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그라, 문화인류학자와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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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그라, 문화인류학자와 만나다
  • 박현
  • 승인 2006.05.22 1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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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 고고 문화 인류학과 채수홍 교수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의 등장 이후 달라진 한국사회의 성문화와 사회문화적 변화를 다룬 연구결과가 남성과학자가 아닌 국내 고고문화인류학자를 통해 발표됐다.

전북대학교 고고문화인류학과 채수홍(蔡秀洪) 교수는 "발기부전환자와 비아그라를 통해 본 한국남성의 남성성=비아그라 효과에 대한 비판적 논점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논문을 최근 발표했다.

그간 비아그라의 의학적 효과를 다룬 남성과학 주도의 연구결과들은 수없이 많았지만 사회 문화적인 관점에서 비아그라가 한국사회에 끼친 영향을 다룬 학술자료들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이번에 발표된 채 교수의 논문은 의미를 갖는다.

이번 논문은 사회 문화적 관점에서 비아그라에 던져지는 세 가지 비판적인 견해로부터 출발, 이를 저자의 경험적 연구를 통해 재조명해 본 후 이를 통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첫번째 비판=비아그라 성공은 질환을 재구성해서 환자수를 늘렸기 때문?

"비아그라의 성공이 발기부전의 개념을 재구성하여 환자수를 늘린 덕분"이라는 첫 번째 비판에 대해 저자는 "비아그라"가 가진 복용의 편의성과 자연스러운 발기유발 과정이 의사와의 상담을 꺼려하거나 신뢰하지 않던 과거 발기부전환자들을 노출시키고 병원으로 끌어들이는 계기를 제공했다고 보는 것이 더 설득력 있다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처음 개업한 후 발기부전환자가 오면 그냥 집에 보내거나 정신과로 보냈다”는 어느 비뇨기과 개원의의 증언과 "중풍으로 지팡이를 짚은 70대 노인이 병원을 방문해서 비아그라를 처방 받고 돌아가는 모습, 매달 빠지지 않고 비아그라를10여 개씩 처방 받아 가는 80대 할아버지의 사례"를 통해 “(이런 식의 비난은) 퍼즐의 한 조각만을 보면서 전체를 말하고 있는 것”이라는 남성과학자들의 지적을 근거 있게 뒷받침하고 있다.

▲두 번째 비판=비아그라는 성기·삽입 중심의 성에 대한 인식을 재생산했다?

비아그라는 성에 대한 남성중심의 시각을 재생산하며 특히 "음경의 성능"과 "남성의 성적 정체성"을 동일시하는 성기·삽입 중심의 시각을 재생산한다는 비판과 관련해 저자는 이러한 시각은 반드시 옳다고 볼 수 없으며 오히려 한국사회에서 비아그라는 남성성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보조수단임이 분명하다는 의견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한국의 발기부전 남성에게 "온전한 남성성"은 기능의 회복만이 아니라 인공적인 수단에 의존하지 않는 "자연적 발기"를 전제로 한다는 점을 제시하며 비아그라 복용남성들 역시 운동이나 식이요법 등을 병행하면서 자연스런 남성성을 찾으려는 노력을 계속해나간다는 점을 감안할 때 비아그라 효과가 성기 중심의 성 관념을 확대재생산하고 남성중심의 문화를 공고히 할 것이라는 우려는 단순한 추론에 불과하다고 결론짓는다.

▲세 번째 비판=비아그라는 "남성의 생리 문화적 특성"을 강조하며 여성의 시각과 느낌을 단순화시켰다?

마지막으로 "발기부전과 비아그라에 대한 여성의 인식은 남성과 많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비아그라는 남성의 생리 문화적 특성을 강조하면서 여성의 시각과 느낌을 단순화시킨다"는 비판과 관련해 여성의 시각과 경험을 남성중심의 지배관념에 대한 비판자의 시각으로 보면서 여성이 남성과 다르다는 점만을 부각시키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보았다.

채 교수는 오히려 한국사회의 문화적 맥락에서 남녀가 공유하고 있는 남성성에 대한 관념이 많다는 것과 여성이 남성과의 관계를 상호의존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이 관계를 평화롭게 유지하기 위해 전략적 타협을 한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여성도 성 파트너의 건강을 위해 좋다고 알려진 건강식품이나 한약을 구하고 식단에도 신경을 쓰며 남성의 발기부전을 인식했을 때 노골적이진 않지만 "어디 아픈지 병원에 가보라"는 식으로 넌지시 언급하며 의사 표현을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즉 여성도 "건강한" 남성성은 "자연스러운" 성적기능을 발휘함으로써 유지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그 결과 비아그라는 훼손된 남성성을 인공적으로 복원하는 보조적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채수홍 교수는 “비아그라는 생리학적으로 보면 혈액순환에 작용해서 발기를 돕는 약일 뿐이지만 다른 어떤 약보다도 한국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이유는 성적 욕망이 생리적인 것 못지 않게 사회 문화적이기 때문”이라고 전하고 “이번 논문은 비아그라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다양한 담론들을 고찰해 봄으로써 오늘날 한국인들의 성에 대한 인식뿐만 아니라 나아가 사회현상의 거대한 변화까지도 살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는 지난 2004년 봄부터 2005년 말까지 약 1년 반에 걸쳐 진행됐으며 발기부전 역학조사를 포함한 다양한 관련 논문과 책자 등이 참조됐다. 무엇보다도 발기부전 환자는 물론 환자의 성 파트너를 포함한 약 190여 명의 사례를 확보, 이들 환자사례에 대한 직·간접조사가 실시됐으며 특히 이중 약 60여 사례는 심층면담을 통해 이루어져 더욱 의미가 있다.

채 교수의 이번 논문은 최근 발간된 한국문화인류학회지 "한국문화인류학"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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