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과 가격 경쟁 전에는 구호에 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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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과 가격 경쟁 전에는 구호에 불과
  • 최관식
  • 승인 2008.02.22 1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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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계 지정기탁제.. 민감한 문제는 회피하고 핵심 비껴간다는 의혹
지정기탁제 시행 여부가 제약계의 불공정 거래관행을 개선할 수 있는 "전가의 보도"가 될지 관심을 끌고 있다.

제약협회는 26일 한국의학원, 한국의학학술지원재단과 "의학 학술활동 지원을 위한 양해각서 체결식"을 갖고 회원사의 학회 개별 지원을 일체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학회 지원 여부가 일반 국민이나 공정위가 제약계의 불법 영업행위로 지목해 왔던 주요 사안과 다소 거리가 있다는 점에서 제약계의 이같은 "반성"이 "남대문에서 할 말을 동대문에 가서 하는" 게 아니냐는 차가운 시선을 끌어들이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공정거래위원회는 10개 제약회사에 대해 리베이트 제공 등 부당고객유인행위, 재판매가격시정행위 등에 대해 과징금 부과 및 검찰 고발 등의 조치를 취했다.

당시 공정위는 해당 제약회사에 대해 리베이트, 즉 특히 현금이나 물품 지원 및 골프 접대 등을 제공한 부당고객유인행위를 불법으로 지적했다.

또 시판후조사(PMS)도 처방 증대를 위한 판촉수단으로 제공했고, 재판매가격유지를 위해 도매상과의 거래약정서에 의약품 판매가격을 지정하고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거래정지, 제품회수, 경고 등의 제재 조치를 취하는 등의 불법을 저질렀다고 공정위는 발표했다.

공정위 김병배 부위원장은 당시 조사 결과 브리핑에서 각 제약사의 부당고객유인행위에 대해 조목조목 장황한 설명을 했지만 학회 학술지원과 관련해서는 한 마디도 지적하지 않았었다.

더구나 특정 제약회사가 지원 대상 학술단체를 구체적으로 명시해 지원하는 지정기탁제가 지원의 단계와 절차만 복잡하게 늘릴 뿐 기존의 지원과 달라진게 뭐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향후 비지정기탁제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라는 제약협회의 대답은 옹색하기만 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외국은 미국제약협회가 신마케팅강령에서 학회지원, 장학금 지원이 자사 제품의 처방을 전제로 제공돼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일본제약공업협회의 경우도 비지정기탁을 전제로 학회지원을 허용하고 있다. WHO 역시 판촉을 목적으로 지원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지정기탁제에는 "판촉"을 배제할 기전이 내재돼 있지 않다.

보건의료계는 제약계가 지정기탁제를 통해 불공정거래 관행으로 지적 받은 사항의 핵심을 살짝 비껴가는 고도의 전술을 구사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즉, 회원사의 뿌리 깊은 불법 영업관행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학회 및 단체지원이 모든 문제의 핵심인양 부풀림으로써 민감한 문제를 회피하려는 인상을 주고 있다는 것.

이같은 의혹은 최근 제약협회가 전국 병원장들에게 보낸 서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서신에서 제약협회는 △거래행위와 관련된 발전기금 명목 등의 기부 △공정거래규약을 벗어난 국내외 학회지원 △개별제약사의 보건의료단체 행사 지원을 중점 근절 사항으로 제시하면서도 정작 불공정거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현금 및 물품 리베이트 제공 등의 불공정 영업행위를 근절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는 얘기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보건의료계의 한 관계자는 "약의 질과 가격으로 경쟁하겠다는 얘기가 나오기 전에는 제약계가 아무리 투명하고 공정한 거래질서를 부르짖어도 한낱 구호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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