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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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상성
  • 윤종원
  • 승인 2007.05.16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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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간도"를 보고 진한 슬픔에 빠졌으며, 홍콩 느와르 영화의 부활에 함께 기뻐했던 관객이라면 "상성(傷城):상처받은 도시"(이하 "상성")와의 만남은 필수적이다.

2003년 "무간도"를 내놓은 이후 2년 동안 세 편의 시리즈를 통해 홍콩영화에서 느와르는 소중하고 당당한 자산임을 내보였던 류웨이장(劉偉强)ㆍ마이자우후위(麥兆輝) 감독. 이 시리즈의 성공으로 세계 각국의 "러브콜"을 받아 한동안 다른 장르에 빠져 있던 두 감독이 느와르로 회귀했다. 이번에도 량차오웨이(梁朝偉)는 홍콩, 그 자체를 연기하는 배우로 등장하며 진청우(金城武)가 새로운 인물로 합류했다.

"무간도" 1편에서 홍콩을 "혼돈의 도시"로 규정했던 두 감독은 이번에는 아예 제목에 홍콩을 "상처받은 도시"로 명명했다.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 홍콩인의 흔들리는 삶과 정신을 짚어내 그 전까지 액션을 통해 느와르 장르를 개척했던 홍콩 영화와 차별점을 분명히 했던 그들은 중국 본토민의 대거 유입으로 인해 상처받은 영혼이 더 많아졌다는 시각으로 홍콩을 그려냈다.

여기에 특이한 점은 그 상처가 복수로 드러난다는 것. 그러나 한 인간의 처절한 복수에 정당성을 부여함으로써 관객은 복수를 꿈꾸는 인물에게 오히려 마음을 줘버리는 이색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이에 따라 영화는 "무간도" 버금가는, 아니 그 이상 비극적 느와르로 자리매김한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유정희(량차오웨이 분)와 아방(진청우)은 진영인(량차오웨이)과 유건명(류더화ㆍ劉德華) 못지않게 비극적인 운명을 갖고 있다. 조직폭력배와 경찰이라는 신분이 뒤바뀜으로써 혼돈된 정체성을 보였던 "무간도"의 두 인물처럼 "상성"의 두 인물은 모두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가져다준 상처로 인해 양면적 성격을 띤다. 주인공 직업이 경찰과 관련이 있다는 점도 공통점.

"상성"에서 홍콩은 하나의 도시로 그치지 않는다. 현실의 공간을 넘어 공허한 마음이 부유하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량차오웨이의 눈빛은 갈수록 깊어진다. 왕자웨이(王家衛), 장이머우(張藝謨) 감독 등 세계적 반열에 오른 감독이 그를 선택하는 건 단지 외모에서 풍겨나는 이미지만이 아님을 이 영화에서 새삼 확인시킨다. 한국에는 소개되지 않았으나 로맨틱 코미디까지 섭렵할 정도로 다양한 활동을 자랑하는 이 배우는 역시 깊은 상처를 갖고 있는 배역에 딱 어울린다. 데뷔 25년 만의 최초의 악역이라고 하지만 그가 연기한 악역은 악역이 아닌 되레 슬픈 인물로 탈바꿈한다. 바로 그것이 두 감독이 원했던 일일 것.

진청우는 "미남 스타"라는 타이틀이 더 이상 어울리지 않음을 주장한다. 출중한 외모에 가렸던 연기력에 대한 신뢰가 이젠 더 앞선다.

2003년 크리스마스. 성범죄자 검거를 앞둔 경찰 아방은 강력반장 유정희에게 여자친구와 소원한 관계임을 고백한다. 범인을 붙잡은 후 돌아간 집에서 아방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자친구의 싸늘한 주검을 대한다. 술을 못 마시던 아방은 이후 경찰을 그만두고 알코올에 중독된 사립탐정이 돼 있다.

유정희는 안정된 삶을 살아간다. 특히 종군기자인 숙진(쉬징레이ㆍ徐靜雷<艸아래 雷>)을 만나 행복한 가정까지 꾸리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숙진의 아버지와 그의 집사가 잔인하게 살해당한다. 아버지와 결코 친하게 지내지 않았던 숙진은 사건에 의심을 품는다. 강력반장이 된 유정희를 비롯한 경찰은 돈을 노린 강도들의 치밀한 범행으로 결론내렸으며, 강도들은 돈을 나누는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를 죽인 것으로 마무리한다.

여자친구가 임신한 상태에서 죽은 후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한 채 방황하던 아방은 맥주 홍보를 하는 펑(수치ㆍ舒淇)을 만나 그의 집에서 종종 신세를 지지만 마음을 열지는 않는다. 친구도 아닌 이성관계도 아닌 어정쩡한 관계가 지속된다.

숙진은 아방을 찾아와 아버지 살해 사건을 의뢰한다. 아방은 수사 도중 범인 중 한 명인 마카오 출신 진위강에게 슬픈 사연이 있음을 알게 된다. 마카오에서 불법 사업으로 돈을 벌었던 숙진의 아버지가 자신의 뒤를 봐줬던 경찰과 함께 비리를 캐내는 경찰과 경찰 가족을 잔인하게 살해했던 것. 탁구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진위강은 그 처참한 광경을 목격했다.

아방은 진위강이 단지 돈 때문이 아닌 복수심으로 숙진 아버지를 죽였다는 것을 알아내지만 사건은 왠지 끝난 것 같지 않다. 숙진은 누군가에게 미행을 당한다고 여기는 등 정신적으로 불안해하고, 유정희는 그런 아내를 따뜻이 감싼다.

영화는 진범을 초반에 밝혀내지만 과연 그 진범이 진짜일까, 의구심을 갖게 하면서 끝까지 범인의 정체를 혼돈에 빠뜨리는 한편 범인의 심리에는 공감을 느끼게 한다. 관객 역시 이중적 태도를 갖게 하는 것.

한동안의 침체기에서 빠져나온 홍콩과 일본 영화의 재성장이 부러워지는 요즘이다.

국내 개봉은 31일. 관람등급 미정.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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