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후회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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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후회하지 않아
  • 윤종원
  • 승인 2006.10.26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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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퀴어멜로영화

한 남자가 한 사람을 보고 첫눈에 반했다. 단 한번 봤음에도 그 사람의 얼굴이 지워지지 않는다. 다행스럽게도 직장에서 다시 만난다. 그에게 접근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그럼에도 그 사람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마음을 열지 않을 뿐 아니라 자꾸만 다가서려는 그를 매몰차게 내친다.

남자의 진심을 안 그 사람이 결국 그의 사랑을 받아들인다. 이제 꿈결 같은 시간이 흐른다. 서로의 몸을 쓰다듬고, 귀엣말로 사랑의 밀어를 나누고. 그러나 그들 앞에는 가혹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흔하디 흔한, 요즘은 TV 아침드라마에서조차 잘 다루지 않는 이야기다. 더욱이 사랑을 받는 이의 직업이 술집 "선수"라면 1970년대 호스티스 영화 같은 고전적 분위기까지 첨가된다.

그런데 한 남자가 바라보는 "한 사람"이 "남자"라면 달라진다.

"후회하지 않아"(감독 이송희일, 제작 청년필름)는 정통퀴어멜로영화다. 2002년 "로드 무비"가 충무로에 충격파를 던져준 이후 소재의 다양성이 확보되며 최근 동성애 영화가 심심찮게 등장했고 화제가 됐다. 올해만 해도 "왕의 남자" "메종 드 히미코", 그리고 "브로크백마운틴"이 있었다.

그러나 "왕의 남자"의 지향점은 분명 동성애 영화가 아니었으며, "브로크백마운틴"은 동성애자들의 사랑보다는 그들의 인생을 담으려 했다. 개봉 당시 충격적이었던 "로드 무비"에 가장 근접하지만 "로드 무비"는 두 남자 사이에 한 여자를 끼워 넣어 남자와 남자, 남자와 여자와의 사랑을 대비시켰으며, 자신의 성정체성을 인식하지 못했던 주인공이 남자의 사랑을 거부하려는 일반적인 시도가 있다.

"후회하지 않아"는 오로지 남자와 남자의 사랑만을 담았다는 점에서 당당하게 목소리를 낸다. 이들의 사랑에 현실적 걸림돌이 되는 여자의 존재조차 그리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다. 두 남자는 시작부터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남자의 사랑을 거부하는 게 동성애자임을 숨기고 싶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예정된 파국을 피하기 위한 소극적 방어였을 뿐이다. 세상의 편견 어린 시선을 극복해낸 이 특별한 연인의 사랑은 해피엔딩을 향해간다.

점점 동성애자들의 사랑을 남자와 여자의 사랑만큼이나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받아들이는 시대의 변화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제 이들의 육체적 사랑도 받아들이라는 주문을 한다. "후회하지 않아"의 섹스묘사는 과감하고 거침없다. "로드 무비"보다도 한 수 위다. 남자와 남자의 키스도, 성행위도 남자와 여자와 다를 것 없다는 걸 굳이 보여주고자 한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은 당당함이 이 영화의 무기다.

"후회하지 않아"로 장편 데뷔를 한 이송희일 감독은 단편독립영화 "슈가힐" "동백꽃 프로젝트"로 동성애를 다룬 바 있다. "굿로맨스"에서는 연상연하의 사랑을 다루는 등 이제는 일반화된 소재이지만 독특한 영화어법을 사용해 주목받아온 감독이다.

재벌 2세 재민(이한 분)은 대리운전기사 수민(이영훈)을 보자마자 첫눈에 묘한 감정을 느낀다. 고아원 출신인 수민은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컴퓨터를 배우며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는 등 열심히 살아간다.

수민은 공장에서 인사과 "낙하산" 재민과 재회한다. 재민은 수민을 더 알기 위해 노력하지만 수민은 재민의 접근을 피한다. 재민과의 충돌로 공장을 그만둔 수민은 먹고 살기 답답해지자 게이 호스트바에 "선수"로 취직한다. 이곳까지 찾아온 재민.

재민의 구애와 수민의 거절은 계속 이어지지만 결국 수민은 재민의 애타는 마음을 받아들인다. 수민의 한칸짜리 옥탑방에서 이들은 꿈 같은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재민에게는 아들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알고 있는 부모와 그 부모가 강제적으로라도 결혼시키려는 여자가 있다. 그토록 재민의 구애를 거절했던 수민은 막상 자신이 마음을 연 뒤에는 여느 연인 못지않은 질투심과 함께 조바심을 갖는다.

두 사람의 선택은.

다소 거칠었던 "로드 무비"의 황정민과 정찬과 달리 이한과 이영훈은 부드럽게 영화를 끌고간다. 이한은 "굳세어라 금순아"에서 한혜진의 죽은 남편 역으로 잠깐 출연했으며, 노희경 작가의 "굿바이 솔로"에서도 비록 비중은 크지 않았지만 선명한 인상을 남겼다.

이영훈은 이송희일 감독의 "굿로맨스"가 출연작의 전부다. 이한과 이영훈은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드러내는 연기로 시선을 끈다.

11월16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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