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여기준 위반한 약 처방과 보험공단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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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여기준 위반한 약 처방과 보험공단의 책임
  • 박현 기자
  • 승인 2012.02.23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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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세승 현두륜 변호사

      현두륜 변호사
지난 2월14일 서울서부지방법원은 강원대학교병원 원외처방 약제비 소송에서 건강보험공단은 강원대병원이 청구한 9천985만원 중 8천577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승소금액이 전체 청구금액의 86%에 달하기 때문에 사실상 원고 강원대병원측의 승소라고 평가할 수 있다.

위 판결은 1심 판결에 불과하고 그것도 합의부가 아닌 단독판사의 판결이기 때문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기존에 선고된 다른 병원들 사건에서 법원은 청구금액의 20~25%에 해당하는 금액만 인정하는 것과 비교해 보면 과연 그 논리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원외처방 약제비 소송은 얼마 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공개구술변론을 진행한 임의비급여사건과 더불어 의료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 중에 하나이다. 또한 이 사건에는 매우 다양한 법률적 쟁점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법조계에서도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런 이유로 담당판사(송명호 판사)는 아주 의욕적으로 이 사건에 대한 심리를 진행했다. 특히 다른 재판부와는 달리 민법학자들을 심리에 참여시켜 공개토론을 유도했고 건강보험공단은 물론 심평원의 관계자까지 불러 직접 설명을 들었다.

또한 약제비에 대한 심사절차를 확인하기 위해서 심평원에 대한 현장검증까지 실시했다. 판사 역시 이 사건의 파장과 영향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혹시 편협한 지식이나 제한된 정보에 따라 엉뚱한 판결이 선고되지 않을까봐 조심하면서 많은 정성과 노력을 기울인 것이다.

판결문에서는 원고 채권의 성질(진료비채권인지, 부당이득반환채권인지), 피고 채권의 소멸시효 완성 여부, 피고의 채권으로 상계가 가능한지, 요양급여기준의 강행법규성, 손해의 범위에 관해서 기존의 판결과는 다른 판시를 하고 있다.

관련 쟁점들은 매우 어려운 법리적 내용이어서 이를 전부 소개할 필요는 없고 이하에서는 의료인이라고 한다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판시내용만 몇 가지 소개할까 한다.

첫째, 의사가 요양급여기준에 구속되는지와 관련해서 법원은 '요양급여기준은 건강보험에서 요양급여를 인정해 주는 기준을 적시한 것으로서 요양기관 입장에서는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하는 기준이 되고, 심평원 입장에서는 요양급여비용의 인정범위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며, 보험공단의 입장에서는 요양기관에게 요양급여비용을 지급하는 기준으로 작용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의사가 의료행위를 할 때 준수해야 할 기준이 될 수는 없다'라고 판시했다.

둘째, 불법행위에 대한 입증과 관련해서는 '원외처방과 관련한 심평원의 심사결정에 대해서 병원이 이의신청을 제기하지 않았다고 하여 그러한 심사결정이 그대로 확정되는 것도 아니므로 원고병원 의사들이 요양급여기준을 위반했음을 자인했다거나 불법행위 성립을 인정했다고 볼 수 없다. 심평원의 심사결정이 무효의 처분에 해당한다면 보험공단이나 병원은 그 심평원의 심사결정에 구속될 이유도 없으므로, 입증책임의 원칙상 보험공단이 불법행위의 성립 여부 및 그 손해액을 주장, 입증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셋째, 손해의 범위와 관련 '요양급여기준을 위반한 의사의 원외처방으로 인해 보험공단이 약사에게 약제비를 지출했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해 필연적으로 보험공단에게 그 약제비 상당의 손해가 발생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요양급여기준은 단지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범위와 상한을 규정한 것일 뿐, 그러한 요양급여기준이 최선의 의료행위를 반영하는 것은 아니고 요양급여기준에 맞는 처방이 경제적이고, 비용효과적인 처방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경제성과 비용효과성이 환자의 병을 치료하는데 있어서 최선의 처방임을 담보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만일 요양급여기준을 위반한 처방이 요양급여기준을 준수한 처방 보다 환자의 병을 낫게 하는데 있어서 더 효과적인 경우라면, 결과적으로 피고는 그 환자의 병과 관련된 요양급여비용을 더 적게 지급하게 될 것이다'라고 판시했다.

넷째, 보험공단의 책임과 관련해서 '기준 위반 원외처방 약제비 환수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의약분업이 본래의 취지에 맞지 않게 파행적으로 운영되는 현상에서 도출되는 문제이니만큼, 원칙적으로 의약분업의 본래의 취지에 맞는 제도개선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중요한데 의사에게만 그 책임을 묻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은폐시키고 제도개선의 필요성을 희석화시키는 면이 있으며 궁극적으로 피고가 소속된 보건복지부가 게을리 한 제도개선의 미비를 의사에게만 전가하는 결과가 된다. 그렇다면 공평의 원칙상 피고도 기준위반 원외처방 약제비와 관련 발생한 손해를 분담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위와 같은 언급은 의료인의 진료권과 건강보험정책 전반에 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것이어서 판결의 결과를 떠나 앞으로 의료나 건강보험에 관련한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데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아울러 현재 1심, 2심, 3심에서 나누어 진행되고 있는 약제비 소송에도 좋은 선례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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