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 심사기준과 최고병원의 불명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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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품 심사기준과 최고병원의 불명예
  • 박현
  • 승인 2008.12.11 1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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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법률사무소 현두륜 변호사
며칠 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병용 및 연령금기 상위 10순위 요양기관 현황"에 관한 자료를 국회에 제출했다.

이 자료 분석결과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병용금기 처방을 가장 많이 한 의료기관이 서울대병원이고 연령금기 처방을 가장 많이 한 의료기관이 세브란스병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현재 진행 중인 원외처방 약제비 환수소송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즉 지난 8월 서울대병원이 원외처방 약제비 반환청구 소송에서 승소한 금액이 41억원으로서 참가병원 중 가장 많고 아직 판결은 선고되지 않았지만 연세대의대 소속 병원들(세브란스병원, 영동세브란스병원, 원주기독병원)이 환수당한 금액이 34억원으로서 그 다음이다.

서울대병원이나 세브란스병원은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병원들이다. 최고의 병원에 소속된 의사들이 의약품을 잘못 처방해서 가장 많이 심사조정을 당했다는 사실은 매우 아이러니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이 병원 의사들이 아무런 의학적 근거 없이 약을 처방할 일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세브란스병원이나 서울대학교 병원에서의 약 처방 사례나 그 기준은 우리나라 임상의학에서는 모범 또는 표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서울대학교병원은 우리나라에서 원외처방 약제비를 가장 많이 환수 당했고 그 다음이 바로 세브란스병원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각각 병용금기처방과 연령금기 처방을 가장 많이 한 불명예를 안게 됐다.

이러한 사실은 바로 약제비 심사기준 및 심사결과가 의학적 기준이나 의료현실과 얼마나 괴리되어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얼마 전 박창일 연세대 의료원장이 심평원 세미나에 참석해서 ‘심평원이 정한 심사기준을 벗어난 부당처방을 했다’고 양심고백을 하면서 ‘심평원이 인정하는 심사기준과 의사들이 판단하는 치료기준이 다른 경우 부도덕한 의사나 부당한 의사로 몰리더라도 환자를 위한 치료기준을 선택할 것이다’라고 단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는 요양급여기준을 위반해 원외처방을 한 의사에게 그 약값을 환수하도록 하는 내용의 건강보험법 개정안을 심의하고 있다. 보건복지가족부와 보험공단은 지난 8월 선고된 원외처방 약제비 판결에서 보험공단이 패소한 이후, 건강보험법 개정안 통과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미 유사한 내용의 건강보험법 개정안이 여러 차례 국회에 제출되었다가 폐기된 적이 있었으나 현재의 상황은 그 이전의 상황과는 많이 다르다고 한다.

병원협회를 비롯한 의료계가 이에 대한 반대의견을 제시하고는 있으나 힘과 명분에서 밀리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위 법안의 의미와 이것이 가져올 파장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쉽게 위 법안에 찬성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얼마 전 서울에서 열린 세계의사회(WMA) 총회에서는 ‘직업적 자율성과 임상적 독립성에 관한 선언(Declaration on Professional Autonomy and Clinical Independence)’이 채택됐다.

서울선언으로 명명된 이 선언의 핵심은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 데 있어서 자신의 직업적 판단이 외부 단체나 개인으로부터 불필요하게 간섭받지 않을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서울선언문에서는 "임상적 독립성에 대해 정부나 행정가로부터 가해지는 비합리적인 제약은 환자를 위한 최선의 이익이 되지 않는다. 이는 환자와 의사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신뢰를 해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의사들이 자신의 의학적 판단과 소신에 따라 진료할 수 없는 현실에서 다시 한 번 되새겨야 볼 만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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