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환자, 응급처치 제대로 못받아
상태바
소아환자, 응급처치 제대로 못받아
  • 박현
  • 승인 2010.05.04 08: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출산 시대의 소아청소년 의료정책 개선방안 토론회 열려
정부가 지정한 권역응급의료센터와 지역응급의료센터들 중 상당수가 소아 응급환자를 돌보는 데 필요한 시설, 장비, 인력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곽영호 교수는 지난 3일 오후 1시부터 ‘청년의사’ 주최로 서울대 암연구소 이건희홀에서 열린 ‘저출산시대, 소아청소년 의료정책 개선방안’에 관한 토론회에서 전국 73개 응급의료센터 대상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곽 교수에 따르면 연령에 맞는 크기의 기관 내 튜브가 없는 곳이 38.3%였고, 골강 내 주사바늘이 없는 곳은 56.2%나 됐다. 이는 응급실을 찾은 소아 응급환자를 위한 적절한 조치가 취해질 수 없음을 말한다.

또한 소아전용 처치구역을 갖춘 곳은 극소수(2.7%)에 불과했고 소아전용 소생실을 갖춘 곳도 8.3%에 불과했다. 인력도 부족해서 조사대상의 52.1% 응급센터의 경우 소아응급실 전담인력이 아예 없었다.

환자안전과 관련된 대응 시스템도 턱없이 부족했다. 아동학대 의심환자에 대한 신고 및 대응 지침이 없는 곳이 50.1%, 진정제 사용시 보호자 동의서를 받지 않는 곳이 75.3%나 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응급의료센터 의료진들 스스로도 소아 응급환자에 대한 진료 수준이 성인 응급환자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편 이날 토론회는 우리나라 신생아 및 소아청소년 의료정책이 여전히 70년대 수준에 머무르고 있으며 저출산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라도 관련 정책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소아청소년들의 영양 및 생활환경이 개선돼 감염성 질환이 급격하게 감소되면서 진료의 형태가 치료에서 예방 위주로 변화되고 있지만 현재 우리나라 소아청소년들에 대한 의료정책은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

또한 고령임신의 증가 등으로 미숙아 및 저체중 출생아들이 증가하고 있지만, 이들의 생존력을 높일 수 있는 의료정책이 마련되지 않고 있음도 지적됐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대한소아과학회 유경하(이화의대 목동병원 소아청소년과) 기획이사는 ‘소아청소년 관련 의료정책의 제반 문제’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과거 70~80년대 출산율이 높았던 우리나라는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 때문에 영양결핍을 비롯한 감염성 질환이 많았으나 현재는 영양 등 생활환경이 개선돼 감염성 질환이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며 “이는 진료의 형태가 치료에서 예방적인 측면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고 설명했다.

유 교수는 “소아청소년과 질환은 단기입원이 필요한 급성유행성 질환을 앓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간단한 질환이라 하더라도 급속히 심각한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고, 전염 위험성이 높아 격리가 필요한 경우가 많은 게 특징”이라면서 “이 때문에 의사나 간호사 등 노동집약적인 인력동원이 요구되고 있지만 현행 보험수가체계는 장비, 물량에 기반을 둔 행위별 수가체계라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소아가 성인과 다른 것처럼 소아와 또 다른 차별화가 요구되는 게 바로 신생아”라며 “최근에는 신생아 질환의 비중이 높아지고 고액진료비가 요구되는 희귀질환이 증가하는 게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대한신생아학회 배종우(동서신의학병원 소아청소년과) 부회장도 “OECD국가 중 출산율 최하위인 우리나라의 경우 미숙아 및 저체중 출생아가 증가하고 있다”며 “미숙아, 저체중 출생아의 생존을 향상시키는 것이야말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저출산 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낳은 아기를 잘 기르기’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 배종우 부회장의 주장이다.

배종우 부회장은 또 “병원 신생아실과 신생아중환자실(NICU)의 경우 보험급여, 국가지원 등이 미흡해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면서 “수가현실화 및 NICU 확충을 위한 정부 투자가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대병원 김종성 어린이병원장은 “지난해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은 109억7천100만원의 적자를 기록했다”며 조금씩 적자 폭이 감소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어린이병원은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특히 신생아중환자실의 경우 병상 당 연간 적자가 6천300만원에 이른다면서 특단의 대책을 촉구했다.

김종성 병원장은 “소아청소년의 경우 적은 환자수에 비해 다양한 질환을 갖고 있는 데 반해 전문인력 수급이 어렵고, 많은 인력 및 시간, 노력,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1인당 의료수익이 성인에 비해 외래진료비는 64%, 입원은 84% 수준에 불과하다”며 “수가현실화와 급여인정 범위를 확대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이날 토론회에서 적자에도 불구하고 의료의 공공성 확보를 위해 운영되고 있는 어린이병원 및 신생아실, 신생아중환자실의 적절한 운영을 위해 수가현실화 및 국고지원 확대, 전문화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고용확대, 권역별 응급센터에 소아청소년 담당의료인 고용 등 인적, 경제적 투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대한소아과학회 유경하 기획이사, 대한신생아학회 배종우 부회장,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 김종성 원장, 서울대병원 곽영호(응급의학과) 교수, 연세의대 박형욱 교수(의료법윤리학과), 중앙일보 신성식 기자,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 노홍인 과장이 참석해 토론했다.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신문 청년의사 이왕준 발행인(명지병원 이사장)은 “전국의 어린이병원들이 수십~수백억원의 적자운영을 면치 못하면서도 의료의 공공성을 위해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에서라도 신생아 및 소아청소년 의료에 대한 국가지원 및 정책방향에 있어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