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HF 총회] 의료의 세계화 :최근 동향
상태바
[IHF 총회] 의료의 세계화 :최근 동향
  • 윤종원
  • 승인 2007.11.13 15: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루춘용 <싱가포르 래플즈병원 원장>
토마스 프리드먼(Thomas Friedman)은 ‘세계는 평평하다(The World is Flat)’고 말했다. 의료에서의 세계화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오늘날 환자들은 국경을 넘나들고 있다. 우리 병원만 하더라도 세계 100여개국 이상에서 환자들이 찾아오고 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첨단 광고 기법의 등장으로 외국 환자들이 우리 병원을 직접 찾아오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한 조사에서는 연간 100만명의 환자가 다른 나라에 가서 치료를 받았다는 데이터를 제시하고 있으나 이는 터무니없이 과소평가된 것이다.

실제로 싱가포르에만 연간 45만명의 외국 환자가 방문하고 있으며 말레이시아에 10만명, 태국에 100만명이 치료를 위해 입국하고 있다. 여기에다 미국과 한국, 일본, 인도와 인도네시아 등으로 가는 환자들까지 포함한다면 최소한 연간 약 200만명 이상의 환자가 외국에서 자신의 병을 치료하고 있는 셈이다.

외국 환자들이 쓰는 의료비는 약 400~600억 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며 매년 20% 이상 고성장하고 있다.

왜 수많은 환자들이 외국에 나가서 치료를 받을까?

사실 이는 새로운 현상이라고는 할 수 없다. 과거에도 돈이 많은 사람들은 유럽에 가서 치료를 받아왔다. 1960~70년대 이후에는 미국으로 치료를 받으러 가는 사례가 크게 늘어났다.

최근에는 아플 때뿐만 아니라 건강을 더 증진시키고, 예방하고, 더 예뻐지기 위해 외국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즉, ‘갈망하는 치료’가 됐다.

반면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 사람들은 더 싸고 더 빨리 치료하기 위해 외국으로 나가고 있다. 공적 보험으로 치료를 하려면 대기하는 시간이 너무나 길어 선진국 사람들은 외국으로 가서 치료받는 것을 선호한다. 또 신흥 부자들도 외국에 가서 치료를 받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미국은 또 다른 경우다. 보험 비가입자가 4천만명이 넘는다. 이들 대다수는 외국으로 나가 치료받을 돈도 없는 사람들이다. 인도와 파키스탄, 동남아시아 출신 의사들이 비보험자들을 위한 소규모의 저렴한 클리닉을 많이 운영하고 있다.

아시아 몇몇 국가들이 외국 환자 유치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게 된 배경은 1997년 아시아를 강타한 IMF 외환위기 때 이를 타개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외국 환자 유치가 본격화됐다고 할 수 있다. 호텔이나 의료서비스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에 비행기 요금을 치르더라도 더 싸게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또 9ㆍ11 테러 이후 미국이나 영국 등으로 치료를 받으러 가기 힘들어진 부자들이 시선을 아시아로 돌린 점도 외국환자 유치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무하마드, 압둘라 등의 이름과 검은 피부는 입국 시 많은 불편을 초래하기 때문에 신흥 부자들이 선진국으로 가서 치료받는 것을 꺼리게 된 것이다.

오일과 가스가격 급등으로 중동과 러시아, 구 소연방 국가들의 신흥 부자들도 더 나은 치료를 받기 위해, 또 비보험자와 서비스 질이 낮은 보험혜택을 보는 사람들이 라식 등의 치료를 받기 위해 아시아 의료시장을 노크한다.

의료비용은 아시아권과 비교할 때 미국이 약 10배에서 많게는 60배까지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렇지만 의료비용이 그리 큰 변수만은 아니다. 국가의 공보험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낮은 보수로 인해 의료진의 질이 떨어지고 있어 외국에 가서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받길 원하는 수요도 늘어나고 있다.

싱가포르의 경우 말레이시아와 비교할 때 약 2배 정도 의료비용이 높지만 훨씬 더 많은 환자를 유치하고 있다. 결국 선택은 다양한 요구조건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다. 비교적 의료접근성이 뛰어난 한국에서도 심장이식을 위해 싱가포르에 오는 경우가 흔하다.

공공부문 인프라가 부족해서 외국으로 나가기도 한다. 간호사 수와 뛰어난 술기를 가진 의료진의 부족이 외국 의료시장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고 여기에다 여행패키지가 주는 매력도 이들의 시선을 붙들고 있다.

2005년을 기준으로 할 때 인도가 외국 환자들을 유치함으로써 거둔 수익은 4억8천만달러에 이른다. 주로 중동과 미국, 영국, 캐나다, 방글라데시 등에서 많은 환자들이 방문했다. 인도는 비용이 싱가포르의 1/4에 불과할 정도로 저렴하고 중앙정부와 주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등에 엎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약 4천만달러의 수익을 창출했다. 주로 이웃인 인도네시아와 중동, 미국 등에서 환자들이 발걸음을 했다. 말레이시아는 폭넓은 세제혜택을 부여하고 의료관광을 활성화하는 등 정부의 노력도 상당히 뒷받침됐다.

싱가포르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서남아시아, 일본, 한국, 러시아 등에서 온 환자들이 5억6천만달러를 썼다. 싱가포르 의료는 다양한 서비스를 포괄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비용에서의 경쟁력은 이웃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지만 의료의 질이 높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또 정부의 지원도 많은 편이다.

태국은 120만명의 외국 환자를 유치해 모두 10억달러를 벌어들였다. 비용도 싱가포르의 50~70%로 비교적 경쟁력이 있으며 영국 BBC 등에 공격적인 광고를 하는 등 적극적으로 외국인 환자 유치에 나서고 있다.

싱가포르는 2012년 100만명의 외국 환자를 유치, 20억달러의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1만3천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앞으로 아시아 의료시장은 갈수록 커질 것이다. 그렇지만 의료관광이 확대되면서 문제점들도 많이 대두되고 있다.

우선 환자의 권리, 즉 품질과 비용, 관리 등에 대한 보장이 충분히 이뤄지고 있는지 자문해봐야 한다. 또 의료의 적절성 문제와 지나친 상업화 우려, 귀국 일정에 쫓겨 서두르다 발생할 수 있는 환자의 리스크에 대한 고민, 의료과실 등 법적인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라 할 수 있다.

앞으로 의료에는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며 이는 또한 많은 기회도 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환자의 이익과 권리를 보호하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의료의 세계화는 더욱 확대될 것이다. 따라서 외국 환자들에 대한 권리 보호는 앞으로 두고두고 고민해야 할 과제가 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