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바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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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바벨
  • 윤종원
  • 승인 2007.02.13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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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냐리투 감독 특유의 퍼즐 맞추기식 연출 묘미

오랜만에 영화다운 영화를 본 듯한 느낌이 든다.

멕시코 출신의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영화 "바벨"을 보고 나서다. 브래드 피트가 진지한 연기파 배우로서의 면모를 보여줬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한 이 영화는 그러나 피트를 위한 영화는 아니다.

그의 연기가 다른 출연자들에 비해 특별히 돋보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청각장애 일본 여고생 지에코 역을 연기한 일본의 신예 기쿠치 린코 같은 무명 배우는 놀라울 정도의 빼어난 연기력을 보여준다.

모로코나 멕시코, 일본의 다른 신인 배우들의 연기도 여느 기성 배우 못지않게 훌륭하다. 오히려 영화의 간판 격인 브래드 피트나 케이트 블란쳇의 열연이 무색할 정도다.

이냐리투 감독의 "진실 3부작" 중 하나인 "바벨"은 제목에서 암시하듯 인간들간의 의사 소통과 단절을 다룬 영화다.

모로코와 미국, 멕시코, 일본 등 4개국을 오가며 사건이 전개되며 이 영화에 등장하는 언어도 아랍어, 영어, 스페인어, 일본어 등 6개나 된다.

이 때문에 영화를 만드는 과정 자체도 바벨탑을 쌓는 것처럼 복잡하고 어려웠다고 전해진다. 멕시코 출신인 이냐리투 감독의 스페인어를 영어로 통역해 다시 배우들에게 아랍어로 전해야 했던 모로코 촬영현장이나 영어를 일어로 통역해 이를 다시 수화로 배우들에게 전달해야 했던 일본 촬영현장은 바벨탑을 쌓다가 혼돈에 빠졌던 인간의 모습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는 것.

이냐리투 감독은 이러한 과정에 대해 "내가 도전했던 그 어떤 일보다 터무니없는 일이었지만 또한 가장 만족한 일이었다"는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영화는 모로코 사막에서 버스를 타고 지나가던 미국인 관광객 부부(브래트 피트ㆍ케이트 블란쳇)가 어린아이들의 철없는 장난으로 야기된 총격사건으로 부상하면서부터 시작된다.

피습사건이 벌어진 모로코와 이들 부부가 어린 남매를 남겨두고 온 미국, 남매를 돌보는 멕시코인 보모가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하게 되는 멕시코, 총격사건에 사용된 사냥총을 모로코인에게 선물한 일본인 사업가와 그의 청각장애인 딸이 사는 일본 등을 오가며 사건이 전개된다.

4개국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하나같이 의사소통의 단절 또는 왜곡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총상을 입고 황량한 모로코인 마을에 버려지게 된 미국인 부부는 언어의 단절(영어와 아랍어)이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며 일본의 청각장애인 여고생인 지에코는 장애로 인한 의사소통의 단절이라는 멍에를 지고 있다.
어린 남매의 멕시코인 보모는 위압적인 미국 공권력과 대면하면서 불법체류자라는 약자의 신분에 따른 의사소통의 장벽을 경험한다.

4개국을 어지럽게 오가며 각각 따로따로 전개되던 사건들은 영화의 결말 부분에서 톱니바퀴처럼 하나로 맞물리면서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한다.

영화는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 하나 없이 시종일관 진지하고 심각하게 전개되며 관객 입장에서 볼 때 특별히 재미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네 개의 독립된 영화를 하나로 묶어놓았다고 할 수도 있는데, 이를 하나씩 따로따로 놓고 보면 청각장애인 여고생의 정신적 방황과 일탈을 다룬 일본편 에피소드가 작품성이 가장 뛰어나다.

데뷔작인 "아모레스 페로스" "21그램" 등을 통해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를 탐구하는 작업에 천착해온 이냐리투 감독의 고고한 예술혼이 영화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22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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