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와 정부, 이제는 합치되어야 할 때
정부의 기습적인 의대정원 증원 발표 이후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지도 벌써 넉 달이 지났습니다.
의료인력 추계에 대한 과학적 근거 없이 ‘의대정원 2천 명 증원’이라는 결론은 여러 문제점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를 낳았고 병원에서 수련에 매진해야 할 전공의들은 임상 현장과는 멀어지고 심지어 생계를 위협받고 있어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이 사태는 비단 이번 의대정원 증원 이슈만이 원인은 아닙니다.
의료계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했던 필수의료에 대한 지원이 줄어들고 의료분쟁에 대한 소송이나 현장에서의 위험 요인을 외면해 온 현실에 대한 어려움과 불안감이 드러난 것으로 보여집니다.
우리는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위한 접근으로 대한전공의협의회에서 발표한 성명서의 요구사항들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공의들의 요구사항은 △필수의료정책 패키지 및 의대 증원 전면 백지화 △과학적인 의사수급추계를 위한 기구 설치 및 논의 △수련병원 전문의 인력채용 확대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 완화 대책 제시 △주 80시간에 달하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전공의 겁박하는 부당명령 전면 철회 및 사과 △업무개시명령 전면 폐지 및 헌법과 국제노동기구(ILO) 강제노동 금지조항 준수 등 총 7가지입니다.
전공의 요구사항과 관련해 정부는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해 필수의료 정책, 의료인력, 전문의 중심병원을 위한 의료인력 조사, 의료사고안전망에 대하여 논의 중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수련환경 개선을 위해 2026년부터 연속근무 및 주당 근무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법령을 마련해놓고 현재 40여 개 병원에서 전공의 연속근무 단축 시범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의료사고의 경우,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으로 의료사고 관련 형사처벌 부담을 완화할 방침이라고 합니다.
정부의 행정명령에 대해서는 6월 4일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을 철회했으며, 복귀 시 업무개시명령, 진료유지 명령을 함께 철회한 부분은 고무적이지만 미복귀자 및 사직자에 대한 행정처분 여부는 미정으로 이 부분은 시정이 필요합니다.
또한 2025년 의료수가 인상률은 아직 협의 중이며, 필수의료만을 위한 수가 인상 계획은 현재까지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더 나은 미래, 국민 모두가 건강한 복지사회를 위해서는 현 상황 타개를 위해 의료계와 정부가 함께 합리적인 방안을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이에 정부와 국회는 현재의 의·정 갈등 해결을 위해 다음 사항에 대한 답변을 하루라도 빨리 제시해 주길 요청합니다.
첫째, 국민건강과 직결되는 우수 의사 인력 양성의 중장기 계획을 위해 한시라도 빨리 ‘전문성’이 반영된 과학적 의사인력 수급 체계 위원회가 구성되어, 그 논의결과가 2026년 의대정원 부터라도 반영되어야 합니다.
둘째, 필수의료를 되살리기 위한 계획, 특히 정부에서 발표한 건강보험적립금을 활용한 10조 원 이상의 재정 투자와 지원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필요합니다.
셋째,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1년간 한시적 운영 예정이나, 해당 위원회 혹은 동일한 기능의 조직을 ‘상시 운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위원회 위원 절반 이상은 의료현장에 대한 이해도를 고려하여 임상의학 교수로 구성되어야 합니다.
넷째, 사직한 전공의를 포함해 모든 전공의에게 행정적 불이익이 없도록 하여 안전하고 ‘지속적’인 수련에 임할 수 있도록 조치하여야 합니다.
정부는 전례가 없는 의료환경의 위기에서 전공의들이 차후에 수련과 성장을 포기하지 않도록 길을 열어주고 전문의 수급에 문제가 없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인턴의 경우, 병원 복귀 시 내년 레지던트 승급에 문제없이 수련할 수 있도록 발표하였으나 군입대 등 여전히 문제가 존재합니다.
신입 인턴이 복귀하는 경우, 의무사관후보생 추가 등록이 가능하도록 복지부와 병무청이 협의해 조치해야 합니다.
레지던트는 6월 4일 이후로 사직서를 수리함에 따라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현 기준대로라면 상급년차 레지던트는 사직 시 1년 간 지원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6월 4일 자로 사직 시 2026년 3월부터 임용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합니다.
이에 따라 임용포기 및 사직일자를 2024년 2월 29일 자로 소급해 인정해야 합니다.
소급사직이 인정된다면 상급년차는 2025년 3월부터 임용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상급년차 1년간 지원 제한 조건을 완화한다면 2024년 9월에도 지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6월 4일부터 복귀한 경우에만 행정처분을 중단하며, 사직하거나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에 대해서는 행정처분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복귀 여부와 관계 없이 모든 전공의에 대한 행정명령이 없도록 전향적인 조치를 바라는 바입니다.
아울러 전국민 건강 증진을 위해 미래 우수 의료진을 양성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부의 재정 지원책이 절실합니다.
근로자이자 피교육자인 ‘전공의’라는 모호한 신분은 전공의들의 과로와 열악한 처우로 이어졌습니다.
전공의 수련의 질 향상을 위해서 국가의 재정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전공의들의 전문가 의식(professionalism), 역량 중심 교육(complement-based medical education)을 제대로 시행할 수 있도록 이를 위한 지도전문의의 양성, 수련기관 교육, 전공의 교육 시간 할애를 위한 구체적 계획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국회는 22대 출범을 계기로 여야를 초월하여 국민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의료계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목소리를 모아야 합니다.
더 이상 해결책만을 손 놓고 기다리기에는 시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의사와 국민, 정부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현 상황 종식을 위해 의료계 일선의 임상 의사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필수의료 종사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이미 무너진 신뢰 속에서 피해는 오롯이 국민의 피해로 이어지게 됩니다.
대한민국 의료시스템에 길고 긴 그림자가 드리운 현실에 대한수련병원협의회는 깊은 유감을 표하며 무엇보다 현재 상황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계신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 드립니다.
대한수련병원협의회는 전국 수련병원을 대표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언제 어디든지 적극적으로 소통에 나설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