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경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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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경의선
  • 윤종원
  • 승인 2007.04.30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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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영화 "하루"로 호평받았던 박흥식 감독의 저예산 영화 "경의선"은 상처를 입은 두 남녀에 대한 이야기다.

지루하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성실함을 잃지 않고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지하철 기관사 만수(김강우)에게는 얼마 전부터 자신의 열차를 기다렸다가 간식거리와 잡지를 건네는 한 여자가 있다.

가족도 동료도 인지할 수 없을 만큼 매번 바뀌는 열차 운행시간을 어떻게 알고 매일같이 정확한 시간에 기다리는지 알 수 없지만 그녀의 등장은 어느덧 만수의 일상에 활력이 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예기치 못한 열차 투신 자살 사건으로 큰 충격과 혼란에 빠진 만수는 특별휴가를 받고 경의선 기차에 오른다.

같은 과 교수로 재직 중인 대학 선배와 독일 유학시절부터 지속된 불륜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흔들리지 않고 당당히 사랑하고 싶은 대학강사 한나(손태영).

남부럽지 않은 능력과 조건을 갖춘 엘리트지만 어쩐지 채워지지 않는 그녀의 공허한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생일을 맞아 그와 함께 떠나려던 제주도 여행은 선배의 부인에게 불륜관계가 탄로나는 바람에 무참히 산산조각나버리고 부인의 이혼 요구 앞에 망설이는 그의 우유부단한 태도는 한나를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애써 무시했던 상황과 마주하고 난 한나는 먹먹한 가슴으로 경의선 기차에 몸을 싣는다.

영화는 너무나 다른 배경과 상처를 갖고 있는 두 남녀가 우연히 경의선 종점에서 만나면서 이뤄지는 치유의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어찌 보면 김기덕 감독이 즐겨 다루는 주제 같기도 한 이 영화의 화법은 지극히 서정적이면서도 사실주의적 담담함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카메라는 상황을 과장하지도 않고 관객을 놀래키려는 트릭을 쓰지도 않는다. 오히려 지루할 정도로 일상화된 리얼리티의 끈을 단단히 붙들고 있다.

겨울밤에 상처 입은 두 사람을 실은 채 펑펑 쏟아지는 눈발을 뚫고 달려가는 경의선 열차를 투명한 롱테이크로 따라가는 서정적 영상미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말죽거리 잔혹사"에서의 권상우를 연상시키는 김강우의 풋풋하고 성실한 연기는 만수라는 인물의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구축하는 데 성공하면서 영화의 리얼리티 구현에 크게 기여한다.

반면 손태영의 연기는 "미스코리아 출신들은 연기를 못한다"는 속설을 다시 한번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하다.

일명 "공주병 말투"라고 일컬어지는 예쁜 척 어리광부리는 듯한 대사투는 영화의 정서와 어울리지 않아 어색하고 귀에 거슬린다.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가 영화의 분위기를 업그레이드시키는 것과는 대조되는 부분이다.

8억 원 정도의 비교적 적은 예산이 들어간 "경의선"은 10여 개 정도의 극장에서만 소규모로 개봉할 예정이다.

5월10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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