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영화> "꽃 피는 봄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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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영화> "꽃 피는 봄이 오면"
  • 윤종원
  • 승인 2004.09.20 0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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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그럴 때가 있다.

꿈은 한참 저 멀리 있는데, 해 놓은 것은 없고, 주위 사람들의 격려는 빈정거림 으로 들리고. 나이는 점점 들어가는데, 내 앞가림도 못하는 터라 좋아하는 그 사람에게 결혼하자는 말은 못하겠다.

30대 중반 트럼펫 연주자 현우(최민식)가 그렇다.

오디션은 매년 미역국이고, 음악학원에서 용돈이나 벌라는 친구의 말에는 자존심이 상해 못 견디겠다. 결혼하자고 말 못해 헤어졌던 오래된 여자친구는 새로운 남자를 만나 결혼한단다. 또 한번 오디션에서 떨어진 날, 현우는 강원도 탄광촌 도계로 향한다.

23일 개봉하는 영화 "꽃 피는 봄이 오면"(제작 씨즈엔터테인먼트)의 장점이 인간관계의 소소함에 대한 묘사에 있다면 매력은 과장되지 않은 따뜻함에 있다.

현우가 처한 상황은 그렇게 치명적이지 않고 강원도에서 그가 겪는 사건들도 딱히 "사건"이라고 할만한 일은 아닌 것. 그가 다시 찾는 "봄"도 대단한 "깨달음"까지는 아니다.

하지만 에피소드의 스타카토(staccato.끊음표)도, 줄거리의 크레센도(Cresendo.점점 세게)도 아다지오(adagio.아주 느리게)로 천천히 전개되지만 후반부 다시 찾아 온 봄에서 차곡차곡 쌓인 감동은 관객들에게 리타르단도(ritardando.점점 느리게)처럼 느리지만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헤어진 여자친구 연희로부터 들려오는 "결혼한다"는 얘기에 현우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축하한다. 잘 살아라"는 말 뿐이다. 점점 자포자기의 심정이 돼가는 현우.

미리 찢어놨던 시골 마을 관악부 교사 모집 광고를 호주머니에서 발견하고 강원도행 국도를 탄다.

녹슨 악기와 오래된 트로피, 헤어진 상장과 낡은 악보. 이 시골 중학교의 사정도 현우와 많이 다를 것은 없다. 그 곳에서 그에게 내려진 임무는 전국 대회 우승이다. 소리도 제대로 나지 않은 악기와 한동안 연습도 못했던 아이들. 음악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지만 여기 아이들의 꿈도 현실에 비해서는 터무니없이 커보인다.

아이들과 함께 연습을 시작하는 현우. 한가한 생활은 아니지만 옛사랑에 대한그림자와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가슴 아픔은 여전히 마음 속에 맴돌고 있다.

유난히 긴 겨울을 나고 있는 그가 새로 만나는 사람들은 "기나긴 겨울을 보내야봄이 온다"며 다독여주는 마을 약사 수연(장신영), 아버지의 반대에도 연주자가 되고싶다는 용석이(김동영), 막막한 현실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재일(이재응) 등 하나같이 따뜻한 사람들이다. "넌 지금부터 시작이야"라는 엄마의 무뚝뚝한 말과 잘하든 못하든 좋아하는 것을 계속 하자는 친구의 술주정도 들려오고 겨울의 막바지에 열리는 관악대회 날은 점점 다가온다.

"봄날은 간다"의 시나리오를 썼고 이 영화에서 허진호 감독의 조감독으로 출연했던 신인 류장하 감독은 슬픔도, 미움도, 사랑도 그리고 다시 찾아온 희망도 과장하지 않은 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다른 상업영화처럼 자극적인 재미를 찾기 보다는 평범한 일상에서 차근차근 쌓여가는 감동을 택한 셈이다.

전반적으로 잔잔하지만 영화 전체가 악센트 있게 전개되는 것은 주인공 현우의 캐릭터와 주변 인물이 입체적으로 설정돼 있기 때문이다. "지독하게도" 인간적인 최민식이나 윤여정, 김강우, 장현성, 장신영 등의 탄탄한 연기가 캐릭터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상영시간 148분,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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