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대한병원협회 창립 60년 발자취(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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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대한병원협회 창립 60년 발자취(39)
  • 오민호 기자
  • 승인 2020.05.29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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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분업 논쟁과 병원계의 대응

의약분업 실시시기 연기 요청

환자에게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된 의약분업은 의료수요자의 불편 등으로 인해 시행되지 못했다. 그러나 1993년 ‘약사법’ 개정으로 1999년 7월 7일 이전에 의약분업을 실시하도록 한 규정에 따라 1998년에 도입이 추진됐다.

대한병원협회는 1998년 8월 20일 병원진료업무 개선위원회를 열어 의약분업 시행에 대해 중점적으로 논의했다. 회의에서는 외국처럼 대형약국이 산재돼 있지 못한 국내상황에서 원내처방을 제한할 경우 중소약국들이 대형병원들의 처방약을 갖추기에 한계가 있어 국민의 불편이 가중될 뿐 아니라 주사제를 포함할 경우 의료기관과 약국간의 이동으로 인한 불편도 심할 것이라는 등의 문제점을 제기했다. 또 동일제품이라 하더라도 카피제품이 많아 상품명에 따라 효능·흡수·민감도에 차이가 있어 일반명 처방은 환자에게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의사의 임상경험을 고려한 상품명 처방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마침내 대한병원협회는 의약분업에 있어 외래환자의 원내처방 제한, 일반명 처방 및 주사제의 의약분업대상 포함은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의료개혁위원회가 제안한 안과도 위배되므로 이를 수용할 것을 고집한다면 의료계로서도 의약분업을 수용할 수 없음을 천명하기로 했다.

의약분업 대책회의 및 전국병원대표자회의(1998년 8월 24일)
의약분업 대책회의 및 전국병원대표자회의(1998년 8월 24일)

이즈음, 복지부 주재로 열린 의약분업추진위원회에서 분업대상 의약품은 주사제를 제외한 모든 전문의약품으로 하고 의료법에 외래환자에 대한 원외처방전 발행을 의무화하되 의료법상 조제실을 두어야 하는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의 경우 원내·외 구분 없는 양식으로 처방전을 발행해 원내·외 조제의 선택을 환자에게 일임키로 결정했다. 또 처방전에 기재하는 의약품은 일반명 또는 상품명으로 하되 상품명으로 기재하고 대체불가를 표시하는 경우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을 거친 의약품으로 복지부장관이 고시한 의약품은 대체가능하고 그 밖의 의약품은 의사의 동의를 받아 대체 투약하도록 했다.

이와 관련해 대한병원협회는 다음과 같은 입장을 취했다.

첫째, 병원 외래환자에 대한 원외처방전 강제화는 절대 수용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 처방전 기재 의약품의 선정권은 환자치료의 최종책임자인 의사에게 주어져야 한다.

셋째, 주사제는 반드시 의약분업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낸다.

11월 들어 대한병원협회는 정부가 의약분업의 달성을 위해 의료전달체계 확립과 의약품 유통 선진화를 병행 추진하면서 그 중 의약분업에 따른 소요재정 확보를 위해 변칙적으로 물류조합을 통해 진료비 지금을 강제토록 하자 이의 법제화를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12월에 대한병원협회는 청와대 사회복지수석과 가진 대담에서 의약분업 실시시기 연기를 요청했다. 이 건의에서 대한병원협회는 충분한 시범사업을 통해 의약분업 시행에 따른 착오를 최소화하고 의약분업추진협의회가 본연의 기능인 의약분업 성공을 위한 사전준비에 충실하도록 운용돼야 하지만 그 운용방식이 전체 의료제도를 개혁하겠다는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어 파행이 우려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의약분업 합의에 대한병원협회 배제

1999년 1월 의약분업 실시에 대한 공청회에서 대한병원협회는 의약분업은 일본과 같이 점진적으로 시행하되 의료전달체계를 의약분업에 함께 적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병원에서의 외래약국 폐쇄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취했다.

2월에는 의약분업과 관련해 대한병원협회는 당시 새정치국민회의에 건의서를 제출했다.

건의서는 첫째, 의약분업은 처방과 조제의 전문성 및 책임성을 기하자는 데 그 취지가 있음을 명심해 의약분업은 직능분리방식을 채택해야 한다.

둘째, 처방전 기재 의약품의 선정권은 환자치료의 최종책임자인 의사에게 주어져야 한다.

셋째, 주사제는 반드시 의약분업 대상에서 제외돼야 한다.

넷째, 의사의 임의처방 조제가 불가능하도록 전문·일반의약품의 심도있는 검토를 거쳐 재분류돼야 한다.

다섯째, 일부에서 주장하는 병원의 외래약국 폐쇄는 세계적으로 환자의 경제적 부담 감소와 편의도모를 위해 시행되고 있는 1일 진료, 외래수술 등 외래 진료영역 화대 추세를 위축시켜 환자부담을 증가시키게 될 것이다.

여섯째, 의약분업 시행 시 약화사고에 대한 법적·제도적 장치가 완비돼야 한다.

일곱째, 의약분업을 통해 강제하고자 하는 원외 처방전 발행유도, 의료전달체계 확립, 의약품 유통개혁 방안 등은 의료제도의 틀 속에서 심도있게 검토해 개선방안을 도출해야 한다.

의약분업은 1999년 3월 2일 대한병원협회가 배제된 채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약사회가 합의문에 서명함으로써 복지부가 이를 빌미로 제도적인 시행을 개시했다. 대한병원협회는 그 즉시 협회 입장이 묵살된 채 만들어진 합의문인 만큼 의료계 대표성 있는 의견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또한 당시 김찬우 국회보건복지위원장이 특정정당의 정책을 지지하고 있었다는 것도 문제 삼았다.

의사협회는 합의문 서명이 의약분업을 연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하고 향후 의약분업 중 병원과 관련된 사항에 대해서는 대한병원협회와 긴밀히 협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4월 들어서 대한병원협회는 의약분업대책위원회를 열어 의약분업에 대한 협회 의견을 언론 등을 통해 홍보하고 의약분업에 대해 의사협회와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개최를 요청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5월 7일 열리는 정기총회에서 결의문을 채택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1999년도 정기총회에서는 ‘병원경영이 정상화되어 환자에게 적정한 진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의료보험수가의 조속한 현실화를 촉구한다.’, ‘의약분업 정책이 처방은 의사, 조제는 약사가 하는 기본적인 원칙하에 국민건강 향상과 환자편의가 최우선 목적이 돼야 함을 천명하며 이를 위해 병원 외래환자에 대한 약품조제의 선택권은 환자에게 일임할 것을 촉구한다.’, ‘2000년 1월부터 시행되는 국민건강보험법이 목적한 바대로 실효를 거둘 수 있도록 협조하되 병원계 현실을 적극 반영해 줄 것을 촉구한다.’ 등의 내용을 담은 결의문을 채택했다.

1999년 5월 10일 대한의사협회 유성희 회장과 대한약사회 김희중 회장은 ‘의약분업 실현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에서 제안한 의약분업 합의서에 전격 서명하고 정부와 국회에 합의서대로 추진해 줄 것을 촉구했다.

국민을 위한 올바른 의약분업 쟁취 서명운동(1999년 10월 25일)
국민을 위한 올바른 의약분업 쟁취 서명운동(1999년 10월 25일)

의약분업제도 시행 문제의 지적

이에 대해 대한병원협회는 병원의 외래약국 폐쇄가 의약분업의 근본정신에 위배된다는 점, 병원의 외래약국 폐쇄는 환자의 불편한 가중시킨다는 점. 주사제는 반드시 의약분업 대상에서 제외돼야 한다는 점, 환자치료를 위한 의약품의 선정권은 담당의사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점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의약분업이 본래의 정책 목표와 달리 왜곡될 경우 결코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환자편의 및 국민건강 수호를 위해 가일층 노력할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5월 11일 긴급전국병원장회의가 소집돼 의사협회와 약사회의 합의문은 의약분업의 기본원칙에 위배된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전체 의사 중 60%를 점하는 병원의사의 의견이 무시된 반쪽의 합의문이므로 의약분업의 기본에 충실할 것과 의약분업제도 정착을 위해 국민 불편을 최소화하도록 추진하되 정부의 제4차 의약분업추진협의회안을 근간으로 조속히 입법화하여 줄 것을 청와대·국무총리실·복지부·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등에 건의키로 했다.

5월 18일에는 대한병원협회와 의사협회가 의약분업 관련 회장단 및 대책위원회 연석회의를 가졌다. 이 회의에서 대한병원협회는 의협-약사회 합의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의사협회는 개원의 단체이고 대한병원협회는 기관단체’라는 데 있으며 병원의 외래약국 폐쇄 운운하면서 대한병원협회를 철저히 배제하려고 했던 의도를 알 수 없다며 그 진의를 물었다. 결과적으로 의약분업에 대한 의협의 합의는 개원의의 압력에 의한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으며 병원급 의료기관 원장들은 이 합의문에 상당한 불만을 갖고 있는 만큼 그 책임은 의협에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울러 대한병원협회는 의사협회가 약사회·시민단체와 합의한 의약분업에 대해 다시 협상해 줄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그리고 5월 27일 임시총회를 열어 국민 불편을 초래하는 의약분업안에 대한 공개 질의와 함께 100만 명 서명운동을 실시할 것과 의협 회비의 병원차원 징수 협조를 거부하는 운동을 전개하는 것 등을 결의했다. 의사협회-약사회 간 합의에 대해 대한병원협회가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이어 병원행정관리자협의회, 임상간호사회, 심사간호사회, 방사선사협회, 임상병리사협회, 의무기록협회, 병원홍보협의회 등과 연석회의를 가졌다. 이들과의 회의에서 합의문이 의약분업의 기본원칙조차 무시하고 있으므로 성공적인 의약분업 정착을 위해서는 진료는 의사, 조제는 약사라는 기본원칙에 충실하고 국민의 불편과 혼란을 최소화하도록 하는 결의문을 채택해 청와대와 국무총리실, 복지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등에 보내기로 했다.

또 의약분업실행위원회 역할 및 위원조정에 관해 건의하기도 했다. 이후 의약분업대책위원회, 의약분업실행위원회와 이 위원회 보건정책분과위원회(3차), 의료보험분과위원회, 약품관리분과위원회 등에 참석해 의약분업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그 개선책을 주장했다.

8월 23일 대한병원협회는 의사협회와 공동으로 의약분업 시행방안에 대한 의료계 의견을 제시했다. 여기에서 대한병원협회 등은 시민단체의 합의안 중 개선의 필요가 있는 사항으로서 주사제 포함문제, 대체조제에 관한 문제, 일반의약품 판매방식, 약효동등성 확보문제, 의사가 직접조제할 수 있는 범위 조정의 선결 등을 꼽았다. 의약분업 시행을 위한 사전조치 사항으로서 의약품 분류 철저, 보건소 등 보건의료기관의 기능 재정립, 처방료의 현실화, 재정부담 대책, 사후관리체계의 확립, 약화사고 시 책임 한계 대책, 의료전달체계 개선 등을 들면서 의료계는 의약분업의 시행 주체인 의약분업실행위원회에서 의료계의 의견이 관철되도록 공동으로 노력할 것을 촉구했다. 또 정부의 의약분업방안 수립, 국회의 입법추진 등 의약분업 실행방안 수립에 의료계 입장이 관철되도록 적극 노력할 것을 천명했다.

이후에도 대한병원협회는 청와대를 방문해 의약분업 현안을 설명했고 의약분업과 관련한 서명운동을 전개하기로 했으며 의약분업대책위원회, 의약분업 관련 복지부장관 간담회 등을 열어 추진되고 있는 의약분업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을 촉구했다.

대한병원협회는 10월 25일부터 11월 13일까지 올바른 의약분업 쟁취 서명운동을 전개해 120만 2243명의 서명을 받은 후 11월 23일 ‘약사법 개정 법률(안) 수정에 관한 청원서’를 국회의장에게 제출했다. 같은 날 대한병원협회는 의사협회와 공동으로 ‘올바른 의약분업 쟁취를 위한 범 의료계 규탄대회’를 개최해 결의문을 채택했으며 원내·외 조제환자 선택권 보장 등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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