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줄 위의 종달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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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줄 위의 종달새
  • 윤종원
  • 승인 2007.05.08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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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 수상작

공산정권이 통치하던 체코(당시에는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으로 통합된 상태). 요리사 파벨(바츨라프 네카르시)은 종교적인 이유로 토요일 근무를 거부해 해고된 뒤 폐품 처리장에서 강제노동을 하게 된다.

폐품 처리장 한 켠에는 체코를 탈출하려다 붙잡혀 죄수가 된 여성들이 일하고 있다. 경비원은 이들이 어울리지 못하도록 막지만 파벨은 여성 죄수인 이트카(이트카 젤레노호르스카)와 사랑에 빠진다. 둘은 감시를 피해 만남을 이어가고 결혼까지 약속한다.

이리 멘젤 감독의 1969년작 "줄 위의 종달새(Larks on a String)"는 러브 스토리다.

체제가 만들어놓은 억압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인간의 본성을 사랑 얘기를 중심으로 풀어냈다.

"가까이서 본 기차"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멘젤 영화의 특징은 체코라는 공간적인 배경과 떼려야 뗄 수 없다는 것. 체코의 격동기를 살아 온 이 거장은 코미디로, 러브 스토리로 체코인을 위로하며 동시에 체제를 비판하고 풍자한다.

"줄 위의 종달새"도 예외는 아니다. 체코 민주화운동 "프라하의 봄" 이듬해인 1969년에 완성된 이 영화는 소련 침공 이후 다시 강화된 공산정권에 의해 개봉과 동시에 상영이 금지됐다. 이후 20년 만인 1989년 체코에서 재개봉됐고, 1990년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최고 영예인 황금곰상에 뽑혔다.

멘젤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현재성"이다. 40여 년 전의 작품이지만 지금 관객이 보기에 전혀 거부감이 없다. 활어처럼 싱싱하게 살아 숨쉰다. "고전"인 셈이다. 체코라는 정치적 특수성을 담고는 있지만 전 세계인이 공감하는 휴머니즘을 담아내는 그의 섬세하고 세련된 연출력은 현대인에게도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영화 속에 민족성까지 담는 그의 연출력은 보편성을 무기로 체코와 체코인을 아름다운 모습으로 세계에 소개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멘젤 감독은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유능한 외교관이다.

"가까이선 본 기차"에서도 그랬지만 "줄 위의 종달새" 또한 소박하다. 그렇지만 이 작은 영화는 어느 영화보다 지적이고 따뜻하다.

멘젤 감독은 폐품 처리장에서 강제 노동하는 대학교수, 색소폰 연주자, 요리사 등이 뿜어내는 코믹한 대사를 통해 개인의 다양성을 억압하고 규격화된 인간을 강요하는 공산정권을 유려하게 야유하고 풍자한다. 폐품 처리장은 공산주의가 요구하는 인간으로 개조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렇지만 살며시 마주잡는 노동자와 여성 죄수의 손, 함께 불을 쬐는 모습, 파벨과 이트카를 위한 이들의 배려 등은 인간의 보편적 정서를 상징적으로 담아낸다.

17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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