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정책이 민족운명 좌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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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정책이 민족운명 좌우
  • 박현
  • 승인 2006.12.04 08: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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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대 복음병원 신경외과 전병찬 교수
지난 10월에 중국을 다녀왔다. 중국으로서는 처음으로 개최한 세계신경내시경학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세계 신경외과전문의들 중 신경내시경을 이용해 수술을 전공하는 의사들만 초청했다. 미국, 이탈리아, 일본 등에서 온 5명이 초청연자로 참가했다.

한국의사로서는 유일하게 초청되어 아주 영광스러운 자리였다. 더군다나 중국 신경외과의사가 약 300명이 참가하여 가슴이 더더욱 설레는 분위기였다.

이번 학회에 티안탄병원은 주된 역할을 했다. 베이징에 있는 병원으로 신경외과분야에서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병원이다. 중국에는 중의가 대부분이고, 어쩌면 질병을 소위 전통 중국식 한방으로만 치료하는 것이 다반사인 것으로 알고 있기 마련이다. 죄송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이 병원에서 연간 약 구천예의 뇌수술을 한다니 가히 세계최대 규모를 갖춘 병원이다.

몇 년 전 하얼빈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 때 베이징에서 열린 학회에서 발표를 하고, 하얼빈에 있는 인민대학병원에 들렀다. 이 병원에 있는 첸 교수가 초대했다. 첸은 98년 피츠버그대학병원에서 만난 한국계 중국신경외과의사이다. 하얼빈병원은 중국 대륙처럼 아주 큰 병원이지만 내부는 허름했다. 중환자실은 마치 60년대 우리나라 병원과 같았다.

하지만 감마나이프와 같은 최첨단장비를 자체적으로 개발해 사용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감마나이프를 몇 몇 대학병원에서 수십억을 들여 경쟁적으로 수입해 쓰고 있는 실정이다.

또 놀라운 일이 있었다. 중풍에 걸리면 수술하지 않고 뇌혈관 안으로 코일을 집어넣는 시술을 중재술이라고 일컫는다. 최근에 들어와서야 국내에서도 붐이 일고 있지만 이미 하얼빈대학병원에서는 시쳇말로 밥 먹듯이 중재술을 하고 있었다.

피츠버그대학병원에서 연수할 때 더 놀라웠던 일은 연수하러 온 첸 교수가 받은 급여였다. 미국에서 연수받는 6개월 동안 그들이 공산당 정부로부터 받은 돈은 무려 5천불이었다. 중국 신경외과의사가 받는 월급이 60불인데 비하면 거금이었다. 그것도 무려 한 번에 11명이나 미국으로 보내 선진기술을 익히도록 했던 것이었다.

하얼빈대학에 머무는 동안 첸 교수의 제자 두 명이 숙소로 찾아 왔다. 한국에 와서 선진기술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첸 교수도 자신의 제자가 신기술을 배워오기를 기대했다. 다음 해 부산에 와서 일 년간 연수교육을 받았는데, 그 둘은 아주 열성적으로 공부했다. 의학논문도 각 각 한 편씩 영어로 써 냈다. 서로 말이 안 통하니 다 같이 아침 발표 때마다 영어를 사용하게 되었고, 덕분에 나의 제자들도 영어실력이 부쩍 늘게 됐다.

이 들 중 한 명은 중국공산당 간부의 아들이었고 나머지 한 명은 농부의 아들이었다. 그 들이 공부를 마치고 한국을 떠날 때 공산당 간부의 아들은 미리 준비해 온 중국술인 마호타이 한 병을 선물했지만 다른 친구는 검은 콩과 깨를 선물했다. 중국술을 선물한 친구는 요령(要領)이 뛰어났고, 농부의 아들은 동작이 느렸지만 아주 성실했다.

중국 출신인 두 제자가 하얼빈대학병원에서 신경외과 과정을 마치고 베이징에서 일자리를 구했다. 그것도 중국 신경외의사라면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티안탄병원에서 근무를 하게 된 것이다. 둘 중 농부의 아들이었던 자오 펭은 성실성과 실력을 인정받았고, 세계학회를 열게 되자 큰 역할을 맡게 됐다. 자오의 스승이자 티안탄병원의 신경외과 주임과장이 나를 초청했던 배경도 아마 자오의 추천을 수용했을 것이리라. 잃어버린 말 한 마리가 나중에 두 마리가 되어 돌아왔다는, 새옹지마(塞翁之馬)가 이런 것인가. 돈벌이를 뒤로 하고 공부에 매진해 온 지난 10년간의 열매가 맺어진 것인가.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티안탄병원에서 한 시간 동안 강연을 했다. 먼저 강의를 한 죤슨은 미국에서 온 유명의사이다. 너무 유창한 영어에 그리고, 여유가 있는 강의에 그만 주눅이 들었다. 하지만 여러 차례 심호흡을 하고 심기일전해 단상으로 올라갔다. 피땀으로 점철된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 동안 온갖 시기와 질투를 무릅쓰고 쌓아 온 실력을 한껏 풀어냈다. 중국어로 할 수 없어 서툰 영어였지만 그들은 열심히 귀를 기울였고, 끊임없이 질문을 했다.

서로 남의 말을 쓰고, 듣는 것이라 더러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걱정을 하면서 자리로 돌아오자 청중들 속에 끼어 모니터 역할을 하던 아내는 아주 잘 됐다고 격려했다. 우뢰와 같은 박수 소리는 아랑곳없이 며칠 전 돌아가신 아버지 얼굴이 떠올랐다. 학회 직전에 노환으로 돌아가신 것이다. 이미 일 년 전에 초청됐던 결코 빠질 수 없는 국제간의 약속이었다. 3일장을 치룬 다음 날 중국으로 떠나 강연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아, 아버지.

티안탄병원 수술실로 가보자. 입을 다물 수가 없는 장면들이 속출하고 있었다. 하얼빈대학에서 최신 시술들을 보긴 했지만 이 곳은 더 했다. 이미 우리가 하고 있는 수술은 물론이고 그것도 아주 첨단기법으로 예술을 연출하고 있었다. 수술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깨끗했고, 최고의 설비를 갖추고 있었다. 척추내시경수술은 취약했다. 하지만 뇌수술은 월등했다. 중국을 생각하면 침, 그리고 동인당약방 같은 걸 연상하지만 실제로 뇌수술 등은 훨씬 앞서 나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다. 중국은 의료혁신을 도모하고 있었다. 의료를 통해 세계 초일류를 꿈꾸고 있었다. 상하이 같은 곳에서는 이미 외국 환자들이 돈 보따리를 들고 줄을 서고 있다. 한국 사람들조차도 간이식수술을 받기 위해 일억 원이나 쓰고 온다고 했다. 자기 나라에 유리한 일이면 문호를 과감히 개방한다. 규제도 쉽게 푼다. 공산주의 이론도 필요하면 후순위로 밀어 놓는다. 엄청난 부(富)를 창출하고 있다.

이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 경색되어 있다. 가벼운 교통사고로 차가 긁혀도 견적을 내면 수십만 원이 나오던데. 간단한 차 수리 기술료보다 훨씬 낮은 뇌수술 기술료도 있다. 그나마 심사할 때는 생색을 낸다. 때로는 밤새도록 잠 안자고 사람을 살려보겠다고 애쓴 의료행위에 칼질을 한다. 삭감도 모자라 범법행위로 몰아세운다. 오래 전에 만신창이(滿身瘡痍)가 됐다.

언론도 덩달아 춤춘다. 그러면 국민들은 더 쾌감을 느낀다. 과거에 느껴보지 못한 짜릿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시민연대도 덩달아 춤을 추고 있다. 또 있다. 아프다하면 KTX를 타고 서울로 간다. 소위 일류대학병원에 가서 최고의 진료를 받기를 원한다. 잘 되기도 하지만 더러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때로 뽐내기도 한다. 지방은 10년이나 뒤떨어져 있다고 너스레를 떤다.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그런데 송구스러운 이야기지만 그런 병원에서조차 다른 환자에게 썼던 일회용 전기 소작기를 쓰고 또 쓰고 있다. 왜 그러는지 국민은 잘 모른다. 그렇다고 불법행위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우리나라 의료정책이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아주 싼 의료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국민을 기만하고 있는 것이다. 필경 의사회도 지친 것 일게다. 말하면 이익단체 밥그릇 챙기기라고.

피츠버그대학병원에서 우리는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소독이야 물론 하지만 우리가 쓰고 또 쓰는 그 전기 소작기를 한 번 쓰고 쓰레기통에 버리는 장면을 보고 비통함을 느꼈다. 부자나라니까 그르려니 하면 마음이 덜 아픈 것일까. 또 송구스러운 이야기지만 상하이, 싱가포르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외국환자가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외국환자 한 명이 수술을 받는데 뿌리는 돈은 자그마치 5천만원 이상이다.

그런 병원에서는 이런 기구를 한 번 쓰고 모두 버린다. 모두 잘난 체 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현 주소다. 이것이 국민의 현재 수준이고, 암울한 국가의 운명이다. 이렇게 값싼 의료로는 외화를 벌어들일 수가 없다.

아직도 부정적 시각으로만 의사를 바라보는 정부와 시민단체가 원망스럽다. 위정자들은 기득권 세력이었던 의사를 매도하기 바쁘다. 보건의료정책을 입안하는 소위 철밥통 교수들도 굳어 있다. 사업을 해 본 적이 없으니 현실적 감각이 떨어져 있다. 직언을 해야 하는데 방향을 모른다. 억눌리는 것은 참을 수가 있다. 자존심도 버릴 수 있다. 하지만 정작 걱정스러운 일은 규제일변도의 국내의료정책이 결국은 국가와 민족을 자멸의 길로 몰고 갈 것임은 명백한 사실이다.

정상적인 의료행태가 무너진 지 오래다. 내버려두면 조만간에 대다수가 중국으로 치료를 받으러 떠나야 하거나, 동남아 의사를 수입해야 하는 장면이 연출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하루빨리 낡아 빠진 규제를 없애야 한다. 시장경제의 논리로 의료시장을 풀어야 한다. 양극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위장전술로는 더 이상 미래가 없다. 노동단체가 이런 문제로 고민할 리가 없다.

10년 후에도 전자, 조선, 자동차 산업이 우리를 부강하게 만든다고 선전하고 있다. 과연 진실인가? 그렇게 되도록 주변국이 결코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과연 무슨 좋은 방법이 없는가? 좋은 처방이 있다. 비로 경색된 강제일변도의 의료정책을 없애고, 시장논리로 의료문제를 풀어야 한다. 의료개방을 바로 받아들이기에는 우리 의료가 너무 굳어 있다. 일정한 기간 동안 자생력을 키우도록,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도록 지원하고 격려해야 한다.

세계최고의 손재주와 재능을 인정한다면 언필칭 10년 후 의사가 국가와 민족을 먹여 살릴 아주 큰 자원이 될 것은 명맥한 일이다. 경제특구로 대형병원만 진출하고 있다. 외화벌이는 아주 큰 병원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금 이 시간에 왼 종일 진료실을 지키고 있는 대다수의 의사들을 격려해야 한다. 칭찬을 하면 고래도 춤을 춘다고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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