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급여 자격관리시스템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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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급여 자격관리시스템이 두렵다
  • 정은주
  • 승인 2007.06.13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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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자격확인 업무 병원에 전가...병원계 수납 "골머리"
내달 의료급여 자격관리시스템 도입을 앞두고 전산정비 및 수납방식 변경 등으로 병원계의 혼란이 극심하며, 특히 시스템 도입으로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예측이 어려운 상황이어서 병원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정부는 의료급여환자의 의료쇼핑 현상이 심각해지고 진료비가 급격히 늘어나자 올 7월부터 선택병의원제도와 1종환자 일부 본인부담금을 도입하는 한편 의료급여환자에게 한달에 6천원의 건강생활유지비를 지원하고 환자가 병원을 방문하면 이 비용이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 후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자격관리시스템’을 도입키로 했다.

문제는 정부가 관리해야 할 의료급여환자의 자격관리 업무를 의료기관에 전가시키면서 의료기관내 전산시스템 재정비와 수납문제, 보험청구 등 행정 전반에 걸쳐 업무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의료급여환자가 병원을 방문했을 때 현재는 처방이 없을 경우 선수납하고, 처방이 있으면 진료 후 무인수납기나 수납창구에서 수납을 하면 되지만 이 제도가 시행되면 의료급여환자인지 등록과정에서 건강보험공단 정보시스템에 접속한 후 자격여부를 확인한 다음 환자가 진료한 뒤 건강생활유지비 남은 금액에서 정산할지, 남은 금액이 없다면 본인부담으로 받을지 정산을 해야 한다.

◆자격확인, 대기시간 길어져
건강보험공단 시스템에 접속해서 화면에 보여지기까지 예상 소요시간은 3초 이상.
일반적으로 의료급여환자 비율이 대략 15%에서 많게는 20%정도이므로 800병상 규모 대학병원의 경우 하루 150여명의 1종 의료급여환자가 외래방문하고, 이들 환자가 등록·정산 과정에서 두 번 시스템을 거치면 총 300번의 시스템 접속이 필요하다. 무인수납기는 카드를 넣으면 로딩시간 없이 곧바로 정산이 시작되는 것과 달리 최소 3초 이상 기다려야 하는 것은 환자 대기시간을 늘리는 큰 요인이 된다.

이는 환자들의 민원과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 막대한 인력과 예산을 투입, 대기시간 단 몇초 몇분이라도 줄이려는 병원들의 노력을 허사로 만드는 일이라는 지적이다.

또 대부분 병원들이 선수납방식을 채택하고 있어 처방이 없으면 수납후 진료를 받고 곧장 귀가하면 되지만 의료급여자격관리시스템이 도입될 경우 선수납 방식을 고수하기 힘들어진다.

만성질환이 있는 급여환자일 경우 의료기관을 한번 방문해 여러 진료과에서 진료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순식간에 건강생활유지비 6천원은 고갈되므로 결국 환자 본인부담으로 받아야 하기 때문. 수납절차가 복잡해는 데다 후수납 방식을 도입할 경우 행여 환자가 진료후 수납을 하지 않고 귀가하면 손해는 고스란히 병원 몫이 된다.

대부분 병원들이 아직 선수납을 고수할지, 후수납 방식으로 변경할지 결정은 못한 상태지만 의료급여환자에 대해서만 후수납으로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병원도 있다.

인천소재 I병원 원무과장은 “수납하지 않고 그냥 귀가하는 환자가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일단 정부가 모든 창구에 시스템을 설치해준다고 해서 현재 시스템대로 운영할 예정”이라며 “수납하지 않는 부분은 병원이 손해를 떠안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용창구 운영여부 고민
전용창구 운영문제도 병원들의 고민거리다.

의료급여환자의 자격을 확인하고, 바뀐 제도와 건강생활유지비 잔액 등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기 위해선 시간이 상당히 소요되는데 기존 창구에서 이를 수용하려면 전체 환자의 대기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전용창구가 불가피한 상황.

그러나 전용창구를 운영하면 의료급여환자들이 수치심을 느낄 수 있어 또 다른 민원이 발생할 우려가 있으며, 창구 운영으로 인한 인력충원과 비용발생도 병원이 감당해야 할 부분이어서 결정이 쉽지 않다.

서울소재 S대학병원 원무과장은 “선수납·후수납방식, 전용창구 등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는 부분에 대해 다각도로 검토중이지만 아직 결정은 못한 상태”라고 밝혔다.

E대학병원 보험과장은 “의료급여환자 전용창구 설치가 불가피할 것 같다”며 “아직은 예상되는 문제와 구체적인 상황인지가 안돼 결정을 못하고 있지만 제도가 시행되면 대부분 병원들이 ‘최선의 방식’을 선택해 비슷하게 운영할 것”으로 내다봤다.

상당수 병원에 설치된 무인수납기를 사용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무인수납기는 병원의 수납행정 업무를 신속·정확하게 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들여 설치, 사용중이지만 의료급여환자 자격관리시스템이 도입되면 기기로 자격관리가 안되므로 의료급여환자는 사용할 수 없게 된다.

S대학병원 보험팀장은 “무인수납기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하더라도 공단사이트에 접속해서 공인인증 과정을 거쳐야 하므로 환자들이 직접 수납기로 수납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병원들이 불만을 가지는 가장 큰 부분은 정부가 의료급여환자의 본인부담금 발생과 자격확인시스템 도입과 관련해 적극적인 홍보에 임하지 않고 의료기관에게 모두 떠넘기기 때문.

그동안 본인부담이 없던 환자에게 7월부터 본인부담금을 받는다고 하면 병원 수납창구에서 의료급여 환자들의 불만이 터져나올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다.

또한 의료급여환자의 자격관리는 정부의 몫이며, 병원은 환자가 찾아보면 진료를 하고 이에 대한 정보만 공단에 넘겨주면 되는데 자격이 있는지, 건강생활유지비가 얼마나 남았는지까지 병원에서 관리하도록 하는 것은 지나친 행정부담이라는 게 병원계의 의견이다.

◆법률자문결과 자격관리업무는 정부몫
이와 관련해 대한병원협회가 법률고문에 자문을 구한 결과 “자격관리시스템의 내용을 작성해 이를 공단 등에 송신하는 업무는 의료급여시행령에 따라 시군구청장 고유의 업무이며, 이를 공단에 위탁수행하는 상황에서 의료급여기관에 재차 위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또 의료기관이 이 업무를 수행하지 않을 경우 처벌하기 어려우며, 제도도입에 따른 고시를 복지부장관이 강제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법률해석이 나왔다.

이외에도 건강보험과 의료급여간 자격변동을 실시간 공단의 정보망에 반영할 수 있을 것인지, 공단 시스템에 부하가 없을지, 시스템에 장애가 발생할 경우 처리, 보안문제, 의료급여환자에 대해 소급해서 자격을 부여할 경우의 행정상 혼란 등 각종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는 상황이어서 제도시행을 앞두고 병원들의 원성이 고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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