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초속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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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초속 5㎝
  • 윤종원
  • 승인 2007.06.12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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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사영화가 담지 못하는 표현을 종종 애니메이션이 이뤄내지만 "신세대 천재"로 불리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초속 5㎝"는 애니메이션의 표현력을 더욱 깊고 풍성하게 이뤄냈다.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에서 이름을 붙인 "초속 5㎝"는 애니메이션의 범주를 넘어서 문학적ㆍ철학적 소양을 담뿍 담고 있는 영화다.

영화는 느리면서도 빠르고, 간결하면서도 복잡하며, 쓰라리면서도 덤덤하다.

세 편의 옴니버스식 단편으로 구성됐지만 결국 한 편의 영화다. 각 편에서 시간은 참 느리게 흐른다. 인물을 설명하는 데 조급하지도 않다. 세세한 설명을 붙이지도 않는다. 그리고 시간과 공간의 가혹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랑하는 이들의 이별은 쓰라리다.

그러나 느리게 지났던 시간은 되돌아보면 찰나에 불과하다. 인물이 주고받는 말은 짧고 간결하지만 그들의 심리는 복잡하다. 단지 설명하지 않을 뿐이며, 그저 느끼라고 할 뿐이다. 사랑하는 이들의 이별은 당연히 아프지만 그렇다고 달라질 건 없다는 걸 말하며, 인생은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라고 무심히 보여준다.

시간의 흐름을 통해 사랑과 인생을 통찰하는 신카이 감독의 시각은 천재라는 호들갑스러운 별칭이 붙은 이유를 증명하는 주요 배경이 된다.

스크린 위에 펼쳐놓은 표현력 역시 뛰어나다. 지극히 사실적인 묘사는 묘하게도 감정적 묘사로 느껴진다. 형광등의 깜빡거림, 지하철 역의 세세한 내부, 빗방울의 움직임 등이 집요한 묘사로 생명을 얻는다.

"초속 5㎝"는 올해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 개막작으로 선정돼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로 이미 그의 이름이 낯설지 않은 국내 팬들에게 미리 선보였다.

제1화 "벚꽃 이야기". 도쿄의 초등학교에 다니는 도노 다카키와 시노하라 아카리는 전학생인 데다 작은 체구에 책을 좋아하는 것까지 닮아 친해진다. 벚꽃이 흩날리던 어느날 아카리는 다카키에게 "너 그거 아니?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가 초속 5센티미터라는 걸. 내년에도 너와 같이 벚꽃이 떨어지는 모습을 봤으면 좋겠다"고 말한 후 기타칸토로 전학간다.

중학생이 됐지만 여전히 편지를 주고받던 둘은 다카키가 섬으로 이사를 가게 되자 만나기로 약속한다. 갑자기 내린 폭설은 신칸센과 지하철의 운행을 늦춘다. 약속시간이 4시간이나 지나서야 만나게 된 두 사람. 눈덮인 벚나무 아래서 갑작스런 키스로 사랑을 확인한다.

제2화 "코스모나우트". 가고시마 섬에서 살고 있는 고교 3년생 다카키는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며 잘생겼다. 스미타는 그가 전학온 순간부터 짝사랑을 앓고 있다. 고백을 못한 채 하굣길을 함께 하면서 스미타는 말 못하는 자신을 매번 원망한다. 다카키의 시선이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향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서핑을 할 수 있게 된 날 고백을 하려 하지만 스미타는 해내지 못한다.

제3화 "초속 5센티미터". 다카키는 회사를 그만둔다. 3년간 사귄 여자친구와도 헤어졌다. 아카리를 가슴에 여전히 품고 있지만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아카리는 결혼을 앞두고 짐을 정리하기 위해 기타칸토 부모님 집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다카키 앞으로 썼던 편지를 발견한다. 벚꽃이 흩날리는 날 순간의 시간, 두 사람은 서로를 느낀다.

첫 키스에서 영혼의 존재를 느낄 만큼 깊은 사랑을 한 다카키와 아카리가 왜 헤어졌는지,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건지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시간은 사람의 관계를 그렇게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헤어졌지만 두 사람의 그리움은 인생과 영원히 함께 하는 동반자다.

21일 개봉. 전체관람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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