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개와 고양이
상태바
영화-개와 고양이
  • 윤종원
  • 승인 2005.08.24 08: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갓 스무살을 넘긴 듯한 처녀 둘이 마당을 향한 미닫이문에 나란히 걸터앉아 있다. 한 처녀는 발톱을 깎고 다른 한 처녀는 홍차를 마신다. 평화로운 겨울 아침 풍경. 영화는 이 장면에 다른 설명은 전혀 붙이지 않는다. 대신 긴 여백을 두고 관객에게 화면의 느낌에 나름의 상상력을 덧붙이라고 조용히 이야기한다. 그럼 관객은 생각한다. "쟤네 이제 안 싸우려나보다" 혹은 "저 홍차 맛있겠다".

2004년 제9회 부산국제영화제 "새로운 물결" 섹션에서 상영됐던 일본 영화 "개와 고양이"는 제목 그대로 개와 고양이처럼 으르렁거리지만 또 어느 순간에는 한데 어울려있는 모습을 발견하게되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그렸다.

제목부터 우마 서먼 주연의 "개와 고양이에 관한 진실"에 자연스레 오버랩되는 영화는 검은 뿔테 안경에 털털한 요코와 천상 여자인 귀여운 스즈의 오랜 세월을 둔 우정과 사랑, 질투, 화해를 그렸다. 유치원부터 지금껏 오랜시간을 함께 성장했지만 둘은 관계가 좋을 수 없다. 늘 한 남자를 바라보는데 그 남자는 항상 스즈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 어떤 유럽영화보다도 설명이 없다. 일본영화 특유의 간결함을 넘어 게으르다 싶을만큼 관객에게 열려있다. 감독은 화면에 요코와 스즈를 던져놓고 관조할 뿐이다. 지극히 일상적인 상황들을 펼쳐놓으면서 특별한 굴곡을 넣지 않았기 때문에 배신감이 폭발해도 그건 겨울날 안경에 서리는 김처럼 잠시 후면 없어진다. 친구를 열받게 한 뒤에 천연덕스럽게 그가 만든 케이크를 맛있게 먹는 것 역시 같은 맥락.

영화는 이런식으로 20대 초반 여성들을 조명하면서 와중에 미래에 대한 뚜렷한 고민을 하지 않는 일본 젊은이들의 모습도 녹여놓았다. 그저 하루하루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게으른 감독의 시선과 호흡을 같이 한다. 그 때문에 대단히 깔끔하다는 인상은 받을 수 있지만 깊이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영화보다는 TV 단막극에 어울리는 내용.

12세 관람가, 9월10일 개봉.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