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자료제출...병원만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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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한 자료제출...병원만 힘들다
  • 정은주
  • 승인 2008.02.26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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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시행 각종평가 행정부담은 병원에 일방적 전가
정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각종 적정성평가와 의료기관평가와 관련해 평가과정에서의 행정부담을 의료기관이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는 지적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평가를 주관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나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필요한 조사표만 병원에 발송할 뿐 여기에 필요한 소요인력이나 행정비용은커녕 조사표 작성기간과 관련한 병원에 대한 배려가 전무한 실정.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부 의료기관의 경우 이달 29일까지 마감해야 하는 수술의 예방적 항생제 사용에 대한 조사표 작성 마감일자도 맞추지 못할 상황에 놓였다.

□예방적 항생제 조사표 작성, 3주안에 마쳐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설연휴 직전에 각 의료기관에 적정성평가와 의료기관평가에 사용할 ‘수술의 예방적 항생제 평가자료 조사표 작성’에 관한 공문을 발송, 이달 29일까지 해당 병원에 대해 조사표 입력을 완료할 것을 요청했다.

수술의 예방적 항생제 평가자료는 적정성평가 항목이자 의료기관평가 임상질평가 항목에도 해당되는 것으로, 한 번에 입력을 마쳐 양평가에 동시에 활용한다는 게 정부 계획.

2007년 의료기관평가 대상병원인 80여개 대형병원은 물론 적정성평가 대상기관인 300여개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까지 이 기간 내에 조사표 입력을 마쳐야 한다.

문제는 연휴 직전인 2월 5일이나 직후인 2월 11일 공문을 확인한 의료기관으로선 엄청난 분량의 조사표 작성을 마치기에 무리한 일정이라는 데 있다.

심평원이 뽑아낸 기간별, 대상별 표본을 하나하나 추려내 환자의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도록 전산과와 업무협의를 해야 하고, 전산과에서 제공해주는 프로그램에 따라 환자의 의무기록을 조회하고, 심평원에서 원하는 입력내용을 확인한 뒤 심평원 홈페이지에 접속, 웹상에서 입력을 마무리해야 한다.

A대학병원 보험과장은 “자료분석과 의무기록 조회에 꼬박 1주일이 걸렸다”며 “원하는 자료포맷에 맞춰 조사표를 작성하는데 1주일, 입력하는데 1주일로 계산하면 물리적으로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기존 업무를 병행해야 하므로 적지않은 부담”이라고 지적했다.

이 병원이 제출해야 할 건수는 약 250여건. 오류나 수정이 없다는 가정 아래 단순 입력 시간만 해도 1건당 최소 5분은 걸리는데, 이를 입력하고 제대로 입력했는지 확인까지 하려면 엄청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2월 14일처럼 심평원 홈페이지에 전산장애가 발생할 경우 병원으로선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B대학병원 보험심사총괄팀장은 “지난해 11월에 있었던 급성심근경색증 가감지급 평가의 경우 제출할 자료가 35건 정도에 불과했지만 조사표 작성시간은 1달 가량 됐다”며 “200여건을 3주 내에 작성하라는 것은 무리”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보험심사과 전직원이 나서 일을 하고 있지만 자료제출 기한을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EMR을 하고 있는 병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모든 자료가 전산으로 관리되고 있긴 하지만 심평원에는 원하는대로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일일이 수작업이 필요하다는 게 병원관계자의 설명.

C병원 적정진료팀장은 “데이터를 만드는데 어려움이 많다”며 “점점 심평원에서 요구하는 업무가 많아 여력이 없고, 29일까지 입력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적정성평가, 의료기관평가 등 행정업무 급격히 증가
병원계의 지적은 수술의 예방적 항생제 평가 조사표 작성에 국한되지만 않는다.

최근 몇 년 사이 정부의 각종 평가가 늘어나면서 병원의 자료제출 등 행정업무가 급격히 늘어났지만 이에 대한 인력충원이나 보상은 전무한데 앞으로 이같은 요구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

적정성평가만 하더라도 위수술, 대장수술, 복강경하담도수술 등 8개 수술에 대해 시행되고 있으며, 적정성평가 항목이 늘어나고 있고 평가결과에 따라 진료비도 가감지급될 예정인데다 각 평가별 추후 모니터링 업무도 추가되고 의료기관평가 중 임상질평가 업무마저 더해진 상황이다.

병원으로선 기존의 보험심사업무에 평가관련 업무가 이같이 추가되면서 업무에 과부하가 걸리는 것은 당연한 것.

한 병원 관계자는 “병원의 입장은 배제된 채 심평원 위주로 업무가 진행되고 있다”며 “몇배수로 정해두고 무조건 몇일까지 작성해서 제출하라는 식”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평가마다 인력동원할 여력도 없는데다 심평원이 원하는 자료, 원하는 식대로 병원 데이터나 시스템이 마련돼 있지도 않고, 병원은 적극적으로 대응할 준비도 안 돼 있는데 무조건적으로 따라오라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데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업무는 늘어나지만 보험관련 부서 인원은 한정돼 있다보니 잦은 야근, 높은 업무강도에 대한 불만도 터져나오고 있다.

또 다른 병원 보험과 관계자는 “의무기록이나 코딩의 일원화가 안된 상황에서 심평원이 원하는 자료에 대한 해석의 차이도 크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이번 조사표에는 입원전 항생제 알러지 기왕력이라는 항목이 있는데 항생제에만 국한된 것인지, 조사표를 보면서 해석도 해야 할 실정이라는 것이다. 의약품 이상반응 보고서에는 기타약물 등을 기록하도록 해 과거 약물 반응력을 모두 체크하고 있으나 ‘항생제 알러지 기왕력’으로만 한정할 경우 일일이 의무기록을 수정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는 의견이다.

2월 25일 현재 심평원에 따르면 대형병원 상당수가 입력이 안된 상황이어서 조사표 입력이 막판에 몰리면서 심평원 전산장애에 대한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한편 병원협회는 자료제출 기한을 연장해 줄 것을 심평원에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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