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마리 앙투아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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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마리 앙투아네트
  • 윤종원
  • 승인 2007.05.09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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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와 화려함의 대명사. 프랑스 혁명을 불러일으킨 방탕한 왕실의 안주인. 숱한 영화와 소설, 만화의 주인공으로까지 등장했던 비운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후대 예술인들에게 그는 여전히 새로운 창작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인물인가 보다.

이번에 그를 불러낸 사람은 "대부"로 유명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딸이자 "처녀자살소동"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한 소피아 코폴라 감독. 그는 "처녀자살소동"에서 만난 적이 있는 커스틴 던스트를 종잡을 수 없는, 그러나 내면의 아픔을 간직한 마리 앙투아네트로 변신시켰다.

"처녀자살소동"은 국내 관객에겐 "스파이더맨" 시리즈로 유명한 아역배우 출신 던스트에게 10대 시절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도록 한 작품이다.

특별한 사건 없이 밋밋한 구조 탓에 "지루하다"는 관람 평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아예 기대를 저고 보면 오히려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것처럼, 영화의 요소요소에 관심을 기울이면 색다른 재미를 찾을 수 있다.

우선 의상. 이 영화로 아카데미 의상상을 세 번째 거머쥔 밀레나 카노네로의 옷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주된 의상 색깔은 소녀적 감성이 극대화된 핑크톤. 당시에는 핑크빛 드레스가 없었으나 앙투아네트의 천진난만함과 순수함을 표현해달라는 감독의 주문을 받은 밀레나 카노네로는 상상력을 동원해 전혀 새로운 톤의 의상을 선보였다.
의상뿐 아니다. 당시 시대상황을 엿보게 하는 높은 가발, 형형색색의 신발 등 볼거리가 많다. 1초 정도 잠깐 훑고 지나가는 화면에서 느닷없이 보이는 하늘색 스니커즈는 이 영화를 대하는 감독의 태도를 볼 수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를 지탄받는 왕비가 아닌, 소녀적 감성이 풍부한 여자로 그리고 싶었던 건 아닐까.

음악 역시 인상적이다. 시대를 짐작케 하는 오페라가 간간이 선보이지만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주로 쓰인 건 놀랍게도 로큰롤 스타일의 경쾌한 선율. 이 역시 젊고 미성숙한 왕비와 딱 들어맞는다.

코폴라 감독은 마리 앙투아네트를 박제화된 모습이 아니라 14살에 고국 오스트리아를 떠나 낯선 프랑스로 시집온 가련한 여자로 관객 앞에 등장시킨다.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슬픔을 지닌 왕비가 사치와 향락에 몸을 맡기는 게 그다지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그녀에 대한 진실을 조금이나마 알리고 싶었는지, 마리 앙투아네트가 했다는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라는 철없는 말이 그녀의 입에서가 아닌 흉흉한 민심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살짝 가르쳐주기도 한다.

이런 영화의 분위기이니 현대적 외모인 커스틴 던스트를 캐스팅했던 듯. 그는 철없지만 고국의 안녕을 짊어졌다는 사실만큼은 결코 잊지 않는 공주이자 왕비를 표현하는 데 어색함이 없다. 뛰어난 미모는 아니지만 누구나 호감을 가질 만한 귀여운 매력이 한껏 드러난다.

프랑스와 동맹을 맺기 위해 14살에 왕세자비가 된 오스트리아 공주 마리 앙투아네트는 잠자리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남편(루이 16세) 때문에 귀족들에게 비아냥거림을 듣는다. 앙투아네트는 정부에게 빠져 있는 왕(루이 15세)이나 보석과 파티, 애인 만들기에 급급한 귀족들이 낯설기만 하다.

오스트리아에 있는 어머니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딸을 다그치는 전갈을 계속 보내 부담을 준다. 이런 곳에서 마리가 관심을 두는 건 옷과 보석, 그리고 도박. 그의 사치는 점점 심해진다.

결혼한 지 몇 년 만에 딸을 낳은 앙투아네트는 그 전까지의 생활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아이를 키운다. 가면 무도회에서 뜨거운 눈길을 보냈던 바람둥이 페르젠 백작을 다시 만나 사랑에 빠져버린 앙투아네트. 그렇지만 그가 떠나고 프랑스 왕실의 대를 이을 왕자를 낳으면서 그는 어머니이자 아내가 돼간다.

미국에 쏟아부은 막대한 원조금과 함께 왕실과 귀족의 사치와 향락으로 가난에 찌든 성난 민심이 왕궁을 향한다. 피신을 하라는 권유에도 불구하고 남편 곁에 남겠다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모습도 전혀 뜻밖이다.

한 여성의 성장기처럼 14살부터 죽을 때까지의 삶을 쭉 보여주는 까닭에 극적 장치는 미흡하다. 앞서 언급했던 이야기의 재미보다는 색다른 해석을 눈여겨보면 좋을 듯하다.

신세대적 분위기를 풍기기 위한 듯 "닭살" 등 현대 감각으로 재해석한 번역은 그래도 좀 어색하다.

서울 대학로 하이퍼텍나다와 신문로 미로스페이스, 두 곳에서만 상영된다.

17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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