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투야의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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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투야의 결혼
  • 윤종원
  • 승인 2007.10.25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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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책임의 무게

올해 베를린 국제영화제 황금곰상 수상작인 "투야의 결혼"은 삶과 가족, 책임감의 무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척박하고 광활한 황무지의 땅, 내몽골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모든 것이 간편해지고 현대화된 오늘날의 도시인에게 점차 잊혀져가고 있는 원시적 삶의 형태를 통해 현대인들이 망각하거나 간과하고 있는 인생과 생존, 사랑과 책임감의 의미에 대해 담담하면서도 묵직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중국 독립영화계의 기대주인 왕취안안(王全案) 감독의 섬세한 연출과 주인공 위난(余男)의 열연이 빛을 발한다.

내몽골의 광활한 황무지 한복판에서 두 아이와 우물을 파다 불구가 된 남편 바터(바터)와 함께 살아가는 투야(위난)는 수십 마리의 양떼를 몰고 먼 길을 오가며 물을 길어나르는 고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투야는 고된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사고가 난 이웃 주민을 도와주다 자신도 허리를 다치게 돼 힘든 생활고에 한계를 느낀다.

그런 투야의 모습을 지켜보며 안타까워하던 바터와 가족은 이혼을 하고 그녀를 도와줄 수 있는 새로운 남편을 찾도록 권하게 된다.

결국 바터와 이혼을 하게 된 투야는 두 아이와 남편을 함께 부양할 수 있는 새로운 남편감을 찾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투야에게 청혼을 해오는 남자들은 많아도 바터까지 책임져줄 상대는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게 투야의 새로운 남편 찾기가 계속되던 어느 날, 그녀에게 유전사업으로 부자가 된 학창시절 친구가 찾아와 청혼하고 바터를 임시로 요양원에 맡겨두자고 제안한다.

요양원에 홀로 남겨진 바터는 깨진 유리로 자신의 손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하고, 바터의 자살 시도 소식을 듣고 요양원으로 달려온 투야는 그렇게 죽고 싶으면 애들과 자기도 모두 함께 죽자며 울부짖는다.

어쩔 수 없이 학창시절 친구와의 결혼을 포기하고 다시 바터를 데려온 투야는 어린 시절 친구인 썬거(썬거)의 도움을 받아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간다.

이런저런 도움을 주며 투야의 주위를 배회하던 썬거는 어느 날, 오래 전부터 투야에 대해 품어왔던 연정을 고백하며 투야에게 청혼한다.

"투야의 결혼"은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국내에서 개봉하는 재중동포 장률 감독의 영화 "경계"와 공간적 배경이 일치한다.

이 두 영화는 올해 베를린 영화제 경쟁부문에 나란히 진출, 황금곰상을 놓고 경쟁을 벌이기도 했는데 두 영화의 분위기는 비슷하면서도 많이 다르다.

"경계"가 정적이고 관조적이라면 "투야의 결혼"은 한결 역동적이고 드라마틱한 편이다.

거의 사건다운 사건이 일어나지 않고 정적으로 흘러가는 "경계"에 비해 "투야의 결혼"은 이런저런 사건도 제법 일어나고 크고 작은 갈등과 위기상황이 조성되기도 한다.

반면 인상적인 정사 신이 몇 차례 시선을 잡아끄는 "경계"와 달리 "투야의 결혼"에는 그 흔한 키스 신 한 번 없다.

이처럼 두 영화는 좀처럼 접하기 힘든 내몽골이라는 공간적 배경을 공유하고 있으면서도 감독의 연출각도에서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모친이 내몽골 출신이기도 한 왕 감독은 급격한 산업화로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내몽골의 원시적인 자연과 유목민의 삶, 그리고 문화를 "투야의 결혼"을 통해 투영시켰고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는 언젠가는 영원히 사라질지도 모를 소수민족의 문화를 영원히 보존하는 소중한 기록으로 남게 됐다.

최근 홍수처럼 쏟아져나오는 싸구려 코미디물이나 저급한 상업영화에 식상해있는 관객이라면 "투야의 결혼"은 한 잔의 시원한 청량제처럼 느껴질 듯하다.

위난을 제외한 다른 등장인물들은 전문 배우가 아니라 영화 속에서와 같은 이름을 갖고 있는 실제 현지 유목민이다.

11월1일 개봉. 관람등급 미정.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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