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현장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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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현장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
  • 오민호 기자
  • 승인 2024.04.01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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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책사유는 병원과 의사에 있어…노동자에 고통 전가 안돼
빅5 병원 비롯한 서울지역 수련병원 노동조합 대표들 호소

“우리 병원 현장은 더 이상 버티기 어렵습니다. 현장 내부에서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고 환자 진료 차질은 물론 환자 안전에 대한 위험도 일하는 노동자들의 고통도 커져만 갑니다.”

빅 5병원을 포함한 서울지역 전공의 수련병원 노동조합 대표자들이 전공의 즉각 복귀와 교수 사직 철회를 촉구하고 진료 정상화를 위해 정부에 환자와 병원 노동자가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를 조속히 시작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4월 1일 오전 11시 신촌세브란스병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의대정원 확대를 둘러싼 의정 갈등에 가장 큰 피해를 보고 고통 받고 있는 환자와 병원 노동자들이 외면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권미경 세브란스병원노동조합 위원장은 “의대 증원에 대한 생각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우리나라 의료를 생각하는 마음은 같을 것이라 기대하며 기다렸던 지난 몇 주”라며 “그러나 동료애와 안타까움은 이제 분노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즉, 의사들이 환자 그리고 병원이 겪는 어려움에 관심은 갖고 있는지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

권 위원장은 “거침없는 행동과 발언은 피해가 커져야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될 것이라는 굳은 신념을 선언하는 듯하다”며 “명분 없는 진료거부가 장기화돼, 이제 동료 의료인들마저 등을 돌리기 시작했고, 동정조차 받지 못할 처지라는 걸 빨리 깨달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병원들은 사태가 장기화되자 정상화 노력 대신 노동자 쥐어짜기를 선택하고 있다며 무급휴가는 일반화되고, 심지어 일부 병원들에서는 수익감소를 메우기 위해 검사와 치료를 더 많이 하라는 명령이 내려오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권 위원장은 “상황이 이 지경이니 병원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우려가 나오고 있다”며 “명분 없는 집단행동을 중단하고 환자가 있는 병원으로 복귀하라”고 촉구했다.

또한 병원 현장과 환자들의 피해에 대한 증언도 이어졌다.

오늘이 만우절인 만큼 정말 누군가의 역대급 거짓말이라 믿고 싶다고 운을 뗀 송은옥 보건의료노조 고대의료원지부장은 현장의 간호사들은 ‘진료 지원(PA) 간호사 시범사업’으로 전공의들의 빈자리를 채우고 환자의 곁을 지키고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이를 일반간호사에게 확대 시행하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교육, 훈련도 제대로 되지 않은 일반 간호사들을 하루아침에 PA간호사, SA간호사, 임상전담간호사라고 칭하며 환자 관련 업무와 각종 처치 및 검사·시술 보조, 수술 보조의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면서 “지원자가 없으면 임의로 차출하기도 하고 미흡한 교육·훈련과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은 일을 하면서 내가 잘하고 있기는 한 건지 혹시 환자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닌지 계속된 자기검열 속에 불안한 하루를 보내고 원래 일하던 부서로 돌아갈 날을 손꼽으며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송 지부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돌아온 건 병동폐쇄 및 통폐합, 무급휴가 시행 및 기간연장, 다음은 무엇인가? 4월 25일 교수들 사직서가 수리되면 우리도 같이 사직하면 되는 건가?”라고 반문했다.

송 지부장은 이어서 “무급휴가로 급여가 삭감되고 병동폐쇄로 다른 부서로 지원가거나 PA, SA 등 전담간호사로 차출되어도 각자 자기 소임을 다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면서 “힘든 시기 고통 분담이라고 생각하며 기꺼이 함께 참아가며 일했지만 7주 차에 접어든 지금. 더 이상 일방적인 고통전가는 사양한다. 더 이상 간호사에게만 무거운 짐을 지우지 말라”고 호소했다.

김선화 보건의료노조 서울성모병원지부장은 정부와 의사들의 힘겨루기로 엉뚱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고발했다.

수술실에서 의사들이 사라지자 이들의 도움이 필요한 과는 수술을 진행할 수 없게 돼 환자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김 지부장은 “입원환자 역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로 전공의가 나간 직후 교수가 일일이 다 할 수 없다 보니 수술 부위나 배액관 부위 드레싱의 주기가 늦어지는 경우도 있고 바늘 교환도 늦어졌다”며 “심지어 퇴원 시까지 교환하지 말라는 지시 처방도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병원노동자들은 비상경영체제라는 명목으로 고용불안에 내몰리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경민 보건의료노조 서울아산병원지부장 “당장 3월 입사할 예비 노동자들은 무기한 입사 연기 통보를 받았고, 재계약을 앞둔 비정규직 노동자들 또한 일방적인 계약 해지로 정든 병원을 떠나고 있다”며 “모든 병원의 상황이 비슷하기에 이들은 갈 곳조차 없고 간접고용 노동자들 또한 힘든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또 병원노동자들은 극도의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의사 집단 진료 거부로 진료가 원활하지 않아 진료 예약 취소 및 연기, 수술 일정 취소 및 연기 등의 안내를 하며 환자 및 보호자로부터 폭언과 항의로 극도의 정신적인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 지부장은 “의사 집단 진료 거부의 장기화에 대한 우려로 임금체불, 구조조정, 심지어 휴업, 폐업에 대한 말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면서 “우리의 잘못이 아닌데 도대체 왜 이러한 상황을 겪어야 하며, 걱정해야 하나? 병원은 의사만 있는 의료기관이 아니라 의사보다 훨씬 많은 노동자들이 함께 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성주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회장은 상대편에 책임 전가만을 외치며 환자들의 부족한 시간과는 거리가 먼 여유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정부와 의사들을 싸잡아 비판했다.

김 회장은 3월 30일 심정지 영아 상급종합병원 이송 거부 과정 중 사망, 3월 29일 위암 망기 여성 환자 상급종합병원 응급실 내원 거절, 3월 19일 전북지역 상급종합병원 말기신부전 투석 환자의 수혈 거부로 요양병원 3일간 대기 중 사망, 3월 6일 부산시 지정한 공공병원에서 심근경색 진단 받은 90대 할머니의 지역 대학병원에 전원 불가로 인한 울산 지역 병원 이송 후 사망 등을 열거하면서 “오늘도 환자 보호자가 부친이 암진단을 받고 수술 불가인 상황에서 항암과 방사선 치료가 급한데 수도권 3차 대학병원에서는 파업이 끝나고 오거나 6월 이후나 치료 가능하다는 답변을 듣고 지방병원이나 2차병원을 찾아달라는 민원이 들어왔다”고 소개했다.

그는 “정부와 의료계는 의료대란 사태에 대해 책임 있고 진정성 있는 대화의 자세를 보이지 않으면 국민과 환자들에게 설 자리도 명분도 잃게 될 것”이라며 “교수님 당신들의 눈높이는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향후 환자들의 원망이 무섭지 않습니까? 정부는 더 이상 중증환자을 방치하는 무책임한 행동을 즉각 멈추길 바란다”고 경고했다.

아울러 서울지역 전공의 수련병원 노동조합 대표자들은 전공의가 집단으로 환자 곁을 떠난 의료현장에서 묵묵히 환자를 지키고 있는 우리 병원노동자들이 환자안전과 병원 정상화를 위해 현장의 목소리를 내겠다며 사용자와 정부가 분명한 답을 제시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만일 최소한의 요구에 응답이 없을 시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일방적으로 당하는 고통전가를 단호히 거부하고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추궁과 함께 근본적인 의료개혁을 위해 강력한 투쟁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기회견문을 통해 전공의의 즉각적인 환자 곁으로 복귀 및 교수들의 집단사표 철회를 촉구했다.

또한 병원장(의료원장)에게는 더 이상 전공의 미복귀와 교수들의 집단사표에 대해 방관하거나 묵인하거나 동조할 것이 아니라 병원 정상화를 위해 보다 더 분명하고 책임 있는 강력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구하고 이런 노력 없이 의사 아닌 병원 노동자들에게만 책임을 전가할 경우 단호히 거부할 것이며 노사합의하에 주 4일제 등 다양한 근무형태 조정으로 비상사태를 함께 극복해야 하고 불가피한 병동폐쇄의 경우 병원에 귀책사유가 있는 만큼 정당한 휴업수당을 지급하라고 주장했다.

끝으로 정부를 향해선 의사와 정부 여당만 참여하는 대화체가 아닌 환자와 병원노동자, 시민대표까지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체 ‘국민참여 공론화위원회’를 조속히 개최하라고 강력히 촉구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는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강동경희대학교병원지부, 강동성심병원지부, 건국대학교병원지부, 경희의료원지부, 고대의료원지부, 국립중앙의료원지부, 노원을지대학교병원지부, 보훈병원지부 서울지회, 서울성모병원지부, 서울아산병원지부, 여의도성모병원지부, 은평성모병원지부, 이화의료원지부, 중앙대의료원지부, 한국원자력의학원지부, 한양대의료원지부와 한국노총 세브란스병원노동조합, 건국대학교병원노동조합, 서울의료원노동조합 등 양대노총 소속 서울지역 병원노동조합이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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