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해부용 시신 부족으로 의사 양성 차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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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해부용 시신 부족으로 의사 양성 차질
  • 윤종원
  • 승인 2005.12.13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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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해부 사회적 관용 英의학 발전에 기여
18세기 천연두 백신 개발, 산부인과 및 치과시술, 성병 치료 등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뤄내 근대 의학 발전을 선도했던 영국이 해부용 시신 부족으로 의사 양성이 중대 애로에 봉착했다고 영국의 BBC 방송이 12일 보도했다.

방송에 따르면 잉글랜드와 웨일스 지방의 해부용 시신 기증자는 지난 5년간 670명에서 600명으로 줄어들었다.

이로 인해 일부 해부 관련 학과가 폐지됐고 상당수의 의과대학 학생들이 인공시신이나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의학을 배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해부용 시신 부족 현상의 원인은 ▲의대생 증가 ▲시신 기증을 기피하게 하는 TV 프로그램 ▲국립 의료원의 어린이 장기 불법적출 스캔들 등에 기인하는 것으로 지적됐다.

영국은 2000년 이래 8개 의과대학이 문을 열었고 15개 해부학 석사과정이 개설됐다. 의대생이 폭증한 것이다.

여기에다 민영 TV방송인 `채널 4"가 독일 의사 군터 본 하겐스 박사의 시신 해부 장면을 시리즈로 방영한 것이 시신 기증 거부감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

장기가 적출되고 뼈와 살이 분리돼 해부 표본이 되는 끔찍한 장면에 시청자들이 큰 충격을 받았고 이는 시신 기증 거부로 이어지게 됐다는 분석이다.

영국 보건부는 "국립의료원이 사망한 어린이의 장기를 불법으로 적출한 사건이 발생한 데 이어 시신 해부 장면이 여과없이 공중파를 통해 방영돼 시신 기증에 대한 공포감이 증폭되고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영국 보건부 대변인은 "영국은 역사적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의사를 양성해 의학발전을 선도했지만 지금은 해부용 시신 부족으로 더 이상 명성을 유지할 길이 없게 됐다"며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의학도들은 `최상의 교과서"인 시신 없이 공부를 해야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영국의 의학 발전은 시신 해부에 대한 사회적 관용에 힘입은 바가 크다.

18세기 영국 법은 사형수의 시신에 한해서만 해부를 허용했지만 도굴범들이 연고가 없는 시신을 파내 의사들에게 해부용으로 판매하는 것을 사실상 묵인했다.

도굴범으로부터 산 시신으로 의학 연구를 하다 적발된 의사들에게는 10파운드 정도의 벌금이 부과되는데 그쳤고 이런 사회적 관용을 통해 영국은 의학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시신 도굴이 돈벌이가 되면서 아일랜드 출신의 친구 사이인 윌리엄 버크와 윌리엄 헤어가 16차례의 연쇄살인 행각을 벌여 시신을 팔아치운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인체 해부가 의학 발전에 기여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영국은 윌리엄 버크와 헤어 사건을 계기로 관련 법률을 개정해 사형수가 아니더라도 연고가 없는 시신에 대해서는 의학 연구용 사용을 허용했다. 하지만 여기에도 오로지 해부용으로만 사용할 수 있다는 제한이 있었다.

의학 연구용 시신 부족 현상이 심화하면서 영국은 기증자나 무연고 시신을 해부용으로만 사용할 수 있도록 제한한 `해부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BBC는 보도했다.

지금까지는 성형수술, 장기절제, 이식수술 등 구체적인 수술기법 향상을 위한 훈련은 동물의 사체나 인공 인체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지만 앞으로는 수술기술 향상을 위한 시신 사용도 허용한다는 것이 해부법 개정의 취지다.

해부법 개정안을 제출한 스코틀랜드 자치정부의 말콤 키숄 보건부 차관은 "때늦은 감이 있지만 수술기술 향상을 위한 훈련에도 시신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제도를 현대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의학계도 "의학 기술을 앞당길 중대한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며 적극 환영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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