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영화의 진화, 폭력써클
상태바
폭력영화의 진화, 폭력써클
  • 윤종원
  • 승인 2006.10.20 1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 영화를 보며 드는 생각. 왜 이리 하드보일드 액션영화 장르의 진화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가.

올해만 해도 "사생결단" "비열한 거리" "거룩한 계보"에 이어 "폭력써클"이 액션 혹은 느와르 영화의 다양성과 성취도를 높이고 있다. "폭력써클"(감독 박기형, 제작 태원엔터테인먼트)은 제11회 부산국제영화제 소개작 가운데 한국 영화로는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어내고 있는 중.

보는 이의 가슴을 아리게 할 정도로 리얼리티가 담겨 있는 내용이 일단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육사를 가기 위해 친구들은 이미 접하고 있는 술과 담배 대신 콜라를 마실 정도로 모범생이었던 고1 남학생이 불과 한 달 만에 잔인한 살인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상황을 속도감 있고, 밀도 있게 전개한다.

1998년 최고 흥행작이었던 "여고괴담"에서 여학생들의 세계를 들여다본 박기형 감독은 "폭력써클"에서 대한민국 남고생들의 일상과 분노를 담아냈다.

고1 남학생들에게서 터져나오는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액션은 섬뜩하지만 그 자체가 드라마 구조를 갖고 있어 조금은 희석된다. 어떤 면에선 피가 난무하는 싸움보다 밝고 화사했던 화면이 아예 흑백필름으로 전환될 수밖에 없는 암담한 상황이 더 공포스럽고 섬뜩하다.

피해자가 아니면 가해자가 되는 현실. 이러한 이분법적 "양극화 현상"은 이미 학교에서 시작된다. 더 이상 학생들을, 우리 아이들을 보호해주지 못하는 학교와 사회를 향해 영화는 극단적인 항변을 한다. 교사가 비열한 폭력성을 갖고 학생을 팬 후 분노한 학생이 대들자 "이 놈이 선생님을 쳐?"라고 "쪼잔한" 대응을 하는 꼴이라니.

영화음악의 중요함이야 말할 필요가 없지만 영상과 딱딱 어우러져 흐르는 음악은 영화의 비장미를 한껏 고조시키는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또한 투박한 듯 거친 질감을 내세운 카메라와 조명은 때론 관조적으로, 때론 감정적으로 인물과 동선의 흐름을 잡아내는 묘미를 선사한다.

영화의 완성도와 함께 부쩍 성장한 배우들을 만나는 즐거움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유약한 이미지가 강했던 정경호는 상호 역을 맡아 전혀 다른 면모를 선보인다. 이 영화의 리얼리티가 살아나는 건 정경호의 이미지 변화로 얻는 부분도 상당하다. "광식이 동생 광태"에서 살포시 미소를 짓던 그는 모범생에서 살인자가 된, 그러나 여전히 순수한 눈빛을 잃지 않는 상호를 표현해냈다.

종석으로 출연한 연제욱의 발견도 의미 있다. 안티 히어로의 개념을 명확히 보여준 연제욱은 신인답지 않게 느믈거리면서도 비열하고 폭력적인 캐릭터로 완전히 흡수됐다.

"여고짱"이 된 장희진도 지금까지 배역 중 가장 몸에 맞는 옷을 입었으며, "사랑니"로 첫선을 보인 이태성 역시 성장의 기쁨을 맛보게 한다. 경철 역의 김혜성, 창배 역의 이행석을 비롯한 조연 배우들의 조화도 매끄럽다.

아버지처럼 육사에 진학하는 게 꿈인 상호(정경호 분)는 재구(이태성)의 초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축구 모임 "타이거"를 결성한다. 상호는 공부도 잘하고, 생활 태도 바르며, 심지어 싸움까지 잘하지만 결코 주먹을 앞세우지 않는 모범생. 그의 친구들 역시 순수한 감정을 갖고 있는 고등학교 1학년생일 뿐이다.

창배(이행석)의 소개로 수희(장희진)를 만나면서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무릇 여자란 남자에게 경계의 대상이어야 함을 이 영화 역시 피해가지 못한다). 수희는 불량써클 TNT파 보스인 한종석(연제욱)의 여자친구였던 것. 이 때문에 상호 일행과 TNT파는 사사건건 대립한다.

폭력을 쓰지 않고자 했던 상호는 TNT파와의 싸움을 피하려다 교통사고를 당해 죽음을 맞는 재구로 인해 기어이 들어서지 않아야 할 길로 들어선다. 축구와 친구들과의 만남을 즐겼던 6명의 어여쁜 학생들은 이제 더 이상 싱그러운 청춘을 즐길 수 없다.

비록 1991년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일. 그러나 현재라고 다를까. 오히려 더 잔혹한 현실이 보여질 것이다. 이 현실의 비참함에 관객은 가슴 밑바닥부터 밀려오는 슬픔에 젖는다.

사족, 이 영화를 보면 아들 둔 부모들 암담해질 것.

19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