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나비두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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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나비두더지
  • 윤종원
  • 승인 2008.02.1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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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사들의 피로한 삶

삶을 비관한 사람들의 지하철 투신 소식은 뉴스에서 짤막한 기사로 자주 접하게 되는 "흔한" 이야기다. 그러나 투신자들이 자살 도구로 선택한 그 지하철의 기관사는 어떤 심정일까.

독립영화 "나비두더지"(감독 서명수ㆍ제작 인디유니온)는 끔찍한 상황을 일상적으로 겪어야 하는 지하철 기관사들의 피로한 삶을 그린 영화다. 찰나의 충격으로 엄청난 스트레스와 죄책감에 시달리는 기관사들의 모습은 스크린에서 세밀하고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베테랑 지하철 기관사 경식(판영진)은 종종 있는 투신 사고에 크게 동요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경식의 스트레스는 일뿐이 아니다. 경식은 동생 때문에 빚 독촉에 시달리고 아내(허정인)도 빚쟁이들을 더는 못 참겠다고 그를 몰아세운다.

경식은 동생을 찾아가지만 동생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뒤다. 게다가 아내도 가출해 버린다. 그러다 아내를 닮은 여자가 자신이 모는 전동차로 투신해 목숨을 잃자 경식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한다. 게다가 경찰은 경식이 동생과 아내를 살해한 것이 아니냐며 추궁하기 시작한다.

경식과 한 팀인 젊은 기관사 진수(박진국)는 투신 사고로 불안감이 극에 달해 신경이 바짝 예민해져 있다. 그러나 진수의 애인은 초조해하는 진수를 이해하지 못하고, 진수는 그것이 못내 서운하면서도 자신이 왜 힘든지 직접적으로 말을 하지도 못한다. 이들의 관계는 쌓이는 오해 속에 조금씩 어긋난다.

카메라는 지상과 지하를 오가며 끊임없이 순환하는 지하철 2호선을 따라 투박한 질감의 화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기관사들의 희망과 절망을 좇는 시선만은 끈질기고 집요하다. 두더지처럼 지하 세계에서 살아가면서 나비처럼 자유로운 비상을 꿈꾸는 주인공들의 내면은 제목 그대로 복합적으로 묘사된다.

기관사들의 아픔과 절망을 성실하게 챙기며 전개되던 영화는 그러나 중반부를 지나면서 정체가 다소 모호한 미스터리로 방향을 꺾는다. 이는 영화사에서 구분해 놓은 대로 "서브웨이 미스터리"라는 장르에는 부합하지만 관객을 향해 잔뜩 던져 놓은 질문에 대한 답은 그리 속시원하게 제시되지 않는다. 지하철 안팎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조화로운 조합이 아쉽다.

이 영화는 서명수 감독의 첫 번째 장편영화로, 이 영화는 2006년 부산국제영화제 "크리틱스 초이스" 개막작으로 소개됐으며 서울독립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았다. 이후 1년 반 만에 극장에서 개봉하게 됐다.

22일부터 서울 중구 저동의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만날 수 있다. 15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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