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싱가포르의 의료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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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싱가포르의 의료시스템
  • 박현
  • 승인 2005.01.28 1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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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료원 홍보팀 부팀장 김득일
고대의료원에서 의료시장 개방에 따른 전략모색과 조직 내 새바람을 불어넣고자 지난 12월에 의욕적으로 실시한 해외벤치마킹에 싱가포르팀원으로 참가해 싱가포르의 대표적 병원을 둘러볼 기회를 가졌다.

"고대는 늘 고대로(그대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변화에 둔감하고 대처가 늦다고 알려진 고대지만 50여명의 1차 파견단이 3개조로 중국, 홍콩, 싱가포르에 다녀와 발표회를 개최한 데 이어 2차와 3차로 100여명이 출국할 예정일 정도로 그 어느 때보다 변화와 개혁에 대한 의지와 열기가 강하게 분출되고 있다.

첫 방문병원이었던 NUH(National University Hospital)는 싱가포르 유일의 대학병원이자 2개 그룹으로 분할 운영되는 싱가포르 공공의료 클러스터 중 NHG(National Health Group)가 입주해 있는 대표적 공공의료기관이었다.(섬나라인 싱가포르는 섬을 서쪽과 동쪽 진료전달체계로 묶어 NHG와 Singhealth 2개의 클러스터로 묶어 경쟁시킴으로써 스스로 최대한의 경영효율성을 이끌어내도록 유도하고 있다.)

공공의료와 민간의료의 이원적 구조로
기초의료보장과 의료산업으로서의 고급의료 동시추구

그런 까닭에 단위병원 NUH만의 브리핑이 아닌 NHG, Singhealth 등 2개의 공공의료 클러스터 개념이나 메디세이브 등 싱가포르의 의료제도 전반에 대한 브리핑까지 1시간에 이르는 프리젠테이션을 받을 수 있었는 데 출국전 사전 학습한 내용과 더불어 이후 진행되었던 벤치마킹에 큰 도움이 됐다.

싱가포르의 독특한 의료제도를 먼저 약술하자면 싱가포르는 "건강은 개인의 습관과 관리 또한 중요하므로 의료복지는 국가만의 책임이어서는 안된다"는 독특한 의료철학으로 미국이나 우리나라 등 의료재정으로 고민하는 나라들이 도입을 검토했던 MSA(Medical Saving Accounts ; 의료저축계정)를 시행하고 있다.

흔히 메디세이브라 불리는 이 제도는 의료재정에 개인의 책임과 저축의 개념을 접목한 것으로 소득이 있는 국민은 누구나 연령에 따라 6∼8%를 적립해 필요시 개인의료비로 사용한다. 의료재정안정화를 위해 기본적으로 입원이상의 중증질환에만 사용이 가능하며 메디세이브를 넘어서거나 소득이 없는 생활보호층을 위해서는 메디쉴드와 메디펀드를 2중, 3중으로 구축해 기초의료보장에 차질이 없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싱가포르 의료제도가 일방적으로 이러한 사회주의식 통제와 관리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싱가포르는 앞서 언급한 효율적인 공공의료 시스템을 기반으로 주식회사형 민간병원을 허용해 의료산업의 첨병으로 육성하고 있다. 대표적인 병원이 둘째 날 방문한 마운트 엘리자베스 병원이 속한 파크웨이 그룹과 한국인 샴쌍동이 분리수술로 국내에도 유명한 래플즈병원이다.

싱가포르의 민간의료기관을 알아보기 위해 방문했던 마운트 엘리자베스 병원은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의료지주회사인 파크웨이 그룹 소속의 3개 병원 중 본원에 해당하는 병원으로 호텔식 객실서비스, 식당서비스, 그리고 첨단의료장비 및 진료지원 업무를 의료진에게 제공해 유명한 클리닉을 백화점처럼 입점시킨 병원이었다.

따라서 서비스는 가히 호텔급이었으며 환자들은 퇴원시 의사에게 내는 비용과 파크웨이 그룹에 내는 비용 두 개로 나뉜 청구서를 받게 된다. 이처럼 마운트 엘리자베스 병원이나 래플즈 병원같은 싱가포르 민간병원은 클리닉 임대료, 프랜차이즈 수익, 그리고 환자들의 이용료와 주식 등 막대한 수익을 통해 국내 경쟁력을 갖추고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토대로 인근 해외까지 국제마케팅을 펼치는 등 국가기간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처럼 건강에 대한 개인책임이라는 독특한 의료철학과 그를 토대로 한 의료재정 운영, 그리고 기본적인 의료보장과 달리 시장논리와 경제능력에 따른 고급의료 제공은 차별이 아닌 당연한 차등이라는 국민적 공감대는 공공의료와 민간의료가 상호보완적으로 존재할 수 있게 했으며 나아가 의료산업을 관광, 금융, 중계무역의 중심지라는 국가특성과 상승작용을 일으켜 아시아의 의료허브로 성장케 했다.

효율성과 능력이 최고의 선이자 가치
차별화된 의료서비스 차등으로 수용

싱가포르 벤치마킹 기간 동안 무엇보다 부러운 것은 호텔수준의 병원시설이나 친절한 직원들이 아니었다. 싱가포르 정부의 합리적이고 꾸준한 의료정책과 지원, 의료계의 내부효율성 극대화, 그리고 국민들의 합리적 분담과 의료소비가 맞물린 싱가포르만의 합리적이고도 경쟁력 있는 의료시스템이었다. 결국 이런 시스템이 있기에 수준 높은 서비스, 친절한 서비스가 가능해지는 것이라 생각된다.

척박한 자연조건과 4개 인종과 종교가 뒤섞인 가난한 섬나라였던 싱가포르가 효율성과 능력을 최고의 선(善)과 가치로 오늘날과 같은 시스템과 번영을 이뤄낸 것은 리콴유라는 탁월한 지도자와 변화하지 않으면 모두 공멸하고 만다는 위기의식과 변화에 따른 고통분담과 과도기적 혼돈을 전 국민이 합의하고 수용해온 결과라고 생각됐다.

오늘날 한국의 의료계와 의료종사자 또한 아니 정부와 일반국민들까지도 싱가포르 도처에서 볼 수 있었던 "Get the most out of us!"(우리의 최대역량을 이끌어내자!)라는 혼연일체의 효율성과 "What you can not measure you can not manage"(측정할 수 없는 것은 관리할 수 없다.)라는 객관 타당한 측정의 방법론, 그리고 사회주의와 시장논리가 양립하고 있는 싱가포르의 차별이 아닌 차등의 수용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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