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한니발 라이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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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한니발 라이징
  • 윤종원
  • 승인 2007.02.20 1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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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들의 침묵"으로 대표되는 "한니발" 시리즈는 할리우드에서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시리즈로 꼽힌다. "세상에서 가장 천재적인 살인마"라는 영예(?)를 얻은 한니발 렉터는 마치 현실에 실존하는 사람처럼 여겨진다.

인육을 먹기까지 하는 이 잔인한 살인마는 안소니 홉킨스를 통해 표현돼 왔다. 조너선 드미 감독이 연출, 범죄 스릴러 영화의 명작 중 하나로 꼽히는 1991년 "양들의 침묵"은 심리극으로서 탁월한 솜씨를 발휘했다. 앤서니 홉킨스가 연기한 한니발 렉터와 조디 포스터가 맡은 클라리스 스탈링 요원은 영화사에 오래도록 기억될 캐릭터로 남는다.

그러나 이후 2001년 "한니발", 2002년 "레드 드래곤"은 "양들의 침묵"만 한 평을 받지 못한 채 단세포적인 공포에 집착했다는 인상을 준다.

"한니발 라이징"은 점차 빛이 바랜 한니발 시리즈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한 작품. 한니발 렉터를 창조한 작가 토머스 해리스가 직접 시나리오를 썼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음에도 은둔생활을 고집했던 그는 이 시리즈의 완결편을 위해 감독과의 교감을 충분히 나눴다고 한다.

"한니발 라이징"은 살인마 한니발 렉터가 태어나게 된 과정을 그린다. 사건 순으로 보자면 "한니발 라이징"-"레드 드래곤"-"양들의 침묵"-"한니발"로 이어진다.

한니발 렉터는 왜 이처럼 극악무도한 살인마가 됐을까. 영화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한다.

젊은 한니발 렉터에 가스파르 울리엘이라는 1984년생 프랑스 "꽃미남" 배우가 발탁됐다. 그는 수려한 외모에 스스로도 억제하지 못하는 복수심, 비릿한 냉소를 품은 연기를 선보였다. 그의 상대로 중국 스타 궁리가 호흡을 맞췄다. 궁리는 한니발을 유일하게 이해하는 숙모이자 첫사랑 무라사키로 출연한다.

모든 것의 시작은 전쟁이었다. 한니발의 끔찍한 악몽도, 그를 감싸는 숙모 무라사키의 고통도, 또한 한니발을 쫓는 포필 형사의 집착도 전쟁의 참혹함에서 비롯됐다.

제2차 세계대전의 악몽이 여전히 남아 있는 소련 공산주의 치하의 리투아니아 고아원. 그곳에 머무는 한니발 렉터는 말을 잃고 살면서도 밤마다 끔찍한 악몽에 시달리며 비명을 지른다. 전쟁 끝무렵인 1944년 나치군과 소련군의 교전 도중 사랑하는 부모님을 잃었던 것.

그러나 그의 아픔은 부모님을 잃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유일하게 남겨진 사랑하는 여동생 미샤와 숨어 있는 산장에 나치군에 빌붙은 악랄한 민병대가 약탈 후 추격을 피해 도망쳐온다. 이들은 혹한에 아무 것도 먹을 게 없자 잔인한 눈길을 주고받는다. 그들에 의해 사라진 미샤….

가족의 안식처 렉터가의 성이었다가 고아원으로 변한 곳에서 학대받는 한니발 렉터는 그곳을 탈출해 삼촌이 있는 프랑스로 향한다. 그러나 이미 삼촌은 돌아가셨고 홀로 큰 성을 지키는 레이디 무라사키. 히로시마 폭격에 가족을 모두 잃은 무라사키는 한니발의 상처를 어루만져준다. 한니발은 무라사키에게서 검술을 배우고 사무라이 정신을 배우며 모처럼 평안한 세월을 보낸다. 숙모를 놀리는 푸줏간 주인을 만나기 전까지.

한니발은 푸줏간 주인의 목을 베는 살인을 저지르면서 내재돼 있던 복수심을 폭발시킨다. 그를 의심하는 포필 형사. 그는 끝까지 한니발을 쫓아다닌다.

한니발은 의대에 진학해 근로장학생이 되고, 이 때문에 해부실에서 신체에 대해 탐구한다.

한번 폭발된 복수심은 미샤를 죽였던 그루터스 일행을 향한다. 한 명씩 한 명씩 찾아가 잔인한 방법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인육까지 먹는 한니발은 마침내 그루터스와 맞닥뜨린다.

그루터스와의 만남 속에서 한니발의 더 깊은 곳에 내재돼 있던 상처와 분노가 갈갈이 찢겨진 채 드러난다. 영화 마지막에 드러나는 한니발의 비밀에 관객은 충격과 동시에 연민을 느끼지 않을까.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로 평단의 주목을 받았던 피터 웨버 감독은 한니발 렉터가 갖고 있는 분노와 죄의식의 근원을 드러내는 데 공을 들였다. 원작자가 직접 쓴 시나리오를 한층 무게감 있게 표현하는 데도 성공했다.

프로듀서는 지금껏 한니발 시리즈를 모두 기획한 디노 드 로렌티스와 마사 드 로렌티스가 맡았다.

무엇보다 2004년 프랑스 세자르 영화제에서 "인게이지먼트"로 신인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은 젊은 배우 가스파르 울리엘의 표현력이 영화를 깊이 있게 만들었다. "양들의 침묵"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팬이라면 한니발 렉터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는 영화다.

청소년 관람불가. 28일 개봉.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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