 호연이 더해져 두 시간에 가까운 긴 러닝타임은 지루함 없이 힘있게 흘러간다. 다만, 후반부 대사 전달이 미흡한 것은 영화의 옥의 티다. 15세 이상 관람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