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말아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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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영화> 말아톤
  • 윤종원
  • 승인 2005.01.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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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침체됐던 한국영화계에 반가운 단비가 내렸다. 치고 빠지는 소나기도 아니고 기세 등등한 폭우도 아니다. 하지만 대지의 갈증을 해소시키는데는, 그래서 메마른 마음까지 적시는데는 단비가 제격. 오는 27일 개봉하는 영화 `말아톤"은 겨울 가뭄에 찌든 한국 영화계를 촉촉이 적실 영화다.

`말아톤"은 자폐증을 앓는 스무살 청년이 42.195km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하는 이야기다. 제목 `말아톤"은 다섯살 지능의 주인공 초원(조승우 분)이 일기장에 마라톤을 `말아톤"이라고 적은데서 따온 것.

이 영화는 스포츠영화다. 주인공이 자폐증이든 아니든 마라톤은 누구에게나 심장 터질 듯한 압박으로 다가오는 무시무시한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이영화의 미덕이다. "자폐는 병이 아니다. 장애다"고 못박은 후 정상인도 도전하기 힘든 마라톤을 영화의 중심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고치지 못할 장애라면 인정하고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자는 것. 그럼으로써 오히려 정상인이 출연하는 스포츠영화보다 더한 감동을 전해준다.

`말아톤"의 상업적 접점은 바로 이것. `포레스트 검프"의 톰 행크스는 `아메리칸 드림"을 몸으로 표현했고, `레인맨"의 더스틴 호프만은 진한 형제애를 그렸다. 두 영화 모두 자폐의 증상과 아픔에 머물지 않음으로써 관객과의 편안한, 동시에 더욱 여운이 진한 소통에 성공했다. 조승우가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하는 `말아톤"이 그 다음 차례인 것이다.

실화에서 출발한 영화의 프리미엄은 조승우라는 걸출한 배우와 결합하며 눈부신 시너지 효과를 냈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이 영화에 출연하기 위해 조승우가 `춘향뎐"으로 데뷔를 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

손가락 열개를 제각각 움직이며 초점 없는 눈으로 사방을 두리번 거리는 천진난만한 표정의 조승우. 자칫 관객을 불편하게 할 수 있는 장애 연기이지만 그는 지극히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소화하며 `나를 불쌍하게 생각하지 마세요"라고 속삭인다.

초원은 초코파이로 유인해야 움직이고 돈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수영복이 없다며 벌거벗고 수영장으로 걸어나와 기암을 하게도 한다. 하지만 기억력이 비상해자신이 좋아하는 `동물의 왕국" 속 동물들의 특징에 대해서는 정확히 꿰고 있고, 달리기를 할 때 기분이 좋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런 초원이 엄마의 손에 이끌려 마라톤을 시작한다.

"내 소원이요? 초원이가 나보다 하루 먼저 죽는거에요"라고 말하는 초원 엄마(김미숙 분). 그는 그저 초원에게 좋아하는 일 한가지를 하게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심장이 터질 수도 있는 마라톤을 표현력이 부족한 초원에게 시키는 것은 엄마의 욕심이라고 몰아붙인다.

김미숙은 `우산 속의 세 여자" 이후 22년만에 출연한 두번째 영화 `말아톤"에서 관록 있는 연기를 선보였다. 자폐증에 걸린 큰 아들을 보살피느라 정상인 둘째 아들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는, 그러면서도 절대 큰 아들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 엄마의 아픈 마음이 밀도있게 전해진다. 지성미와 부드러움으로 어필하던 그가 이제는 펑퍼짐해진 몸매와 화장기 거의 없는 얼굴로 스크린에 등장하지만 인공미 없는 바로 그 모습으로 객석까지 품어안는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에게도 사회는 정글이다. 초원이 마르고닳도록 보는 `동물의 왕국" 속 세렌게티 초원까지 안 가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너무도 잘 안다. 그러기에 사실 초원이 마라톤을 한다고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안다.

하지만 눈을 뜨고 숨을 쉬는 세상이다. 가슴이 벌떡거리는 느낌이 좋고 스쳐지나가는 바람의 내음과 숨결이 좋은 지는 달려봐야 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감당할 수 없을만큼 버거운 현실일지라도 저마다의 행복과 삶의 의미는 있는 법. 코치가 무심히 던진 "운동장 100바퀴 뛰어"라는 말에 진짜로 100바퀴를 뛰느라 죽을 듯 힘들어도 "좋아요!"라고 말하는 초원의 얼굴에서 어찌 행복을 느끼지 않겠는가.

`말아톤"은 객석 모두 `러닝 하이"를 느끼게 한다. 근래 보기 드문 깨끗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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