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서 자동차보험을 취급하는 손해보험사들이 종전에 열람까지만 가능했던 환자 진료기록을 사본으로 등사(복사)할 수 있게 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중 개정법률안을 내놓아 환자 개인정보 누출에 대한 우려가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최근 자배법중 개정법률안을 내놓으면서 지금까지 손보사가 허위청구 방지를 위해 환자 진료기록을 열람할 수 있었던 것을 등사(복사)까지 할 수 있게 조항을 바꿨다. 자배법에서 진료기록 열람을 손보사에게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것은 의료기관에게 진료비를 지급하는 주체에게 실제 진료가 이뤄졌는지 사실 여부를 확인토록 해 허위청구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 그나마 의료기관에세 진료비 청구가 이뤄진 후 제한적으로 가능했었다.

환자의 진료기록을 등사할 수 있게 한 자배법 조항은 원칙적으로 제3자에게 환자의 진료기록 열람과 사본발급을 금지하고 있는 의료법과 정면배치되는 것으로, 의료계는 물론 시민단체 등의 거센 반발을 살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대한병원협회(회장 유태전)는 환자 진료기록 사본 발급을 가능토록 하는 자배법 개정안에 대한 반대의견을 29일 건설교통부에 제출했다.

병협은 의견서에서 제3자에 대한 진료기록 열람 및 사본발급은 의료법에서 엄격히 제한하고 있어 교통사고 환자에게만 달리 적용할 그 어떤 명분도 없으며, 개인정보(진료기록) 노출에 따른 분쟁이 빈번하게 발생할 것이란 점을 들어 반대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병협에 따르면 의료법은(19조, 20조1항)은 의료인의 환자에 대한 비밀보호를 명시, 원칙적으로 환자 등의 진료기록 열람 및 사본발급을 금하고 있으며, 예외적으로 환자나 배우자, 직계존속 등이 요구할 경우 허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예외적인 경우에도 환자의 보호자 등이 환자와 이해상반관계에 있는 경우 반드시 환자의 사전동의가 선행되어야 하며, 보험사 등 환자를 대신한 대리인이 진료기록 열람을 요구할 경우에는 환자(위임자)와 보험회사(피위임자)의 인적사항 및 위임의 내용 등이 구체적으로 명시된 위임장과 이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인감증명서나 신분증 등의 제시를 조건으로 발급하고 있다.

따라서 진료기록 보호는 모든 환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지 교통사고환자(자동차보험)라 해서 환자 동의 없이 진료기록 열람의 범위를 벗어나 사본발급까지 실시하는 것은 형평성에 위배된다는 병협의 지적이다.

병협은 특히 자배법에는 요양기관 지정제도를 운영하지 않으면서 ‘직불금지 조항’을 들어 모든 의료기관을 강제지정하고 있는 모순된 현 제도에서 손보사가 의료기관 청구한 진료비에 대한 이의는 ‘진료수가 분쟁 심의회’를 통해 제기하면 될 사항이지 환자의 동의 없이 제3자인 손해보험사에게 진료기록의 사본을 발급하도록 강제하려는 것은 손보사에 환자에 대한 심사권을 부여해주려는 의도로 보여질 수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더구나 교통사고 대부분이 손해배상 관련 법적 분쟁상태인 상황에서 환자 동의 없이 보험사에 진료기록 사본이 발급될 경우 환자는 진료기록과 관련된 정보에 대한 약자로서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우려했다.

또한 의료기관에는 보험사의 무분별한 사본발급 요청으로 진료비 등과 관련한 민원이 빈발하며, 보험사가 환자의 조기퇴원 유도, 진료비 조정 등 불합리한 수단으로 악용할 소지마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완배·kow@kh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