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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이 필수공익사업에 포함된 것에 보람"
대한병원협회 창립 60주년 기념 인터뷰
한두진 제26·27·28대 회장(1992.05.07-1998.05.14)
2019년 07월 10일 (수) 17:49:38 윤종원 기자 yjw@kha.or.kr

“본인이 1992년 제26대 대한병원협회 회장으로 추대된 것은 협회 감사로서 7년 그리고 백낙환 회장 재임 시 홍보이사로 4년, 그 후 노경병 회장 재임 시 4년간 수석 부회장을 역임했던 오랜 경륜이 인정됐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대한병원협회 창립 60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한두진 명예회장(92세)은 지난 30여년 가까운 세월의 일을 또렷이 기억했다.

추대방식으로 회장에 선출된 한 명예회장은 3번 연임으로 6년이란 세월을 회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항상 막중한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오로지 우리 병원계와 대한병원협회의 발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한 명예회장은 “대한병원협회 임원진의 적극적인 협조와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주위의 강력한 권유로 본의 아니게 세 번째 회장직을 맡게 된 한 명예회장은 대한병원협회의 오랜 전통을 이어주고 싶은 마음으로 마지막 임기 2년은 당시 수석부회장이었던 노관택 부회장에게 회장의 전권을 거의 다 위임했었다고 한다.

대내외적으로 차기회장으로서의 자질을 갖추도록 했고, 그 결과 노관택 부회장은 무난히 제29대 회장으로 추대됐다.

한 명예회장은 추대형식의 대한병원협회장 선출방식이 경선으로 바뀐 데 대해 아쉬워했다.

"어느 단체나 협회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려면 사무국의 정보 및 자료수집, 인맥관리, 건의서 작성 등 행정적인 뒷받침이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당시 사무국은 성익제 사무총장을 비롯해 직원들이 사명감을 갖고 직무를 수행해 주었고, 특히 대정부· 대국회 기타 관련기관과의 유기적인 '인적 네트워크'를 유지하면서 그때그때 필요한 병원정책과 관련된 정보를 입수해 회장단이 적시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즉각적인 대응을 할 수 있도록 행정적인 뒷받침을 해 주었기 때문에 본인이 회장으로 재임한 동안 거의 중요한 병원관련정책은 놓치는 일이 없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대내외적으로 일관된 대한병원협회 회원들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대화 창구를 마련해 상호 협조할 수 있어 사무국의 역할이 참으로 중요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한 명예회장은 집행진과 함께 회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사무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재임기간 동안 이룬 업적 가운데 노동법상의 병원을 필수공익사업체로 규정한 것에 대해 큰 자부심을 보였다.

“병원노사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을 당시, 신노동법 개정안에는 병원이 필수공익사업이 아닌 것으로 규정되어 있어 당시 노동관계위원장이었던 현승종 전 국무총리로부터 ‘이 문제는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답변을 들었고 이어 자민련 김종필 총재의 지지를 확보했지요. 회장단 모두가 총동원이 되어 노력한 결과였지요. 그런데 야당 정책평의회 의장인 이해찬 의원이 ‘외국의 노동법에는 병원이 필수공익사업에 들어있지 않다’고 반대 입장을 보이자 우리는 ‘외국병원에서는 우리처럼 불법파업을 하지 않는다’ 고 반박해 결국 3당 합의로 신노동법상 병원이 필수 공익사업의 범위에 포함됐지요.”

한 명예회장은 정보화시대로 넘어가는 급격한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병원협회 전산화 구축에도 힘을 쏟았다. 

“협회 업무의 효율화를 증진하기 위해 삼보컴퓨터의 이용택 회장을 비롯해 관련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다른 의료단체보다 몇 년 앞서 공개입찰방식으로 당시 대한병원협회의 예산규모로는 꽤 많은 거금을 들어 사무국에 최첨단 전산시스템을 들여 놓았습니다. 이때 일부 위원들이 ‘전산용량이 너무 큰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으나, 장기적인 안목에서 당초 계획대로 추진했습니다. 도입 후 불과 몇 년이 만에 다시 용량을 늘려야 하는 상황이 왔기 때문에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오히려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명예회장의 활약은 세계무대에서도 빛을 발했다.
   
“아시아병원연맹(AHF)은 1993년 당시 우리나라와 일본,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5개국으로 구성돼 있었는데 본인이 AHF 회장으로 취임해 회원국 간의 학술교류와 친목도모를 위해 회세 확장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노력한 결과 회원국을 아시아 11개국으로 확장시킬 수 있었습니다.”1995년에는 'AHF Journal을 발간하는 한편, 싱가포르에서 뉴스레터를 발행했으며 1996년에는 쿠알라룸푸르에서 제1회 AHF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것이 기폭제가 되어 그 후 매 2년미다 학술대화를 갖게 됐으며, 국제병원연맹에 대해 아시아병원연맹이 처음으로 '아시아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

오늘의 AHF를 있게 한 한 명예회장은 국제병원연맹(IHF : International Hospital Federation)발전에도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1993년 국제병원연맹 총회에서 투표로 본인이 운영이사에 선출되었고, 1996년에 국제병원연맹 부회장, 1997년에 부회장 겸 재무담당이사로 위촉되어 최고의결기구인 '5인 집행위원회'의 일원으로 직접 참여하면서 연간 4~5회에 걸쳐 열린 Tele Conference를 통해 IHF의 주요 정책이나 사업계획 등을 심의 의결했습니다. 이러한 5인 집행위원회의 결정은 만장일치제였기 때문에 정정당당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병원운영에 ‘Nepotism(친족등용, 족벌주의)’을 배제하자는 조항이 심의안건으로 상정되었을 때 본인이 동양의 정서를 고려해 반대하여 부결시키기도 했어요, 만약 그대로 채택됐더라면 아시아의 병원 가운데 30% 이상이 본 조항에 저촉되었을 것입니다.”

이어 한 명예회장은 그동안 IHF에서 이루어진 그와 같은 활동이 기반이 되어 우리나라에 대한 인식이 높게 평가됨으로써 2007년에는 드디어 국제병원연맹 총회를 우리나라에서 개최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견해라면서 그러나 최근에 와서 IHF에 대한 참여도가 저조하여 영향력이 감소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했다.

재임 시 업적 가운데 하나인 자동차보험수가의 의보수가 적용 저지와 관련해서는 “재벌들이 운영하는 손보사들이 강력한 재정을 기반으로 단합하여 정부 관련부처를 통해 자동차사고환자에게 적용하는 의료수가를 의료보험 수가와 동일하게 책정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며 “이것도 역시 대한병원협회의 임직원이 총동원되어 백방으로 관계당국을 방문해 호소하기를 ‘자동자보험은 이익을 추구하는 영리보험이고 의료보험은 국가가 관장하는 공익보험인데 동일한 수가를 적용하려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을 펴 우리의 주장을 관철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의료법인 병원 지방세 부과 저지도 한 명예회장이 꼽는 업적 중의 하나다.

“당시 내무부에서 의료법인 병원들을 대상으로 지방세를 부과하려는 입법예고를 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회장단 전원이 국무총리실을 비롯해 내무부 장관에게 ‘의료법인 병원은 의료법상 비영리법인으로 규정돼 있으며 이익배당이 불가능하게 돼 있으므로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일반법인과 동일하게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를 설명한 결과, 내무부가 지방세를 부과하려는 입법예고를 취소하기도 했습니다.”

한 명예회장은 의료법인병원들에 대한 지방세 부과를 저지했던 당시의 성과를 말하면서 이어 의료보험 수가 조정의 일화도 들려줬다. 

“연례행사처럼 정부당국이 물가상승폭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의료수가를 통제해 왔었기 때문에 당시 집행부는 골머리를 앓고 있었습니다. 그 때 조순 전 부총리가 자신의 재임기간 동안 병원경영이 악화되면 결국 환자진료의 질과 서비스가 저하될 수밖에 없음을 인지하고 수가를 한 해 두 번에 걸쳐 두 자릿수로 조정해 준 것은 의료보험 역사상 초유의 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본인이 회장에 재임하고 있는 동안 여러 명의 복지부장관을 거쳤는데 이제는 고인이 되셨지만 당시 안필준 장관이 병원들의 어려운 사정을 아시고 약속대로 이임 직전에 의보수가를 5% 인상해 준 것이 뚜렷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이같은 화려한 업적 속에서도 한 명예회장에게는 아픈 기억이 하나 있다.

“세 번째 협회장으로 취임한 다음 주로 대외적인 업무에만 치중하고 있었는데 내 임기 말을 노리고 있던 사무국 경리담당 직원이 협회 운영자금의 일부와 회장 명의로 정기예금 돼 있던 협회 공금을 횡령하고 해외로 도피하는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회원병원에게 송구스럽고 본인으로서도 일생을 통해 참으로 불명예스런 일이였기 때문에 나는 사태수습을 위해 당시 치안본부장을 맡고 있던 고교 후배를 동원해 관할경찰서장을 찾아가고 법률고문을 면담하는 등 동분서주하면서 최선의 노력을 경주했으나 범인은 이미 해외로 도피한 다음이라 회장 재임기간 중 사건의 마무리를 지을 수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사건의 뒷수습을 후임회장에게 인계해 주고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지요. 다만 공금횡령직원이 해외도피 직전 서류상 이혼한 본처명의로 이전된 아파트와 예금당시 신한은행지점장이 직접 본인의 사무실에서 인감날인과 함께 인수한 고액(4억 원)의 정기예금을 회장의 인감날인 없이 범인에게 지급했기 때문에 이를 환수하는 청구소송을 냈고 당시 회장으로서 도의적인 책임감 때문에 변호사 비용을 본인이 모두 부담했습니다. 오랜 재판 끝에 승소해 4억원을 회수하게 된 것은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병원계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1998년 회장을 마치고 1999년 코펜하겐에서 마지막 국제 업무까지 마친 후 병원계를 떠난지 20년이 지났다”며 “모두 열심히 일하는 것 같아 뭐라 할 말이 없다”고 겸손해했다. 

한 명예회장은 1956년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미국 홀리네임병원, 추르스테일병원, 디에스병원 등에서 근무했으며, 영국 위간시 라이팅턴병원 정형외과 연구원으로 재직했었다. 1963년 귀국해 서울적십자병원 정형외과 과장을 거쳐 1971년부터 2003년까지 한국병원 병원장을 지냈다.
국제적으로는 제12대 아시아병원연명 회장, 국제병원연맹 부회장 및 재무위원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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