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몬 피임법을 사용하는 여성은 HIV에 걸리거나 에이즈 바이러스를 배우자에게 전달할 확률이 2배 가까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4일(현지시간) 의학전문지 란셋(Lancet)에 실린 논문을 보면 워싱턴대학교 르네 헤프론 연구팀은 보츠와나, 케냐, 르완다 등 아프리카 7개국에서 연인 중 한 명만 HIV에 걸린 이성애자 3천790쌍을 대상으로 호르몬 피임법과 HIV의 상관관계에 대해 연구했다.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진행된 조사에서 167명이 에이즈에 걸렸으며 남성 감염자가 94명으로 여성보다 더 많았다.
여성이 호르몬 피임법을 사용한 경우에는 100명당 6.61명이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돼 그렇지 않은 경우의 100명당 3.78명보다 많았다.
또 여성에게서 남성으로 전염된 비율은 호르몬 피임법을 사용한 경우에 100명당 2.61명이었지만 그렇지 않았을 때는 100명당 1.51명에 그쳤다.
호르몬 피임법을 사용한 여성은 대부분 데포-프로 베라 같은 장기간 지속되는 주사제 형태를 사용했으며 알약을 선택한 여성들은 적었는데, 알약의 경우 HIV 위험성 증가가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연구팀은 "주사제 형태의 피임약을 사용한 여성은 자궁 분비물에서 HIV 유전자 물질의 농도가 짙어졌다"며 이 때문에 남성에게 바이러스가 전달됐다면 이에 대한 추가 연구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또 이번 연구결과가 콘돔을 사용하는 등 에이즈 병균을 막을 이중 보호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지난 20년간 과학자들은 호르몬 피임법과 HIV 감염의 연관성에 대한 많은 연구를 시행해왔지만 둘 사이의 상관관계, 특히 남성의 감염 위험성을 증명한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임상학자 찰스 모리슨은 아프리카에서 호르몬 피임법을 사용하는 것이 HIV를 유행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지만, 만일 이 효과적인 피임법을 제한하면 임산부의 사망률과 질병, 미숙아 출산율 등을 높일 수 있다며 이를 '비극적 딜레마'라고 표현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 결과에 대한 좀 더 명확한 답을 얻으려면 지원자를 무작위로 시험해보는 수밖에 없다며 이번 결과가 확인된다면 HIV 예방과 피임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