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당법 시행으로 응급의료 붕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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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당법 시행으로 응급의료 붕괴된다
  • 병원신문
  • 승인 2012.08.10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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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여건을 무시한 충족할 수 없는 규정이다
지방 응급의료기관들 지정서 반납 등 움직임

1차응급의료를 담당하고 있는 지역응급의료기관 상당수가 운영여건 상 응급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 중 '응급실 전문의 당직제(응당법)' 규정을 맞출 수 없다며 지정서를 반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 규정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병원을 그만두겠다는 의사까지 속출하고 있어 전문의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방병원의 비애가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상황은 군단위 지역응급의료기관은 물론 지방 시 소재 지역응급의료기관과 공공의료기관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어서 우리나라 응급의료시스템을 적어도 현 수준 이하로 낙후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이번 개정안 가운데 응당법은 반드시 개선돼야 할 것이란 목소리가 높다.

병원신문 종합취재팀은 응급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이 발효된 8월5일 이후 전국을 동·서·북부지역 3개 권역으로 나눠 군 단위와 시 단위 및 공공의료원의 지역응급의료기관을 방문 취재했다. 그 결과 개정안의 수정 없이는 우리나라 응급의료시스템이 자칫 붕괴될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응급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 계도기간이 끝나는 11월5일 이후 농어촌 취약지역 인근 지역응급의료센터는 마비가 될 겁니다.”

인구 5만여 명 규모의 군 소재 한 지역응급의료기관 수간호사 A 씨는 “지금도 중환자의 지역응급의료센터 의뢰·회송이 어려운 판국에 개정된 응급의료법 시행규칙이 적용되면서 지역응급의료기관들이 지정서를 반납하면 우리나라 응급의료체계는 완전히 허물어져 아수라장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중증 응급환자를 돌보는 데도 빠듯한 지역응급의료센터에 경증 응급환자까지 몰린다면 정작 촌각을 다투는 중증환자들을 돌볼 겨를이 없을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군단위지역 병원에는 대부분 진료과별로 전문의가 1명 밖에 없어 개정안을 준수할 경우 365일 온콜 대기를 해야하는 상황이다. 또 이번 개정안은 온콜에 응하지 않을 경우 의사에 대해 면허정지 처분까지 내릴 수 있어 가뜩이나 의사구인난에 시달리는 농어촌지역 병원들이 전문의를 놓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강원도 한 지역응급의료기관의 행정책임자 B씨는 “응급실 내원객 하루 평균 15∼20명에 불과한 상황에서 응급실에만 15∼17명의 직원을 유지하면서 적자를 감수하고 있다”며 “환자만 많다면 전문의를 더 확보해 정부 정책을 얼마든지 따라갈 수 있겠지만 진료과목당 전문의가 1명 뿐인 상황에서 365일 대기를 하라는 것은 불법을 저지르거나 지정서를 반납하라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8월8일부로 지역 보건소에 응급의료기관 지정서 반납을 통고하고 향후 지역주민들을 위해 응급실로만 운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B 씨는 “진료과장들이 면허정지처분에 가장 큰 부담을 느낀다”며 “의사들의 경우 주말이면 가족이 거주하는 대도시로 갔다가 월요일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365일 온콜해야 한다면 다 그만두고 도시로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환자를 돌볼 의사 없이 병원을 유지할 순 없으니 응급의료기관 지정서를 반납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우리야 어차피 적자를 감수하면서 병원을 운영하고 있어 문을 닫으면 그만이겠지만 지역주민들에게 전가될 고통을 감안하면 하루라도 빨리 개선책이 마련돼야 한다”며 “적어도 농어촌취약지역 소재 응급의료기관의 경우 도시와 구분해 규정을 완화해 줘야한다”고 말했다.

전문의가 여럿 있고, 또 의사의 생활권이 병원소재지에 있다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실정이 전혀 다른 농어촌취약지역을 같은 잣대로 규제하면 문을 닫으라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겠느냐고 그는 반문했다.

지역주민을 위해 적자는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지만 병원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 이번 개정안은 꼭 완화되길 바란다고 그는 거듭해서 덧붙였다.

그는 “6천만원의 응급의료자금과 병원에서 일부 돈을 보태 최근 응급실 환경을 크게 개선했다”며 “환자를 위해 응급실을 잘 지어놓았지만 운영을 할 수 없도록 규정을 강화하는 것은 '병 주고 약 주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경북의 시 지역 한 지역응급의료기관도 정부의 응당법이 졸속으로 처리됐다며 날카로운 비판을 가했다.

우선 복지부가 현장에서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올바른 기준조차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C 모 응급의학과장은 “응당법 관련 문의를 위해 복지부 담당관과 통화를 한 적이 있는데 '응급실에 전문의가 없는 병원도 있느냐?'고 반문하더라”며 “정부 정책을 입안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조차 지역병원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데 어떻게 제대로 된 규정이 나왔겠느냐”고 하소연했다.

그는 “지방에 있는 의료기관의 경우 운영상의 어려움과 인력수급 문제로 인해 응급의학전문의조차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각 과별로 당직전문의를 두라는 것은 무리한 규정”이라며 “응급의료의 질을 높이겠다는 복지부의 이번 정책은 어느 정도 규모와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지역응급의료센터 이상에 초점을 맞춰 기준을 정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역응급의료기관에까지 너무 엄격하고 현실을 도외시한 규정을 들이대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물리적인 낭비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게 C 과장의 시각이다.

그는 또 “우리 병원의 경우 응급실을 찾는 환자 중 비응급환자의 비율이 50∼70%를 차지하고 있다”며 “1차응급의료를 담당하고 있는 지역응급의료기관의 경우 비응급환자 비중이 높지만 개정 법안은 응급실에 가면 언제든 전문의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오해할 소지가 있어 정부 차원의 대국민홍보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C 과장은 “응급실은 그 병원의 얼굴이자 자존심이다. 정부의 졸속행정에 반발해 '응급실을 폐쇄하든지 해야 정부가 정신 차릴 것'이라는 의견이 주변에서 나온다는 것은 이 정책이 상당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며 “제대로 된 응급의료체계를 만들기 위해 정부는 정확하고 합리적인 기준을 제시해야 할 것이며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의료기관도 수준 높은 응급의료시스템 운영 의지를 굳건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응당법과 관련해 난색을 표하고 있는 곳은 비단 민간의료기관에만 국한돼 있지 않다. 공공의료기관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중부권 공공의료기관인 D 의료원 E 원장은 현재 지역응급의료기관으로 지정받아 운영하고 있지만 진료권이 도농복합 3개 시군에 걸쳐 30만에 달해 지역응급의료센터로의 승격을 위해 신축과 확장공사를 진행하고 있으나 이번 법안 개정안 시행으로 난감한 상황에 직면했다.

공공의료기관의 경우 진료의사 정원(T/O)이 정해져 있어 새로운 규정에 따라 수요가 더 발생하더라도 마음대로 늘릴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

“소아과, 산부인과, 안과, 이비인후과 등은 전문의가 1명뿐인 데다 그마저도 공중보건의사가 진료를 하고 있어 야간당직을 시행할 수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전문의 당직을 시행할 수 없는 진료과인데 응당제를 운영하는 것은 할 수 없는 것을 하라고 강제하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응급의료기관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려면 시설과 장비 등 관련 인프라 외에도 적정 의료인력이 배치돼야 하는데 의사인력 수급난을 겪고 있는 지방소도시의 여건을 극복한다 하더라도 감독관청인 도청에서 정원 확대를 승인해야 하는 또 다른 난관이 버티고 있다는 것.

이 의료기관은 응급실 전담전문의가 4명이나 배치돼 있으며 여기에 인턴 2명이 교대로 번갈아가며 근무하고 있고 응급구조사 1명도 일몰시간 이후 응급실에 상시 대기하며 지역 응급의료환자의 90%를 받고 있다.

응급환자가 몰리다보니 원장도 교대로 당직을 서고 있으며 토·일요일 당직근무 시스템을 감안해 통상 월요일에 갖던 진료과장 회의도 화요일로 옮긴 상태라는 것.

E 원장은 비상진료체계 구축에 따른 응급의료법 하위법령 시행과 관련해 긴급 임상과장 회의를 열어 일단 공보의 진료과 및 단수전문의 진료과를 제외한 복수전문의 진료과는 다 콜을 받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당직전문의가 없는 소아과는 내년에 전문의를 초빙할 계획은 갖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초빙에 응할 의사 물색은 물론 정원 확보 여부도 불확실, 당장은 인근 소아과의원과 연계해 응급실로부터 콜을 받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E 원장은 “상황에 따라 민간의료기관은 응급의료기관 지정서를 반납하면 그만이지만 공공병원은 그렇게 할 수 없을뿐더러 민간병원이 지정을 철회하면 환자가 더 몰려 봉직의를 추가로 투입해야 하는데 제때 인력수급이 어려운 여건을 감안하면 더 힘들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공공의료기관으로서의 소임을 다해야 하는데 어떤 측면에선 민간병원보다 입지가 더 어렵다”고 토로했다.

특히 공보의가 전체 의사 24명 중 30%인 7명으로 공보의 의존율이 매우 높지만 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공보의 인력수급이 점차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전문의 인력확보를 위한 예산 마련도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E 원장은 “공보의 공급이 줄어 인력수급이 더욱 힘들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의료원 평가에서는 경영효율성 제고를 위한 구조조정계획을 요구 받고 있다”며 “의료원의 자체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비상진료체계의 효율성 확보를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지원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설상가상으로 7월부터 7개질환 포괄수가제가 시행되면서 복잡한 청구절차 및 세부 상병명 기재의 어려움으로 두 달 정도는 청구도 어려워 당장 현금유동성 문제까지 겹쳐 삼중고에 직면해 있는 실정이다.

정책 변경의 취지가 아무리 좋다하더라도 제반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개선은커녕 후퇴할 수도 있는 만큼 정부는 3개월의 홍보·계도기간을 의미없이 흘려보내서는 안 될 것으로 보인다.<종합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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